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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②

최우수상 ‘빛이 된 마음의 빚’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9-20 09:17:49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두 번째는 최우수상 수상작인 전샛별 씨의 ‘빛이 된 마음의 빚’이다.


빛이 된 마음의 빚
전샛별


지금으로부터 무려 8년 전의 일이다. 2014년 겨울, 엄마는 국가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통하여 폐암 4기 확정을 받았다. 엄마는 누구보다 밝고 명랑한 사람이었고 어딜 가서든 가리는 음식 없이 잘 드시고 누구에게도 잘 웃는 분이셨다. 잔기침이 몇 개월째 계속되기는 했으나 동네 병원에서는 역류성 식도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진단했었다.

모르는 게 약이라더니, 병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건강해보이던 엄마가 1년 반이라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부터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설상가상으로 치사율이 매우 높은 암인데다 남은 생은 겨우 1년 반…. 이미 폐를 위시하여 뇌까지 암이 전이된 상황이라 전국의 모든 암센터에서 엄마의 치료를 거부했고, 당시 만 48세였던 엄마의 젊음을 믿고 유일하게 우릴 받아주었던 곳이 전남에 있는 암센터였다.

수술 도중 사망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사망동의서를 쓴 후에 진행된 어마어마한 대수술. 상체를 50cm가 넘게 절개하고 갈비뼈 2개를 들어내서 폐 일부와 암덩어리를 함께 떼어내는 엄청난 수술이었다. 동시에 뇌수술까지 진행했기 때문에 20%의 성공률도 보장하지 못했던 그 4시간 반의 기나긴 수술에서 어쩐지 확신에 찬 얼굴의 집도의가 나타난 후, 엄마와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기적’이란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 아니라, 절박한 순간 언젠간 한 번은 찾아온다고 하던가. 그렇게 엄마는 기적 같은 대수술을 성공하고 암세포도 일정 부분 떼어내면서 통원 항암 치료가 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워낙 대수술이었고 환부가 컸기에 일상생활이 가능해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나 운신이 자유로워지자 제일 먼저 엄마가 찾아 나선 곳은 <장애인종합복지관>이었다.
인구 5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조그마한 군 단위에 위치해 있으나 젊은 사람이 워낙 적기 때문에 도움의 손길은 어디에든 산재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엄마의 간병을 위해 첫 직장을 퇴사한 상태라 엄마의 진취적인 행동력에 매우 당황했었다. 솔직히 말해서, 누가 누구를 돌본다는 건지….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시한부가 된 엄마의 소원을 거절할 수 있을쏘냐. 나는 불안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엄마의 제안을 수락했다. 자원봉사신청을 위해 복지관에 내방했을 때, 나는 복지관의 센터장님께 현재 엄마의 몸 상태를 소상하게 얘기했다. 무엇 때문에 몸이 그리 아프면서도 자원봉사를 하고 싶으시냐는 센터장님의 질문에 엄마에게서 들은 얘기는 놀랍기만 했다.

우리 엄마는 무려 4남 5녀나 되는 다복한 형제들 사이에서 아홉 번째 막내로 태어나셨다. 첫 번째 삼촌과는 무려 스무 살 차이로 언니 오빠들에게 딸처럼 예쁨 받고 자랐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현재 생존해계신 삼촌들은 두 분뿐으로 첫째 삼촌은 월남전에서 전사하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둘째 삼촌에 대해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친지모임에서 얼굴을 뵌 적도 없었고 친척들과 워낙 멀리 살기 때문에 별다르게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기회를 통하여 둘째 삼촌이 어떻게 돌아가시게 된 건지 알게 되었다.

