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24주'의 한 장면. 주인공 아스트리드가 카메라를 직접 응시하며 우리 모두에게 질문하는 듯하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나요?“ ⓒ Friede Clausz/Berlinale

영화 ‘24주’의 특징은 실제 의사와 상담사 그리고 조산사들이 등장하여 실제로 독일에서 어떤 식으로 산전진단이 이루어지고, 어떻게 낙태 과정이 진행되는지를 매우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데 있다. ‘낙태 클리닉에서의 7일’ 다큐멘터리처럼 이 모든 과정을 그야말로 적나라하게, 현실적으로 드러낸다.

독일에서는 산전진단에서 태아의 장애가 발견되었을 때 90퍼센트 이상의 여성이 낙태를 한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90 퍼센트 이상’이 91퍼센트를 의미하는지 99퍼센트를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분명한 건, 출산진통이 시작되기 직전까지 언제든 낙태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법이 이를 허용한다.

독일 형법은 장애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신체적, 심리적 건강상태가 임신을 유지할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될 경우 임신후기낙태(Spätabtreibung)를 허용한다. 이 경우 낙태비용은 전적으로 보험처리가 된다.

이때 낙태 여부는 오로지 여성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법은 규정하고 있다. 즉, 여성은 스스로, 혼자 힘으로 태아의 생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아니, 결정을 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산전진단은 우리에게 일종의 안도감이나 정서적 안정감을 보장해준다. 물론, 태아가 건강하다면 말이다.

그러나 태아에게 ‘문제’가 발견되면 산전진단의 역할은 거기에서 끝이 난다. 이때부터는 사회적, 개인적 윤리와 선택이라는 문제가 자리를 메우게 된다. 이제 선택의 공은 부모에게, 정확히 말해 여성에게 넘어간다.

사실 산전진단은 검사 순간의 태아 건강상태를 알려줄 뿐, 아기가 향후 겪게 될 병이나 위험요소를 결코 예방하진 못한다. 또한 산전진단은 대부분 100프로 확실한 팩트가 아니라 가능성에 불과하다. 아기가 태어나 어떠한 삶을 살아갈지, 과연 그 삶이 가치가 있을지, 과연 아이는 행복할 지에 대한 물음에 어떠한 답을 줄 수 없는 의료적 수단에 불과하다.

우리는 산전진단과 장애에 대해 보다 공개적으로 논의할 용기와 힘이 필요하다. 그리고 당사자 여성들을 결코 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전문적인 상담이 필요하고, 유사한 경험을 한 사람들과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독일에는 이와 관련한 전문상담소가 여러 군데 존재한다. 인터넷에 ‘산전진단’과 ‘낙태’를 검색해도 다양한 전문가가 작성한 신빙성 있는 정보와 당사자들의 경험담을 제법 많이 찾을 수 있다.

당사자의 경험은 신문기사나 다큐멘터리뿐만 아니라 포룸(Forum) 같은 자유토론방에서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물론 자유토론방에서 수많은 네티즌이 토론하는 경우, 낙태를 한 당사자가 ‘살인자’ 또는 ‘나치’식의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네티즌은 “각자 자신만의 선택을 해야 한다”는 데에 동조하는 분위기이다.

인생의 엄청난 선택 앞에 직면한 당사자는 필요한 정보와 지원서비스를 체계적으로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 담당의사에게 고작 관련 안내 책자 몇 권을 건네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낙태 수술 직전, 아스트리드는 조산사에게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어요?”라고 묻는다. 이미 눈가가 촉촉해진 조산사는 낮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만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어요”.(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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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세리 칼럼니스트 독한 마음으로, 교대 졸업과 동시에 홀로 독일로 향했다. 독한 마음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에서 재활특수교육학 학사, 석사과정을 거쳐 현재 박사과정에 있다. 독일에 사는 한국 여자, 독한(獨韓)여자가 독일에서 유학생으로 외국인으로 엄마로서 체험하고 느끼는 장애와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를 독자와 공유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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