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이름. 여자 그리고 야구를 합쳐서 만듦. ⓒ정선아

영어를 배우고자 한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학원에 다닐 수도 있고 책을 통해서 습득할 수도 있지만, 회화라는 것은 내가 교실 안에서 배운 것 이상이며 책에 나온 내용을 뛰어넘는다. 언어라는 것은 그렇다.

언어를 아는 것과 그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더욱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소통을 하려면 대화가 통해야 한다. 농인의 삶에선 수화는 필수적인 요소다.

수화, 아니 수어는 농인의 언어기 때문이다.

청인들에겐 수화라는 단어가 익숙하겠지만, 농인의 세계에선 수화 대신 수어라고 부르는 것이 추세이다. 나 역시 농인답게 살겠다고 결심한 이후에 제일 먼저 한 일은 수어를 배우는 것이었다.

수어를 배우는 방법은 간단하다.

인근에 있는 청각장애인 복지관에 방문하여 수어교실에 등록하여 다니는 것이다. 우리나라엔 청각장애 자를 위한 복지관이 여러 개 있는데, 대표적으로 청음회관, 서대문농아인복지관, 삼성소리샘복지관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농아인협회에서 분기마다 여는 ‘수화교실’이 있다.

내가 처음 수어를 배운 것은 청음회관에서였다.

수어교실 입문반에 가면 먼저 지화를 가르쳐준다.

손짓 하나하나로 기역, 니은, 디귿을 배우고 이윽고 자기소개하는 방법을 배운다. 그렇게 하나씩 배우고, 집에 가면 곧장 까먹는다.

수어는 언어기 때문이다. 머리로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언어는 배우고 습득했으면 써야 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끼리 대화를 해야 한다. 수어 역시 배우면 농인을 만나 써먹어야 하고, 수어를 쓸 수도 알게 되고 또한 상대의 수어를 읽을 수 있게 된다.

청음회관에서 입문반 그리고 중급반을 거쳐 장장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수어를 배웠지만, 나는 그저 수어라는 지식을 아는 자에 불과했다.

놀랍게도 내가 수어로 소통하게 된 것은 농아인 교회에 다니면서부터였다.

수어가 부족한 나는 농인들 사이에서 늘 ‘천천히’ 수어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자유 교제 시간이 되면 이른바 수어로 하는 ‘수다 시간’이 시작되었지만 혼자 까막눈이 되어 눈만 껌뻑껌뻑했다.

농인들은 표정만 봐도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1도 모르는 것을 알아채곤 했다. 그래서 이런 나를 위해 늘 나에겐 수어를 ‘천천히’ 해주곤 했다.

‘천천히’ 수어와 함께 농인을 만나면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수어는 나에게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내렸다.

특히나 수어를 하면서 중요한 것은 표정인데, 나는 오버액션의 귀재가 되어갔다. 마음이 너무나도 앞서는 탓인지 표정을 다소 과장하곤 한다.

그러나, 비록 덜 자연스럽지만, 수어는 내 삶에서 서서히 물들어 가고 있다.

나는 이제 내 이름 말하는 것보다 내 수어 이름을 말하는 것이 더 익숙하다.

농인을 만나는 것, 농인과 대화를 하는 것

이것이 내가 수어를 배운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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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나정 칼럼리스트
안녕하세요, 말 많은 농인 써나정입니다. 청각장애가 있고요. 초등학교때부터 보청기를 끼고 자랐습니다. 청인친구들과 함께 청인스럽게(?) 살다가 최근 농인친구들을 만나며 농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키우고 있습니다. 농인으로서의 정체성 키우기와 내가 만난 다른 농인 친구들 혹은 타 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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