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일 양성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을 발표하고 있다.ⓒ보건복지부

문재인정부의 국정과제인 장애인 탈시설 정책이 4년 만에 발표된 가운데, 장애인 탈시설을 추진해온 장애인단체와 국회의원 모두 “시설 소규모화”, “시설서비스 재편”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시설퇴소는 사형선고’라며 탈시설을 반대해왔던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 부모회는 “대안 없는 탈시설은 죽으라는 꼴”이라면서 로드맵 철회 촉구 움직임을 다시금 시작하겠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지난 2일 발표한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은 내년부터 3년간 시범사업을 통해 탈시설․자립지원 기반 여건을 조성한 후, 2025년부터 20년간 본격적인 탈시설을 추진하겠다는 내용이다.

거주시설 신규설치는 금지되고, 현 거주시설은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을 바꿔 24시간 지원이 필요한 장애인 대상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기능이 변환된다. 장애인 학대 관련 범죄 발생 시설은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즉시 폐쇄된다.

‘장애인 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 피켓을 든 장애인 활동가.ⓒ에이블뉴스DB

■“말만 탈시설, 결국 소규모 된 시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변재원 정책국장은 “말은 탈시설인데, 결국 소규모화된 시설”라며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20년간 실행될 예산 계획과 전달체계 부재함도 함께 꼬집었다.

전장연은 기존 시설을 폐쇄하고 지역사회에서의 자립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인 ‘탈시설’ 정의 및 개념을 명확화한 명칭 사용과 더불어 10년 내 장애인거주시설 폐쇄가 전제된 탈시설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변재원 정책국장은 “정부의 보도자료에 거주시설의 문제점으로 지역사회와의 단절, 경직적인 운영의 취약성을 얘기하면서 대안으로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으로 명칭 변경을 제안했다. 시설 내 구조적 문제인데, 왜 시설 명칭을 바꾸는 것으로 대안을 제시하는지, 문제와 대안이 연결되지 않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말은 탈시설 자립지원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60% 상당이 공동형 주거 지원로 넘어간다. 결국 그룹홈, 소규모화된 시설”이라면서 “2년 전 불가리아 정부가 탈시설 정책을 이행하면서 그룹홈을 추진했다가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위반으로 제소당했다. 2년 전 잘못된 행정을 우리 정부가 발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년간의 단계적 실행’에 대해서도 “최혜영 의원 등이 발의한 장애인탈시설지원법에 10년 내 거주시설 폐쇄를 명시해놨는데, 정부는 20년으로 늘려놨다. 탈시설지원법 조항대로 10년 내 의지를 표명해야 할 것”이라면서 “정부의 정책 의지를 가져야 한다”고 쓴소리를 냈다.

마지막으로 “장애인권리보장법을 제정한다고 하며 아름다운 미사여구를 붙여놨지만, 실행되는 예산과 전달체계가 부재하다. 선언뿐인, 말뿐인 법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고 꼬집었다.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가 지난달 26일 정부세종청사 앞에서 탈시설 정책 즉각 철회를 외치고 있다.ⓒ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

■“탈시설은 사형선고, 차라리 안락사법을”

전국장애인거주시설 이용자부모회(이하 이용자부모회) 김현아 공동대표는 “발표된 탈시설 로드맵은 중증 발달장애인 가정에게 죽으라는 것과 같다. 차라리 안락사법을 제정해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이용자부모회는 ‘시설퇴소는 사형선고’라면서 정부의 탈시설 정책을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해왔다. 지역사회 인프라가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탈시설 계획은 결국 부모의 부담만을 가중시켜 벼랑 끝으로 내모는 정책이라면서 백지상태에서의 재논의를 촉구한 것. 관련한 청와대 국민청원은 1만8000명을 넘긴 상태다.

