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살에 영장이 나와서 입대를 했습니다.”

육군 소총수였는데 수원 쪽 해안경비대에 근무했다.

“군대를 갔다 와서 농협 수리센터에서 다시 일했습니다.”

수리센터에서 일 한지 1년 쯤 되자 서울 사는 친구가 그만 두고 서울로 오라고 했다. 농기구 수리가 지루하던 차에 잘 되었다싶었다.

“친구는 은행 365코너를 설치하고 있었는데, 수리센터보다 대우도 좋다고 했습니다.”

아내하고 아들딸. ⓒ이복남

‘365코너’란 현금 자동 입출금기로 은행에 따라서 ATM기 또는 365코너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365코너란 현금 인출, 예금, 자금 이체, 기장 또는 계좌 정보 조회와 같은 금융 거래를 금융 기관 고객이 은행 직원을 통하지 않고 직접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전자통신기기이다.

서울에서는 친구와 같이 미아삼거리에 살면서 낮에는 자고 저녁에 친구와 같이 일을 했다.

“365코너는 은행이 문 닫을 때부터 일을 했으므로 주로 야간작업이었습니다.”

365코너에 들어가는 통신기기 등은 다른데서 준비해 오고, 그가 하는 일은 365코너를 설치하는 일인데 하청이었다.

“1년 정도 하나가 그만 두고 다시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일이나 보수가 괜찮았다면서 왜 그 일을 그만 두었을까?

“야간작업이라 그런지 눈이 자꾸 침침해져서 그만 두었습니다.”

금산면에서 선배가 카센터를 하고 있었다.

“정비공장은 아니고 카센터였는데, 차들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선배 사장은 작은 차를 주로 보고 저는 대형 트럭 같은 큰 차를 봤습니다.”

차를 정비하는데는 작은 차 보다는 큰 차가 배우기가 쉽다고 했다.

“승용차는 사장님이 보고, 4톤 8톤 15톤 같은 트럭은 제가 정비를 했습니다.”

운전면허를 따고 자가용이 있었는데 1톤 트럭이었다.

“그리고 보통 때는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습니다.”

카센터에 2년 정도 있었는데 사장이 카센터를 인수하라고 했다.

“사장님이 정비공장을 인수하면서 카센터는 저에게 맡겼습니다.”

카센터 사장이 되면서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 선을 보았는데 이상하게 잘 안 되었습니다.”

부산에 살고 있는 고향 친구들이 더러 있었다.

“서른두 살 때 부산 사는 친구가 아가씨가 있다면서 와 보라고 했습니다.”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부산 영도에 사는 황윤정(1980년생) 씨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황윤정 씨가 맘에 들었다.

“결혼을 하게 되면 금산에 살아야 됩니다.”

황윤정 씨도 그가 맘에 들었는지 그래도 좋다고 했다.

아내하고 딸과 아들. ⓒ이복남

필자는 황윤정 씨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필자에게 김기수 씨를 소개한 지인이 말하기를 황윤정 씨가 김기수 씨에게 반한 것은 ‘바라바라바라밤’ 오토바이 타는 모습이라고 했다. 김기수 씨가 오토바이를 잘 탔다는 것이다. 그때는 오토바이 뒤에 황윤정 씨를 태우고 금산면을 누볐다는 것이다.

“황윤정 씨와 결혼을 하고 금산에서 카센터를 하면서 살았습니다.”

카센터를 10년쯤 운영했는데, 그동안 아내는 첫딸을 낳았다.

10년이나 운영하던 카센터를 왜 그만 두게 되었을까?

“대형 트럭을 정비하다가 바퀴가 잘못 빠지면서 제 다리를 쳤습니다. 다리뼈가 부러져 몇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면서 카센터를 정리했습니다.”

다리를 다쳤다고 10년이나 운영하던 카센터를 그만 두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당분간 문을 닫거나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는 있지 않았을까.