당시에 할아버지께선 매일같이 노름판을 전전하며 힘들게 번 돈을 날리기만 하셨고 할머니는 둘째 삼촌을 임신한 줄 모르고 밤마다 홧술을 드셨다고 했다. 그래서 태어난 둘째 삼촌이 장애를 가지고 있었단다. 그 시절엔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힘들었기에 장애인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없었고 둘째 삼촌은 학교를 가지 않아 늘 할머니가 장사하는 장터에서 혼자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학교를 마친 엄마가 친구들과 장터에 놀러 나오면 꼭 엄마를 졸졸 따라다녀 주변 친구들의 놀림과 조롱으로 둘째 삼촌을 매우 창피해했다고 털어놓으셨다.

끔찍하게도 둘째 삼촌은 열일곱 꽃다운 나이에 이틀간의 실종 끝,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동네 야산에서 구타의 흔적이 가득한 채로 발견되었다는데 당시에 타살을 입증할만한 증거도 없었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경찰들의 대응조차도 몹시 미온적이어서 유야무야 사건이 마무리되었다며 엄마가 눈물을 보이셨다. 그 일 때문에 가족 모두가 충격을 받아 지금껏 둘째 삼촌에 대해서 쉬쉬하면서 사셨다고 말씀하셨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에 엄마는 둘째 삼촌에 대한 마음의 빚을 가장 먼저 청산하고 싶으신 듯 했다. 지금까지는 넷이나 되는 자식들 키우느라 아등바등 살기 위해 발버둥 쳐 왔다면 이제는 삶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으니 오빠에게 사죄하는 마음으로 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게 엄마의 지원 동기였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프로그램 보조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했다. 프로그램 보조로 발탁이 되면 복지관에 어떠한 프로그램 일정이 잡힌 뒤, 일시와 장소가 문자로 왔다. 엄마와 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날 일찍 찾아가서 미리 청소도 해놓고 책상이나 의자 세팅도 해두고 간단한 차와 다과도 준비했다. 풍선 아트나 종이접기 자격증을 가진 분들과 협업하여 예쁘게 벽면을 꾸미기도 했고 함께 가위질이나 풀칠도 돕는 등 자질구레한 모든 프로그램 준비에 관여했다.

우리 복지관에는 주로 발달장애나 자폐를 가진 친구들이 많았는데 특히 애를 먹었던 게 미용을 할 때였다. 머리를 자를 때는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는데 틱장애가 있거나 날붙이를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그럴 때면 엄마와 내가 친구들의 머리나 손을 잡고 무서워하지 않도록 계속 거울을 비춰주면서 예쁘다고 계속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해주었다. 그러면 몰라보게 깔끔해진 자신의 모습에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이 어린 아이와 같이 천진하고 사랑스러웠다.

내가 사는 동네는 주로 많은 분들이 농‧축산업을 생업으로 하시는지라 말을 키우는 분들이 많은데 그래서 특별하게 우리 복지관에서는 승마교실이 열린다. 나는 제주도 여행에서도 체험해보지 못한 승마를 이곳에서 처음 해보았다. 모두가 둥글게 모여 간단하게 준비 운동을 하고 안전 조끼와 각자의 헬멧을 지급받고는 숙련자의 지시에 따라 안장에 올라탄다. 그 과정에서 나와 엄마는 친구들이 조끼 벨트는 잘 끼워 맞췄는지, 헬멧은 얼굴 사이즈에 맞춰 잘 조였는지 일일이 확인해준다. 말은 결코 빠르지 않게 침착히 주인의 발걸음에 맞춰 걷는다. 자폐가 심한 친구들은 스스로 몸을 제어할 수 없어 안장에 앉은 친구들을 그저 바라만 본다. 그러면 말을 타고 도는 친구는 바라보는 친구가 서운하지 않게끔 이름을 불러주거나 손을 흔들어주는데, 그것만으로도 좋은지 멍하게 바라보다가도 활짝 웃어주곤 한다. 많은 대화가 오가지 않더라도 이렇게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위로가 되는 어여쁜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따뜻해진다.

