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5월 나는 무얼 하고 있었을까? 초등학교 2학년으로 공부도 썩 잘하지 못하였으며, 집도 그렇게 넉넉한 형편은 아닌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동네 친구들은 전부 다른 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전철의 건너편에 있다는 이유로 나만 아주 먼 곳의 초등학교와 전혀 친구들이 다니지 않는 학교에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즈음 같은 대한민국의 하늘 아래 광주에서는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중에 중학생이 된 후 처음으로 보았던 너무도 낯선 동영상과 사진은 충격 그 자체로 사춘기 청소년에게는 엄청난 공포로 다가왔던 것을 기억한다.

화려한 휴가 영화포스터. ⓒ㈜CJ엔터테인먼트

오늘 소개할 영화는 화려한 휴가라는 영화다. 물론 꽃잎, 박하사탕, 스카우트 등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나온 영화들은 최근 들어 많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영화중에서 화려한 휴가는 가장 사실적으로 시민군의 입장에서 그 당시의 상황을 그려낸 영화다. 동생을 시위 현장에서 잃은 평범한 택시운전사(강민우 역 김상경)가 시민군이 되는 과정, 사랑하는 여인 간호사(박신애 역 이요원)와 함께 계엄군과 맞서 싸우는 이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박신애가 강민우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 속에는 5~6명의 주연과 맞먹는 조연과는 달리 눈에 띄는 조연으로 장애인이 두 명 등장한다. 1980년 5월 그 당시 광주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고 있었을 것이다. 그 중에 과연 장애인이 몇 명이었는지는 그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2명의 장애인을 영화 속에 등장시키고 있다.

시각장애인 엄마 나주댁이 아들의 사진을 부여잡고 울고 있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한명은 광주민중항쟁 참가 대학생 아들을 둔 시각장애인 엄마 나주 댁이다. 도시 외곽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으며, 몰래 옷을 훔치러 들어온 주인공 강민우에게 아들 옷을 내어준다. 아들 창수의 사진을 건네며 학교 간다고 나가서 며칠째 소식이 없는 아들 창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한다. 결국 창수 시신 앞에 가서는 창수가 아니라고 잡아뗀다. 착한 자신의 아들은 폭도가 아니라며 슬프게 운다. 집에 돌아와서도 아들 사진만 부여잡고 울고만 있을 뿐이다.

지적장애인 병조가 싸늘하게 죽어있는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또 한명은 지적장애인 병조 청년이다. TV를 보유한 부유한 집의 아들로 아버지를 대신해 시청료를 징수한다. 계엄군이 들어오면서 시위대들 사이에서 막대기를 들고 다니며 군인들에게 경례를 한다. 군인의 철모를 쓴 채 막대기로 장난치다 군인들의 군화 발에 집단으로 구타당한다. 단 한명의 사망자도 없다고 하지만, 무고한 형제 지적장애인, 병조가 싸늘하게 죽어있을 뿐이다. 영화 흐름 상 이 지적장애인의 죽음으로 시민들은 더욱 분노하며, 광주시민들은 청년을 태극기로 덮은 채 시민들에게 함께 싸울 것을 독려한다. 결국 이를 계기로 그의 아버지까지 시민군으로 민주항쟁에 참여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된다.

마지막 계엄군과 싸우기 전 시민군의 단체사진촬영 장면. ⓒ㈜CJ엔터테인먼트

능동적으로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없다. 시각장애인 엄마 나주댁은 주인공이 집에 찾아와서 도움을 주게 되고 아들의 죽음에 눈물을 흘릴 뿐이다. 지적장애인 아들 병조는 무슨 일인지도 모른 채 뛰어다니다가 쓰러져 있을 뿐이다. 영화의 줄거리를 탄탄하게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능동적으로 광주민중항쟁에서 적극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장애인의 모습은 등장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군인의 침입으로 영화관에서 나온 주인공들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시민군이 되어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는 멋진 주인공이면 안 될까? 주인공들은 아니더라도 영화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조연 몇 명 중의 한 명은 안 될까? 그 많은 광주 시민 중에 장애인들은 있었을 것이며, 이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한 사실도 분명 있었을 거라 믿는다. 사실이 아니라면 어떠냐? 어차피 영화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기회에 장애인이 영화의 능동적인 역할을 하면 정말로 안 되는 걸까?

대장과 함께 계엄군과 싸우기로 결의하는 시민군의 모습. ⓒ㈜CJ엔터테인먼트

실제로 광주 시민군이 형성되고 무장을 시작하여 일체 광주로 물자가 중단되던 항쟁기간 동안 단 한건의 범죄나 어떠한 약탈도 없었으며, 시민들은 부족한 물품을 서로 나누어 주면서 이들은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강자도 약자도 없는, 아마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없는 그런 곳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광주의 위대한 시민정신 속에 장애인들은 분명 어떤 역할을 하였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러한 이들의 아름다운 행적이 지금 이 사회 현실에서도 그리운 이유는 무얼까? 이 교훈을 우리는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유토피아’는 2007년 장애인영화 전문칼럼니스트 강좌 수료생들의 모임입니다. 저희들은 영화를 사랑하고 장애현실을 살아가는 눈과 감수성으로 세상의 모든 영화들을 읽어내려고 합니다. 저희들은 육체의 장애가 영혼의 상처로 이어지지 않는 세상, 장애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세상, 차이와 다름이 인정되는 세상, 바로 그런 세상이 담긴 영화를 기다립니다. 우리들의 유토피아를 위해 이제 영화읽기를 시작합니다. 有.討.皮.我. 당신(皮)과 나(我) 사이에 존재할(有) 새로운 이야기(討)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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