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던 해인 1955년 미국에서는 ‘로사 파크스’ 라는 흑인여성이 버스에 올라탄 백인에게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실형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이에 반발하여 흑인들이 버스를 보이코트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계기로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무렵까지 미국에서는 흑과 백이 분리되어 살았다. 흑인들만의 학교가 따로 있었고, 상가도 흑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었으며 흑인들은 ‘흑인용’ 이라고 적힌 곳에만 출입이 가능했다.

우리 사회에는 ‘장애인용’ 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천공항에는 일반 화장실 앞쪽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장애인의 편리를 위해 마련되었을 공간이지만 마치 장애인은 이곳만 사용하고 일반화장실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의미로 보이기도 한다.

미국에는 ‘장애인용’ 이 별로 없다. 건물이나 화장실에 장애인용 표지가 붙어있는 것은 장애인 전용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장애인도 이용이 가능하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동안 한국의 장애인 복지가 많이 좋아졌으며 장애인 차별금지법 등이 실행되면 더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진정한 장애인복지 개선은 장애인을 바라다 보는 사회의 인식에 변화가 와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애인이 자유롭게 사는 세상에서는 ‘장애인용’ 이라는 단어가 사라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장애인 교육환경에 변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애인만 한데 모아 가르치는 특수학교는 장애로 인해 일반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서만 운영되어야 마땅하다.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학습능력과 상관없이 한데 모아 가르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이는 직업학교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일반인과 함께 공부하여야만 경쟁력이 생겨난다. 청년실업 백만명 시대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경쟁력이 떨어지는 장애인을 취업시켜 달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시장경제에서 기업은 능력있고 생산성있는 근로자를 고용하려고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장애인만 한데 모아 몇가지 안돼는 직종의 기술교육을 시켜가지고는 장애인은 늘 단순노동직에만 머물 수 밖에 없다.

장애인이 일반인과 섞여 공부하고 자라며 세상을 배워야 하듯이 비장애인들도 장애인과 함께 뛰어놀고 공부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여건만 주어지면 장애인도 남들과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보고 경험하면 사람들은 장애인과 함께 일하고 이웃하며 사는 일에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될 것이다.

편의시설이 미비하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의 일반학교 입학을 저지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정부는 장애인이 등교하여 공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편의시설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동등한 교육과 사회참여의 기회는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이다. 국민의 기본권도 보장해주지 못하며 GNP만 따져 선진국 진입 운운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백인이 버스를 타면 흑인은 일어서 자리를 양보해야 했던 사회에서 흑인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이 땅에 사는 장애인들의 삶에도 변화가 오길 기대해 본다.

[댓글 달기]에이블뉴스 창간 6주년에 바란다

나의 기억 속에는 내가 한때나마 걸어 다녔다는 사실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다만 낡은 사진첩에 남아있는 한 장의 흑백사진 이 한때는 나도 걸을 수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줄 뿐입니다. 세살에 소아마비를 앓았습니다. 81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주정부 산재보험국에서 산재 근로자들에게 치료와 보상을 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누군가 이글을 읽고 잠시 즐거울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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