“얼마나 한이 되었는지 나중에 돈을 벌고는 뻥튀기 한차를 산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신문이요 신문” 외치는 신문팔이를 만났다. 저 일이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 그 애를 붙잡고 사정을 해서 그 애를 따라 갔다. 보급소에서 주소와 이름을 적고는 보리밥에 깍두기 무국을 주었다. 며칠 만에 먹어보는 그 밥이 어찌나 꿀맛이든지.

다음날 신문을 끼고 거리에 나섰는데 처음에는 신문이요 하는 말도 입이 안 떨어졌다. 신문 한부는 10원이었는데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 다닐 수가 없어 버스에서 팔기도 했다. 버스에 올라 채 중심을 잡기도 전에 버스가 출발하는 바람에 버스 안에서 여러 번 나뒹굴어지기도 했다.

영화 ‘엘비라 마디간’의 한 장면. ⓒ이복남

어느 날 우연히 이종사촌동생을 만났다. 동생은 국도극장 앞에 구두터 하나만 있으면 신문이나 암표도 팔수 있어 돈을 잘 벌수 있다고 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고 이놈아 안 죽고 살아 있었느냐” 어머니는 통곡을 했다. 잘 살고 있으니 염려 말고 돈 30만원만 보내 달라고 했다.

15만원을 주고 구두터 하나를 샀다. 그는 딱새를 하면서 찍새 똘마니도 두셋 거느렸다. 극장 앞 구두닦이는 어둠의 세계다. 어둠의 세계에서는 주먹이 최고다. 그는 비록 뛰지는 못하지만 누구든지 그의 손아귀에 걸리기만 하면 끝이었다. 구두터를 하나씩 늘려 나갔다.

어느 날 열심히 구두를 닦고 있는데 청색 운동화 두 짝이 눈에 들어 왔다. 눈을 들어보니 교복을 입은 여학생 둘이었다. 운동화를 닦으러 온 것은 아닐 테고 무슨 일인가 의아해서 쳐다보니 한 여학생이 “식사 하셨어요?”라고 물었다.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다리도 불편하신 분이 씩씩하게 일하는 것을 보고 밥을 사주고 싶었어요.” 이게 웬 떡이람. 예쁜 여학생이 밥을 사주겠다니. 근처 중국집으로 가서 자장면 곱빼기를 시켰다. 그렇게 A를 만났고 같이 온 여학생은 동갑내기 사촌언니였다. 자기 집이 근처 빌딩에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매일 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인가 지나서 찍새 한 놈이 쪽지 하나를 가져왔다. 사흘 뒤 저녁 7시 을지로 2가 중앙극장 앞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흘이 어찌나 더디 가든지 잠이 안 왔다. 약속한 날에 목욕재계하고 집을 나서니 눈이 내렸다. 지팡이를 짚고 한발 한발 눈길을 걸어 을지로 2가까지 가슴 설레며 걸었다. A는 기다리고 있었다.

“왜 오라고 하셨어요.” A는 말없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가리켰는데 그녀의 손길을 따라가 보니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영화간판이었다. “이 영화를 같이 보고 싶었어요.” 귀족 출신 장교 식스틴과 곡예사 엘비라의 사랑이야기.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식스틴과 엘비라는 소풍을 갔고 엘비라가 나비를 잡는 순간 한발의 총성이 울리고 연이어 또 한발의 총성이 울렸다. A와의 슬프고 아름다운 사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974년 8월 15일. 서울 지하철이 개통되고,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쓰러진 날이다. 그날 오후 엄청 비가 내렸다. 호외가 뿌려지고 신문과 비닐우산을 사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애들이 20여명이나 있었음에도 대학생이 된 A는 구두터에서 돈 받느라고 바빴다.

밤늦게까지 정신이 없었고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지고 한숨을 돌리자 통금 사이렌이 울렸다. 국도극장 보일러실에서 A와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4시 통금이 해제되자 장충공원으로 갔다. 성모마리아상 앞에서 평생을 함께 하자고 맹세를 하고는 키스를 했다. 어디선가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고 경찰서로 잡혀 갔다. 최정철씨 이야기는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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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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