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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 수상작 소개-①

보건복지부장관상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22-09-19 09:04:11
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8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 ‘일상 속의 장애인’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 공모전 결과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19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19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첫 번째는 보건복지부장관상 수상작인 박관찬씨의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다.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박관찬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 시험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시험에서 장애인에게 정당한 편의 제공을 하지만, 시각장애인과 청각장애인에게 편의 제공을 할 뿐 시청각장애인에게 맞는 편의 제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7년여의 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지만, 내 저시력에 맞지 않는 확대 문제지와 내 시청각장애에 맞지 않는 시험시간 연장으로 제대로 시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공무원이 아니면 시청각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맞는 직업은 거의 없을 거라고 당시엔 생각했다. 시청각장애로 인해 정보 접근이 부족했으니까. 그래서 언제까지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야 되는지 기약할 수 없었던 내게 유일한 취미생활은 영화를 보는 것이었다. 그날도 공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마음을 달래고자 영화 한 편을 다운로드 받아 보게 되었다. 우연히 발견해서 보게 된 영화는 ‘굿바이’.

영화 속 남자 주인공이 오케스트라 첼리스트였다가 실업자가 된 뒤 새로 선택하게 된 납관사로 일하게 되면서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처음에는 시체 만지는 일도 무서워했지만, 사장님이 정성스러운 손길로 고인을 배웅하는 모습을 보면서 점차 마음을 열고 열심히 일하게 된다. 하지만 그의 아내와 고향 친구는 왜 하필이면 그런 일을 하냐며 그의 곁을 떠난다. 그는 그래도 계속 납관사로 일하지만, 삶과 죽음과 관련된 직업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을 겪으며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첼로를 연주했다.

난 남자 주인공이 첼로를 연주하는 장면을 자주 정지시켰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첼로의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뿐더러 첼로라는 악기가 있다는 사실도 ‘굿바이’ 영화를 보고 처음 알았다. 내가 영화를 자주 정지시켰던 건 첼로를 연주할 때 남자 주인공의 얼굴 표정 때문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에서 마음이 괴로울 때 첼로 연주로 힐링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도 첼로를 배우고 싶다고.

사실 첼로가 어떤 악기인지도 모르고 어떤 소리가 나는지도 몰랐지만, 막연하게 첼로를 배우고 싶었다. 기약 없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날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삶의 활력소를 찾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활동 지원사에게 내가 거주하는 지역에서 첼로 레슨을 하는 선생님을 찾아달라고 했다. 총 다섯 명의 선생님 리스트를 받고 차례대로 문자를 보냈다. 레슨 할 시간과 장소, 레슨 비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 선생님은 모두 레슨을 거절하셨다. 내가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지막 선생님께 연락을 드릴 때도 레슨을 거절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다섯 번째로 연락드린 선생님은 내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하자 ‘첼로는 마음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악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열심히 해보자고 하셨다. 정말 고마웠고, 선생님 덕분에 첼로를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악보를 보기 어렵고 내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도 듣지 못한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활을 잡고 첼로의 활을 그을 때 나는 진동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첼로는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기 중에서 연주자의 심장에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 그래서 소리는 듣지 못해도 선생님의 말씀처럼 마음과 영혼을 담아 첼로를 배우고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첼로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뻤다. 하루 일과 중에서 첼로 연주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할 정도로 정말 열심히 연습했다.

하루는 외출하기 위해 집을 나서는데, 집 현관문에 포스트잇이 하나 붙어 있었다. 악기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는 내용이었다. 난 그때야 깨달았다. 내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벽간이나 층간으로 이웃들에게 얼마나 큰 소음을 주는지 전혀 몰랐다는 걸. 그날부터 더는 집에서 연습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첼로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서 연습했다.

하지만 현악기로 주변 온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악기인 첼로는 겨울에는 밖에서 연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 봄이 되어 날씨가 따뜻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하루 일과 중 첼로 연습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해하는 나는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한 끝에 거주하고 있는 건물의 모든 이웃에게 편지를 썼다.

“지난여름에 악기 소리로 큰 피해를 드려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악기 소리가 크게 들리는지 몰랐어요.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하루 일과 중에서 첼로 연습하는 시간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너무 죄송하지만 하루에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1시간 동안만 집에서 연습하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건물의 집집마다 문틈에 편지를 꽂으려고 하는 손이 덜덜덜 떨렸다. ‘정말 이래도 괜찮을까? 잘못하면 이 건물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텐데’ 마음속에서 누가 이렇게 말하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아니야, 첼로를 계속하고 싶으면 이렇게라도 해야 돼.’라고 외쳤다. 결국 용기를 내어 모든 문틈에 다 편지를 꽂아두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왔다.

그날 밤부터 내가 적어두었던 휴대폰 번호로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모두 마음껏 연습하라고, 괜찮다고, 응원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와닿는 문자가 있었다.

“인생의 즐거운 부분을 마음껏 즐기지 못해 속상하시겠어요. 편지 잘 받았고요, 당신이 듣지 못하는 첼로의 소리 제가 대신 들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웃들의 배려 덕분에 난 다음 날부터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첼로 연습하는 시간으로 정해두고 집에서 연습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며칠 뒤 외출을 하면서 새로운 입주자가 들어오는 걸 보고 또 양해를 구하는 편지를 써야 되나 고민이 되었다. 그래서 고민하다가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주었던 이웃에게 문자를 보내 물어보았다. 내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가 얼마나 크게 들리냐고. 내가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알아들을 정도로 크게 들린다고 대답이 왔다.