김현아 공동대표는 “시설거주 장애인의 80%는 발달장애인인데,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탈시설을 논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중증인 발달장애인은 ‘힘센 치매환자’다. 탈시설 정책을 통해 지역사회로 오면 감당이 안 된다. 24시간 돌봄이 안되면 뛰쳐나가고 제어가 안 되는 사실상 폭탄이나 마찬가지다, 아파트, 공동가정에서 돌보겠다고 하는데, 몇 분이나 돌볼지 모르겠지만 감당 못 할 것”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한 김 공동대표는 “시설에 보내는 자녀들은 주간보호 단기보호 등에서 이미 쫓겨난 아이들이다. 시설 축소로 갈 곳이 없는 최중증 발달장애인들은 정신병원에 가 있는 현실”이라면서 “시설에 자녀를 보낸 경우 3년간의 시간은 벌었지만, 입소대기자는 청천벽력이다. 정말 시설에서만큼 안락하게 우리 아이를 돌볼 수 있을지, 대안이 없어 시설에 보낼 수밖에 없는 우리의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냐”고 했다.

김 공동대표는 “인권침해시설을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로 한다는 것은 기존 시설을 아예 잠재적인 인권침해장소로 보는 꼴이다. 이런 식의 접근은 사회복지종사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장애인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대안이 없다”면서 “원스트라이크 아웃제 할거면 차라리 우리도 안락사법을 제정해서 편히 죽을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용자부모회는 오는 10일부터 세종청사 앞에서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지원 로드맵’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가운데), 정의당 장혜영 의원(맨왼쪽).ⓒ국회방송캡쳐

■“다음 과제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 통과”

국회에서는 정부의 ‘탈시설 장애인 로드맵’을 두고, 첫걸음에 대해 의미 있게 평가하면서도 내용 측면에서의 보완점을 제시했다. 특히 로드맵의 보완을 위해 ‘장애인탈시설지원법’ 통과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장애인 탈시설 정의를 ‘시설을 변화시키는 일련의 지원정책’으로 명시해 오해의 소지가 있다”면서 “시설서비스의 재편이 아니라, 유엔장애인권리협약에 근거한 장애인 지역사회 자립생활 권리 실현을 위한 탈시설이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탈시설과 자립생활을 지원할 인프라와 서비스 내용이 여전히 불충분해 보호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탈시설 준비과정에서부터 지역사회에 정착하고, 안정적인 자립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충분한 서비스 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최 의원은 “정부 로드맵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적극적 탈시설 정책 추진을 위해 남은 과제는 장애인탈시설지원법안의 시급한 통과”라면서 “국회도 로드맵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한 법안 통과로 화답해야 할 것”이라고 피력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은 “로드맵 곳곳에 탈시설을 탈시설이라고 명명하는 것에 대한 주저함을 걷어내야 한다. 거주시설을 ‘장애인 주거서비스 제공기관’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시설이 시설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장애인탈시설지원센터’였어야 할 이름도 ‘장애인지역사회통합지원센터’라는 완곡어법으로 대체됐다. 지역사회통합이나 주거전환은 탈시설의 대체어가 될 수 없다”고 꼬집었다.

또한 “정부의 탈시설에는 권리가 없다. 시설은 여전히 장애인이 선택가능한 주거형태처럼 제시됐고, 지원대상도 탈시설 욕구가 있는 당사자로 한정했다”면서 “탈시설 이후 자립생활의 당사자를 지원하는 서비스와 전달체계가 선언에 그치거나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장 의원은 “처음부터 자녀를 시설로 기꺼이 보내고 싶은 부모는 없다. 정부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인프라를 신뢰할 수 있다면 어떤 부모가 시설로 보내며 생이별하겠냐”면서 “가족의 유무나 상황과 무관하게 탈시설 장애인들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사회에 살고 있는 장애인들에게도 자립을 위해 충분한 활동지원서비스와 주간활동서비스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탈시설 로드맵은 첫 걸음이다. 로드맵의 미비점을 보완하고 탈시설 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위해 국회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면서 “가장 시급한 것은 장애인탈시설지원법 통과다. 모든 시민의 평등한 존엄을 위해 조속히 법을 논의하고 통과시켜달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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