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이 최근 ‘제6회 일상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이번 공모전은 장애와 관련된 일상 속의 모든 이야기를 주제로 장애인 당사자, 부모, 주변인들의 다양한 사연들이 총 427편 접수됐다. 이중 최유리씨의 ‘우리 집에 DJ가 산다’가 보건복지부 장관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총 20편이 수상했다.

에이블뉴스는 총 20회에 걸쳐 공모전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다섯번째는 가작 수상작인 박지향 씨의 ‘네모 꽃도 아름답게 필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다.

네모 꽃도 아름답게 필 수 있는 세상을 위하여

박지향

어느 날 정원사가 백 개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아흔다섯 개는 세모 꽃 씨앗이었고 다섯 개는 네모 꽃 씨앗이었습니다. 두 꽃은 필요로 하는 흙의 종류도, 물의 양도 서로 달랐습니다. 네모 꽃을 위한 흙을 준비하던 정원사는 갑자기 귀찮아졌습니다. 그래서 네모 꽃 씨앗을 세모 꽃 정원에 심고는 똑같은 양의 물을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세모 꽃은 아름답게 피어났지만, 네모 꽃은 기운 없이 시들시들했습니다. 그것을 보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모 꽃보다 세모 꽃이 훨씬 아름답구나!”

위의 이야기는 하버드 대학의 카마라 존스 교수가 제도적 차별을 설명하기 위해 든 비유를 조금 바꾼 것입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은 모두 똑같은 인간입니다. 필요로 하는 바가 다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음’을 강요하고, 이에 발맞추지 못하는 이들에게 미묘한 시선을 보냅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제 경험과 관련지어 답해 보려 합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반에 장애 아동이 있었습니다. 재영이라는 가명으로 부르겠습니다. 재영이는 자폐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수업 시간에 소리를 질렀고, 저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그림을 통해 우리는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재영이의 그림은 정말 멋있었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이면 재영이의 책상으로 몰려들었습니다. 하지만 가끔 학급 분위기가 기묘해질 때가 있었습니다. 재영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를 때마다 아이들은 손뼉을 치며 웃었습니다. 저는 아이들이 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일단 친구들이 웃으니까 저도 덩달아 신이 나서 같이 웃었습니다. 아이들이 웃으면 재영이는 더 큰 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급기야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때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더 크게 웃었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재영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때릴 때 웃어서는 안 돼. 이건 웃긴 게 아니야. 재영이는 소리를 지르고 싶어서 지르는 게 아니고, 너희도 그걸 웃기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거야.”

무슨 뜻인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아무튼 거기에 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의 단호한 설명이 지나간 후, 우리가 다시 재영이의 행동에 웃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대신 재영이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1년이 지났습니다. 저는 이번에도 재영이와 같은 반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실과 시간에 새로운 선생님이 들어오셨는데, 그 선생님은 친구가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정상적인 애들을 이런 비정상적인 애랑 같이 수업 받게 하는 걸 이해를 못 하겠어. 이런 애는 어디 다른 교실에서 수업 받게 해야 하는 것 아니니?”

그러면서 재영이에 대해 여러 번 불평하셨죠. 그 선생님은 평소에도 심술쟁이였기 때문에 아이들은 처음에는 그 말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불평을 자주 듣게 될수록, 아이들의 행동도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재영이를 비난했습니다. “저 아이는 왜 우리와 함께 수업을 듣지? 솔직히 좀 방해되는 것 같아.”

쉬는 시간이면 재영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놀던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저도 냉담해진 교실 분위기에 쭈뼛거리며 재영이를 멀리하게 되었지요. 아이들은 재영이의 곁에 다가가지 않았고, 재영이가 소리를 지를 때 웃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싸늘한 시선을 보낼 뿐이었습니다.

재영이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계속 심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재영이를 놀리는 아이들도 생겨났습니다. 아이들은 재영이가 종이에 써 준 글씨를 읽으라고 시키면 무조건 읽는다며 재미있어했습니다. 급기야 종이에 음담패설을 써놓고 읽게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침이었습니다. 조회 시간 때까지만 해도 오늘도 비슷비슷한 하루가 지나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교시 시작 전, 재영이의 아버지가 성큼성큼 교실로 걸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평소처럼 그분이 재영이가 수업을 받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다 가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재영이 아버지는 약간 화난 목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재영이는 전학 갈 거야.”

나중에 듣게 된 바로는, 재영이가 아이들이 읽으라고 시켰던 음담패설을 기억했다가 아버지 앞에서 말한 모양이었습니다. 이에 재영이 아버지는 깜짝 놀라셨지만, 이윽고 어렵지 않게 아이들의 짓임을 알아차리셨겠지요. 심술궂은 장난 그 이상의 일을 저질러버린 아이들을 남겨둔 채, 재영이는 그렇게 허무하게 떠나가 버렸습니다.

같음을 강요하고 이에 발맞추지 못하는 이들을 차별하는 행위. 이러한 행위가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답하겠다고 말씀드렸지요. 이 일은 어찌 보면 그저 교사 자격 없는 교사의 차별 때문에 벌어진 일 같습니다. 부분적으로는 맞습니다. 그 선생님은 네모 꽃을 세모 꽃과 똑같이 대했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는 네모 꽃을 질타했으니까요. 하지만 그 너머에는, ‘다름’을 ‘열등함’으로 보고 기만하는 심리가 있었습니다. 학급의 수많은 아이들과 ‘다른’ 재영이의 행동을 열등하게 보고, 재영이를 대놓고 기만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을 보며 아이들도 똑같이 재영이를 기만하고 차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모 꽃은 세모 꽃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이 오기 전, 재영이와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간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재영이가 소리를 지르면 기다려 주고, 진정하면 다시 함께 그림을 그리던 시간. 그때의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다르게 대함으로써 우리들만의 아름다운 정원을 꾸며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재영이가 떠나고 8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사람을 대하는 직업인 간호사를 꿈꾸는 입장에서 재영이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는 저도, 그리고 네모 꽃과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여러분도 그저 방관하는 것이 아니라, 제 잎을 펴지 못하고 있는 네모 꽃에게 필요한 것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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