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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⑤

최우수상 ‘내 삶의 북극성’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9-23 08:45:48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다섯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박점수 씨의 ‘내 삶의 북극성’이다.


내 삶의 북극성
박점수


지난 주말 가족 모임이 있었다. 저녁을 먹고서 회의가 시작되고 총무인 새언니가 그동안의 회계장부를 정리해서 간단히 발표했다. 때때로 지출이 있었음에도 생각보다 모여진 돈이 많다. 하긴 회장님이신 형부를 주축으로 일명 사랑으로 달리는 ‘박씨네 행복열차’라는 가족 계를 한지도 햇수로 벌써 17년이다.

이번에 주된 회의 내용은 코로나로 인해 한동안 가지 못했던 가족여행을 가을쯤에 다시 가자는 거였다. 여행지는 15년 전에 다녀온 제주도를 한 번 더 가자는 동생 부부의 의견에 모두가 찬성하는 분위기다. 여태껏 다녀온 여행지마다 나름 다 좋았지만, 특히나 제주도는 내가 다친 이후 처음으로 갔던 가족여행이기에 모두에게 가슴 벅찬 여운과 아쉬움이 남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나로서는 어디든 우리 가족들과 함께라면 마냥 좋고 행복하다.

23년 전,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교통사고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는 전신 마비 장애인이 되어버린 나로 인해 긴 세월 참 많이도 울어야 했던 우리 가족…. 처음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 상태보다 하루에 두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가족의 면회. 그 고통스러운 기다림의 연속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이유 없이 사랑하고, 이유 없이 주고, 이유 없이 보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당시 잠자리하나 마련되어 있지 않은 보호자 대기실에서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고통을 겪고 있던 우리 가족은 나에겐 면회 때마다 새롭게 수혈되는 피요, 희망이었다.

더구나 그때 언니는 둘째를 가진 만삭의 몸에도 불구하고 매번 중환자실에 들어와 혹여 혈액순환이 잘 되면 마비된 내 몸이 조금은 풀리지 않을까 하여 쉬지 않고 내 몸을 주무르고, 물수건으로 닦고, 혹시나 내가 절망에 빠질까 봐 노심초사하며 희망적인 말만 하고 갔었다. 그래서일까 그때는, 아니 솔직히 2년의 긴 병원 생활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까지도 나는 장애인이 되어버린 앞으로의 내 삶이 어떠하리라는 걸 정녕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종일 침대에 누워 TV 리모컨과 씨름하며 그날이 그날 같은 일상은 반복되고, 심한 우울증으로 마음마저 황폐해졌다. 다치기 전의 낙천적이고 쾌활했던 성격은 하루가 다르게 예민해지고 날카로워져 갔다. 병원에서부터 쭉 나를 간병해오던 엄마가 몸이 아파 하루라도 나를 씻어주지 않으면, 그날은 내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신경증 환자처럼 엄마를 괴롭히며 더 아프시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어느 땐 못된 내 이기심에 살아 있음을 원망하면서 몇 날을 음식은커녕 물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서 나 자신을 죽이지 못해 괴로운 나날을 보내기도 했었다. 그때마다 죄 없는 엄마는 나를 부여잡고 하루는 애원하고, 또 하루는 나무라고 급기야 마지막엔 “그래. 네가 죽으면 나도 살아 뭐 하겠노. 차라리 우리 같이 죽자.” 하시며 같이 굶으시며 앓아누우셨다. 곧 이 소식을 접한 형제들은 그 먼 곳에서 또 한달음에 달려왔다.

“그래. 짜증 날 땐 짜증내고 울고 싶을 땐 애써 참지 말고 울어버리는 것도 괜찮아. 대신 짧게, 누구보다 너 자신을 위해서 너무 오래 아파하지 말고 마음을 추스르면 좋겠구나.”
그렇게 나를 달래고 설득하여 벌어진 상황을 수습해놓고 가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내가 사랑니가 썩어서 아파한다는 소식을 들은 오빠가 회사에 월차를 내고선 집으로 내려와 나를 치과에 데리고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하필 그날따라 찾아간 치과마다 휴업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의료법 개정안인가 뭔가로 인해 전국 치과의사들이 과천에서 대규모 집회가 있었단다.