“입원도 오래해야 했고, 그리고 밤에는 눈이 침침해서 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필자가 만난 김기수 씨는 시각장애 1급이었다. 맨 처음 눈이 나쁘다는 것은 언제 알게 되었을까? 그리고 아내와 만났을 때 눈이 나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을까?

김기수 씨는 황윤정 씨를 속이지는 않았다면 서도 웃기만 할 뿐 언제부터 눈이 나빠졌는지를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김기수 씨는 망막색소변성증(RP)으로 망막에 분포하는 광수용체의 기능장애로 발생하는 진행성 망막변성질환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은 유전성 및 진행성으로 망막기능저하, 세포소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망막조직의 위축이 발생하는 특징을 가진 질환군을 일컫는 용어이다.

망막은 빛, 색, 형태 등을 인식하여 뇌로 전달한다. 눈으로 들어온 빛은 망막에서 광수용체세포를 통해 전기적 정보로 바뀌고 시신경을 거쳐 뇌에 도달한다. 망막색소변성증은 광수용체의 기능에 문제가 생겨 나타나는 진행성 질환이다. 주로 광수용체와 망막색소상피에 영향을 주는 망막변성질환으로 세계적으로 대략 4,000명 중 1명에게 발병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망막색소변성증의 원인은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유전자 이상에 의한 것으로 생각한다.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발췌.

“제가 RP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의사는 가족 중에 누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무리 찾아봐도 우리 가족은 사돈에 팔촌 중에도 RP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찾아 봐도 RP는 없었고, 초등학교 3학년 때 홍역을 앓았던 기억 밖에 없었다.

“부모님도 멀쩡하고 할머니께서는 바늘귀도 꿸 정도로 눈이 좋으셨고, 삼촌이나 사촌은 물론이고 사돈의 팔촌 중에도 RP는 없고 다 멀쩡한데, 나만 왜 이런가 싶어서 처음에는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RP라는 사실을 언제 처음 알았느냐고요?

“사실은 서울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서울에서 365코너 설치하러 다닐 때 매일 밤에 작업하다보니 눈이 침침해서 병원에 갔더니, 이것저것 검사를 했고 RP라고 했습니다. 그때 시야협착으로 3급을 받았습니다.”

전국 안마수련원. ⓒ대한안마사협회

망막색소변성증의 대표적인 2가지 증상으로 야맹증과 시야협착이 있다. 제일먼저 나타나는 것이 야맹증이고 그 다음이 시야협착이다. 망막색소변성증이 진행되면서 야맹증이 심해지고 시야도 점점 좁아지게 된다.

망막색소변성증의 원인은 유전자라고 하지만 아직까지 치료제는 없다. 현재 시각장애인은 253,055명(2019년 말)인데 그중에서 망막색소변성증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리를 다쳐 입원해 있을 때, 안개가 낀 것처럼 눈앞이 뿌옇고 물체가 두 개로 보이기도 해서, 이제 올 것이 왔구나 싶어서 결국은 카센터를 접었습니다.”

그때가 2012년도였는데 아내는 둘째를 가져 만삭이었다.

당시 아내 황윤정 씨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아내도 청천벽력이겠지요. 그래도 집사람은 별 내색 안하고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더 이상 카센터를 할 수는 없고 이제 뭘 해야 하나 막막하기만 했다.

“집사람하고 의논을 하고 여기저기 얻어들은 풍문으로 아동심리 공부를 했습니다.”

대학에서 아동심리를 공부했을까.

“평소에 관심도 있었고 앞도 잘 안보여서 사이버대학 아동심리과에 등록을 해서 자격증을 땄습니다.”

그런데 앞이 잘 안 보이는 그가 아동심리로 일할 만한 곳은 없었다.

아내는 둘째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가 다친 곳은 다리인데 이상하게 자꾸 어깨가 아팠다.

“병원에서 MRA도 찍고, 의사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지만 어깨는 계속 아팠습니다.”

어깨를 고치기 위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 보니 침을 잘 놓는 사람이 있다고 했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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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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