난 지난여름에 누가 악기 소리가 시끄럽다고 포스트잇을 붙였었다고. 그래서 혹시 새로 입주한 이웃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문자를 보냈다. 그랬더니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주었던 이웃이 그때 포스트잇을 붙였던 사람이 바로 자기라고 했다. 정말 깜짝 놀랐다.
그 이웃은 내게 첼로가 어떤 의미인지도 모르고 무작정 시끄럽다고 해서 내 편지를 읽고 내게 많이 미안했다고 한다. 하지만 난 오히려 그 이웃이 정말 고마웠다. 그 이웃이 포스트잇을 붙이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밤낮 가리지 않고 집에서 첼로를 연습했을지도 모르고, 잘못하면 더 큰 문제가 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일을 계기로 우린 좋은 이웃이 되었다.

첼로를 배우게 되었을 때 1년 동안은 가족을 비롯해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특히 가족은 “공부해야지 뭐 하러 첼로를 하노?”, “소리도 못 듣는데 어떻게 하노?”라고 하며 반대할 게 뻔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연주를 할 수 있게 될 때까지 비밀로 했다. 악보가 잘 보이지 않으니까 악보에 있는 음표와 쉼표, 각종 부호들을 내가 볼 수 있는 큰 글씨로 따로 옮겨 적은 뒤, 틈만 나면 그걸 보고 외웠다. 그렇게 다 외워지면 왼손으로 첼로의 지판을 짚으며 음정을 익히고, 그 다음 활로 그어보면서 연습했다. 하나의 곡이 어떤 곡인지 이해하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 연주를 하기까지 최소 한 달은 걸렸다.

그렇게 몇 곡 정도 연주를 하고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의에서도 연주를 하게 되었을 때 가족에게 첼로를 배운다는 사실을 이야기했다. 그 말을 듣고 엄마가 듣고 싶은 곡이 있다고 한번 연주해 보라고 했다. 가수 이정옥의 ‘숨어 우는 바람소리’였다. 난 전혀 모르는 곡이었는데, 누구도 아닌 ‘엄마’가 선곡했다는 사실에 그날 바로 악보를 구했다. 그리고 나만의 방법으로 곡을 마스터하기 위해 매달렸는데, 한 곡을 마스터하는 데 한 달이 걸리던 내가 그 곡을 하루 만에 다 마스터했다. 엄마의 존재가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시신경위축으로 인해 시청각장애를 가지게 되었어도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모두 일반학교로 보내셨다. 당시엔 장애학생에 대한 지원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장애에 대한 이해나 인식개선 교육도 이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늘 같은 생활을 했다. 맨 앞자리에 앉아도 칠판의 글씨가 안 보이고 선생님 말씀도 듣지 못해서 혼자서 책을 보며 공부했다. 선생님이 장애학생을 그저 무조건 배려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생각해서 난 친구가 거의 없었다. 장애라는 이유로 무조건 배려하고 특별한 혜택을 받으니 학생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중고등학교 시절이 더욱 그랬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가진 장애를 바라보지 않고 학급의 한 구성원으로 동등하게 대우했다. 수업 시간에 “손들어!”라고 말씀하시면 모두 두 손을 들어야 했는데, 가장 마지막에 손을 드는 학생은 앞에 나가서 등짝을 한 대 맞아야 했다. 난 선생님의 “손들어!”라는 목소리를 듣지 못해서 당연히 내가 걸렸는데, 선생님은 내 등짝을 때리셨다. 다음, 그 다음 수업 시간에도 “손들어!”에선 늘 내가 걸렸다. 나도 이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한 번도 억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날도 “손들어!”를 했는데, 내가 걸려서 앞으로 나갔다. 그런데 다른 학생이 나와서 나 대신 등짝을 맞겠다고 했다. 난 쉬는 시간에 그 학생에게 가서 고맙다고 했고, 우린 친구가 되었다. 그 뒤로 “손들어!”를 할 때마다 나 대신 등짝을 맞겠다는 학생이 계속 생겼고, 덕분에 나도 친구가 늘어났다.

또 하루는 선생님이 칠판에 아주 커다란 글씨로 “손들ㅇ-”라고 적었다. 칠판의 글씨가 안 보이는 나조차도 뭐라고 적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칠판에 가득 차도록 크게 적으셨다. 거기까지 적어둔 뒤 수업을 진행하시다가 어느 순간 뒤돌아서 칠판에 ‘ㅣ’를 그어 “손들어”를 완성하셨다. 계속 칠판을 보고 있었던 나는 얼른 두 손을 번쩍 들었고, 3학년이 된 뒤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학생이 등짝을 맞게 되었다. 그 학생이 앞으로 나갔을 때 나도 얼른 앞으로 나가서 내가 그 학생 대신 등짝을 맞겠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 선생님은 내 인생 스승님이다.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특별하게 여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동등하게 대우하셨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필요로 하는 통합교육을 직접 실천하신 덕분에 오늘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스승님이 내가 첼로를 배우고 있다고 했을 때 선곡하신 곡이 있다. 올해 10월 드디어 스승님 앞에서 연주를 하게 된다. 그날만 기다리며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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