오빠는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겨우 한군데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냈다. 그런데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간 치과가 하필이면 엘리베이터가 없는 3층이어서 휠체어를 두고 오빠가 나를 3층까지 안고 올라가야만 했다. 그런데 치료를 다 받고서 다시 오빠에게 안겨 계단을 내려오는데 거의 다 내려왔을 때쯤 오빠가 그만 발을 헛디뎌 주르륵 미끄러지고 말았다. 순간 나는 교통사고가 나던 그 순간의 기억이 떠올라 눈앞이 아득해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을 꼭 감아 버렸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떠보니 오빠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고 나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오빠의 양팔에 그대로 안겨져 있는 것이었다. 오빠는 미끄러지면서 자신이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인데도 나를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팔에 얼마나 힘을 주고 있었는지…. 울먹이며 괜찮으냐는 나의 물음에 오빠는 괜찮다며 오히려 놀랬을 나를 걱정하는 거였다. 그리곤 오빠는 간신히 몸을 추슬러 일어나 나를 안은 채 절뚝거리며 걷는데,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오빠의 목을 팔로 감싸 안는 순간 나는 그만 펑펑 울고 말았다.

“오빠 미안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사실 나는 장애인이 된 후 모든 것을 다 잃었다고만 생각했다. 어떻게 살 것이며 무엇이 되고 싶다는 꿈과 미래, 영원히 변치 않으리라 여겼던 오랜 우정, 나만 바라봐 줄 것 같았던 사랑, 그리고 시시각각 바뀌어 가는 세상까지도…. 그런데 아니었다. 내게도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지치고 고된 몸에도 불구하고 내 손발이 되어 한시도 나를 내려놓은 적이 없는 엄마와 주말마다 자신들의 생활을 포기하고 엄마와 나에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이 되어주고 있는 형제들. 살아가면서 내게 더한 역경이 닥친다 해도 언제나 함께 헤쳐 나가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음을 그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내게 있어 잃어버린 수백 가지보다 가족이라는 남은 한 가지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소중한 것임을, 그리고 나의 절망을 함께 하며 내 숨소리조차에도 아파하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임을 그때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동안 집에서 무의미하게 보냈던 시간에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했다. 학창 시절 다른 공부에 비해 일찍 포기해버린 영어가 내내 후회로 남았던 터라 TV 교육 방송을 통해 영어 공부도 하고, 주말이면 번갈아 오는 형제들 덕분으로 휠체어를 타고 야외로 나가 외식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쉼 없이 돌아가는 세상사도 보게 됐다.

그리고 어린 조카들에게 동요도 가르쳐 주고,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를 통해 글자도 가르쳐 주었다. 그때마다 조카의 영특한 머리보단 과거 유치원 선생으로서의 녹슬지 않은 나의 실력을 가족들에게 자랑하곤 했다. 그렇게 가족들로 인해 하루하루의 삶이 달라지면서 내 마음 안에 쌓은 담을 하나씩 하나씩 허물며 그동안 소원했던 친구들과도 연락하며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장애인복지관에 나가서 같은 장애가 있는 분들과도 어울리며 손에 보조기를 끼워 서예도 배우고, 붕대로 라켓을 손에 묶어 탁구도 배우게 되었다. 부단한 노력 끝에 여러 공모전에 서예작품을 써내어 수상도 여러 번 하게 되고, 동시에 탁구도 경북 대표 선수로 발탁되어 생활 체육대회에 참가하여 메달도 따게 되었다. 작년엔 ‘전국 장애인 체육대회’에 참가하여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어 가족 모두에게 축하를 받기도 했다.

그날 시합 들어가기 전 우리 가족 단체 카톡으로 이모티콘과 함께 응원의 메시지를 줄줄이 받고 들어가 상대 선수에게 주눅 들지 않고 더욱 힘을 내 파이팅 할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캄캄한 밤에 항해사들이 길을 잃었을 때 제일 먼저 ‘북극성’을 찾는다고 한다. 태양계로부터 몇 백 광년쯤이나 떨어져 있지만 절대 자리를 옮기지 않고 언제나 그 자리에서 가장 크고 밝게 빛나는 북극성. 그 북극성을 보고 방향을 잡으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내 삶의 북극성은 우리 가족이다. 지금도 나로 인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고생하는 우리 가족. 그들의 든든한 지원과 응원이 없었더라면 나는 세상의 편견과 내 안의 두려움을 밀어내고 감히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을 것이다.

때때로 지치고 힘겨운 삶의 길목에서 내가 만약 또다시 길을 잃고 좌절하여 방황하게 되더라도 나를 보듬어 일으켜 다시금 굳세게 나가도록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 또한 그런 가족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끔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살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우리 가족, “항상 미안하고, 고맙고, 오래오래 행복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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