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두번째는 장려상 수상작인 노성종 씨의 ‘내 소리선생님은 청각장애인’이다.

내 소리선생님은 청각장애인

노성종

“성종아. 다음 주에 재고 실사 온다고 하니까 실사 목록 뽑아서 가지고 내려와라!”

오늘도 김무열 대리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내 고막을 두드린다. 놀란 귀를 진정시키고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을 했지만 여느 때처럼 또 한 번 물으셨다. “뭐라고? 크게 얘기해라. 크게!” 사무실에서 사람들 다 있는데 얼마나 크게 얘기해야 하는 것인지 짧은 고민 후 다시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 알겠습니다!!”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김무열 대리는 아버지뻘로 나와 동년배인 아들과 딸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끈 산업화 세대의 주역이자 책임감 있는 가장으로서 베이비부머 세대의 전형인 그에게는 남들과 다른,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단순히 목소리가 큰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업무적인 사항으로 연락할 일이 생기면 메일이나 문자로 연락을 했다. 신입사원인 내게 김무열 대리의 큰 목소리는 고함치는 듯 나를 질책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무서웠기 때문이다.

나중에서야 그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설비에서 발생하는 소음으로 인해 청력에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후로는 김무열 대리의 큰 목소리는 무서움보다는 우리 회사를 지켜온 원동력 중의 하나라는 생각에 테너의 노랫소리처럼 웅장하게 느껴졌다. 지금이야 소음기라든지, 귀마개 등으로 그럴 일이 없겠지만 과거 그가 자신의 청력을 잃어가면서까지 안전하게 관리하고 싶어 했던 설비, 나아가 이 회사를 앞으로도 나 역시도 잘 지켜나가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김무열 대리의 차를 같이 타고 회식장소로 이동하는 길에 1차선 도로에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량과 시비가 붙었다. 상대방은 좁은 골목길에서 마주 보는 차량이 차례차례 양보하며 들어오고 나가야 하는데 우리가 일방적으로 골목길에 진입했다고 아우성이었다. 급기야 차에서 내려 큰소리로 손짓하며 당장 차를 빼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당연히 김무열 대리도 원래의 큰 목소리로 맞받아칠 줄 알고 노심초사하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김무열 대리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내게 ‘자신이 말하면 큰 목소리로 인해 오해할지 모르니 운전자가 귀가 좋지 않아 말씀하시는 얘길 잘 못 들었다고 자기 대신 사과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울며 겨자 먹기로 차에서 내려 성난 상대방 운전자에게 김무열 대리가 말한 것과 같이 허리 숙여 사과를 드렸다. 상대방 운전자는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뒤돌아서며 큰 소리로 고함쳤다. “귀가 먹었으면 밖에 싸돌아다니지 말아야지!”

다시 차로 돌아온 나는 억울한 마음과 속상한 마음에 불퉁한 목소리로 김무열 대리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대리님! 우리가 잘못한 것이 딱히 없는데 왜 그렇게까지 사과를 해야 합니까? 게다가 괜히 귀가 안 좋다는 얘길 해서 약점만 잡혔잖아요. 그냥 평소에 하시는 것처럼 크게 얘기하시면 알아서 그쪽에서 사과를 했을 텐데.”

그러자 김무열 대리는 달래는 말투로, 그렇지만 예의 큰 목소리로 얘기했다.

“성종아! 상황에 따라 어울리는 목소리가 있다! 공공장소에서 전화를 받을 때 작게 얘기해야 되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봤을 때는 크게 소리쳐야 하는 것처럼 상황에 따라 내야 하는 목소리가 다른 거야! 아까 전 상황은 어땠어? 서로가 감정이 상한 상태에서 다 자기가 맞는다고 큰 소리로 소리치면 이 세상에 나쁜 소리만 더 많이 만들어냈을 게 아니야? 성종이 네가 알맞은 목소리로 잘 얘기해서 더 이상 불협화음이 생기지 않았으니 그거면 된 거야! 아름다운 소리로만 가득 채워도 부족한 세상인데, 우리라도 아름다운 소리를 열심히 내보자고!”

그 순간 내 옆에 앉은 사람은 환갑을 바라보는 청각장애를 가진 공장 근무자가 아니었다. 그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성자였고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선각자였다.

나는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후광인지 햇살인지 모를 빛을 애써 무시하고 말했다.

“귀도 잘 안 들리시는 분께서 소리에 대해서 전문가십니다.”

“야! 잘 안 들리니까 세상 소리가 더 잘 들려! 신기하지? 세상 이치가 다 그래! 잃어본 사람이 그 진정한 가치를 아는 거거든! 욱하는 마음에 감정에 휩쓸려 소리를 내다보면 무언가를 잃게 돼. 그게 시간이든, 돈이든, 사람이든! 성종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이거 하나만 명심해! 내가 어떤 소리를 내야 더 아름다운 하모니를 낼 수 있을까? 그러면 삶이 훨씬 더 평화로워질 거다!

“그럼 대리님과 저의 하모니는 어떤데요? 대리님 보청기 조금 더 좋으신 것으로 바꾸시고 목소리 조금 더 낮추시면 우리 하모니가 더 좋아지지 않을까요?”

“야! 너랑 나랑은 지금이 딱 좋은 하모니야!”

장난스레 되묻는 질문에 너털웃음으로 답하는 김무열 대리의 목소리가 큰 울림으로 가슴에 남았다. 사회생활을 하거나 가정생활을 하면서 협의하거나 갈등 상황을 해결해야 할 상황이 오면 자연스레 그날의 가르침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맞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인지, 내 이야기가 불협화음이 아닌 하모니를 만들고 있는지를 고민해서 말하게 된다. 그 덕분인지 지금까지 큰 다툼 없이 평탄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자신의 소리를 잃고 세상의 소리를 얻은 김무열 대리, 내게는 세상에 내 목소리를 내고 세상의 소리를 듣는 방법을 알려준 청각 선생님이다. 평생의 가르침을 준 김무열 대리님께 평소에 얘기하듯이 큰 소리로 그때 못다 한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김무열 대리님, 감사합니다! 저도 이제 조금 들을 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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