해가 바뀌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리는 복지관의 모든 사람들과 ‘찐친’이 되었다. 굳이 프로그램이 있지 않는 날에도 우리 ㅇㅇ이는 뭐할까?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날이 더우면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러보고, 겨울이 되면 군고구마를 사서 놀러가곤 했다.

특히나 기뻤던 날은 복지관에 다니는 발달장애가 있는 한 친구의 어린 동생이 너무 늦게까지 말이 트이지 않아서 부모님이 전전긍긍하고 계셨는데, 내가 알아보니 장애진단이 없더라도 6세 미만인 경우에는 의견소견서로 발달재활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복지관에 발달장애가 있는 친구들이 많다보니 특히나 언어부분에서 소통이 되지 않아 이미 성인이 되었음에도 사회생활을 영위하지 못해 늘 안타까웠었다. 내가 이 분야에 관심을 갖다보니 우리 복지관에 발달재활서비스를 활성화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개인적으로 각각의 가정에 전수조사를 실시해 바우처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신청서 작성을 도와드렸다. 이미 신청 요건에 충분히 부합하는데도 불구하고 시골이라 알지 못하거나 복지관에서 충분히 설명을 들었음에도 경제적인 부분이 염려되어 이용하지 못하는 분이 많았다. 하지만 바우처를 이용하면 소정의 본인부담금을 제외하곤 모두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알아보기 전까지는 발달재활서비스라는 것이 언어 치료에 한정되었다고 알고 있었는데 언어뿐 아니라 청능, 미술, 음악, 행동, 놀이, 재활심리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행복하고 즐겁게 이어지던 복지관 나들이는 2020년 9월 이후로 뜸해지게 되었다. 1년 반의 시한부 생을 선고받았지만 엄마는 놀랍게 계속해서 기적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간에 총 세 번의 뇌수술, 5번의 신약 임상 실험, 100번이 넘는 방사선 치료….

언제부턴가 엄마는 가정용 산소호흡기 없이 생활할 수 없게 되었다. 급격하게 몸속에 있는 근육들이 사라지면서 화장실 가는 것조차 내가 업지 않으면 스스로 갈 수 없었고 먹는 양마저 현저히 줄어들었다. 주치의 교수님께서는 어떻게든 엄마에게 맞는 항암제를 찾기 위해 노력하셨지만, 엄마는 정량의 세 배가 먹는 마약성 진통제를 먹고도 잠들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결국, 나는 2020년 11월에 엄마와 함께 요양원에 입소했다. 진통제라도 강하게 놔주는 호스피스로 엄마를 보내고 싶었지만 발발한 코로나와 함께 호스피스엔 보호자가 동행할 수 없다는 조건이 있었으므로 홀로 있기 두려워하는 엄마와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엄마는 강한 통증으로 인해 섬망 증세를 보였고 점차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핸드폰으로 엄마와 복지관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여주면 간혹 제정신이 돌아오곤 했으나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12월 4일, 엄마는 천사가 되어 먼저 천국으로 가셨다.

장례식 날, 환하게 웃는 엄마의 영정 앞에 엄마가 그토록 아끼던 친구들이 엄마를 배웅 나왔다. 아직 죽음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고 왜 내가 그토록 서럽게 우는지 의아하게 보는 친구도 있었으나 그 곳까지 발걸음해준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친구들은 엄마에게 절을 하거나 헌화를 하지 않았다. 다만, 자신들이 마음을 담아 쓴 편지를 엄마에게 전해주었다. 천국에서 그 편지를 받아보며 활짝 웃고 있을 엄마의 모습에 눈에 선했다.

그렇게 나는 그 5년의 경험을 통해 현재 사회복지사로 2년째 재직 중이고 당시 학생이었던 내 남동생은 작업치료학과에 들어갔다. 삼촌을 향한 마음의 빚을 갚고 싶어 시작했던 엄마의 봉사는 우리 가족의 인생을 바꿔 놓았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넘어 우리 모두가 그저 인생이란 무대에서 환하게 빛나야 할 주인공임을 깨닫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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