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내로크(Naerok)족 사람들은 손이나 다리가 불편한 사람,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 발달이 좀 늦은 사람 등 전혀 공통점이 없는 사람들을 일정한 손상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장애인'이라는 이름으로 뭉뚱그려 부른다. (중략) 더욱 희한한 것은 그러한 사람들의 몸에 내로크족이 즐겨 먹는 쇠고기나 돼지고기처럼 등급을 매긴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장애는 없다'(그린비 펴냄)의 번역을 맡은 김도현씨가 역자 후기의 첫머리에 쓴 이 글에서 내로크족은 다름 아닌 한국인(Korean)의 철자를 거꾸로 적은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 현실을 외부인이 쓴 민족지 형식으로 풍자한 것이다.

북유럽 인류학자 베네딕테 잉스타와 수잔 레이놀스 휘테가 함께 엮은 이 책에는 내로크족 문화와 달리 '장애'가 존재하지 않고 다만 '차이'와 '손상'이 있을 뿐인 여러 문화가 소개된다.

케냐의 마사이족에게는 우리말의 '장애'나 영어의 'disabled'와 같이 장애를 일으키는 상태의 모든 범주를 포괄하는 하나의 단일한 용어가 존재하지 않는다. 각각의 상태에 대한 단어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가 하면 자이르(콩고민주공화국의 옛 명칭)의 송게족은 '왜 장애인이 되었나'라는 질문에 대한 답에 무게를 둔다.

"이처럼 '왜?'라는 질문이 중심적이기 때문에, 한 개인으로서의 장애인에게는 많은 주의가 기울여지지 않는다. 장애인들은 정상적인 생활 내에 평범한 방식으로 통합되어 있다. 특별한 의식 없이, 의학적으로도 크게 주목받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도 아닌 채로 말이다."(183쪽)

차이와 손상이 장애로 규정되지 않는 사회의 모습들은 우리가 현재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장애의 개념이 특수한 사회적 산물임을 인식하게 한다.

김도현씨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장애에 대한 새로운 시야, 상상력, 관계론적 관점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인간다운 삶 이전에 그 '인간다움'과 '인격'의 가치 및 기준들을 재고해 볼 수 있다면 이 책이 갖는 의의는 결코 작지 않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를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한 이 책은 그린비에서 선보이는 장애학컬렉션의 첫 번째 책으로, 앞으로 '장애인은 어떻게 장애인이 되었나', '현대적 재활의 형성', '장애의 지리학', '장애를 만드는 사회'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576쪽. 2만3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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