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장애인개발원은 매년 장애인 일자리 확대 및 장애인식개선을 위해 ‘장애인일자리사업 우수참여자 체험수기’를 공모하고 있다.

2018년 공모에는 17개 시·도에서 133건의 수기가 접수됐고 심사결과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3편이 선정됐다. 수상작을 연재한다. 열두 번째는 시각장애인 안마사 파견사업 우수상 수상작 황혜선 참여자의 ‘행복한 손’이다.

행복한 손

황혜선(대전광역시 서구)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살다가 기대와 기쁨 속에서 세상에 태어났어요. 엄마는 손가락을 하나 둘 셋 세어 보내요. 혹시 어디 하나 부족하거나 이상이 있는지 확인을 하네요. 그런데 세상을 맑게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니 청천병력 같은 마음이네요.

진정으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오늘 저녁 꿈속에서 "혜선아!, 혜선아”하면서 내가 너의 눈을 볼 수 있게 해 줄 거야라는 꿈을 꾸고 싶어요.

세상에 태어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야 할 권리가 주어져 있다 하는데 우리는 어떤가요.

시각장애인이 좋아서 내가 선택한 것은 아니지만 하필 나에게 시각장애인이라니... 너무나도 세상을 원망하고 부모를 원망해보기도 했어요. 그러나 나에게도 시각장애인이 대물림이 되었네요. 그래서 저는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꿋꿋이 살아야 했어요.

오일장으로 구기자 따고 벼 베기, 쓰레기매립장으로 어린이집 주방 아줌마로 생활비를 벌어야 했어요. 저에게는 아들 딸 남매를 책임져야할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있기에 한 여성으로서도 저는 외로움을 느낄 여유를 누릴 겨를조차 없이 지냈네요.

시각장애인이 비장애인과 일을 하다 보니 부상도 많이 입었고 작업에 대한 능률도 많이 부족하다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관계도 매우 어려웠어요.

대전으로 이사를 오면서 점자와 안마를 배우게 되었어요.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내 마음껏 열심히 안마를 하면 최소한의 생계유지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대전안마사업단 입사를 하게 되었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성의 것 어르신들께 20분 전신안마를 해드렸어요. 대전시내의 복지관을 다니면서 즐거움도 많았어요.

때로는 "20분 안마가 무슨 도움이 돼”하면서 투덜거리거나 "안마 받으나 마나 아니야.”하시는 분도 계셨어요. 하지만 "힘들지? 아이구 우리 자식보다 낫네. 고마워.”하시면서 사탕을 손에 쥐어주시는 분도 계셨어요.

안마사 선생님이 오시는 날 잊어버릴까봐 달력에 동그라미 표시를 하고 안마표를 받기 위해 아침 일찍 복지관에 오셔서 기다리신다고 하시네요. 너무나도 고맙고 감사하죠.

시각장애인이 안마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육군사관학교 교관이 되어서 저의 열정을 발휘하고 싶었는데요. 현실적으로 아주 먼 이야기가 되었어요. 직업은 취미와 적성에 맞는 선택을 하여야 하는데...

처음에 어르신들을 대하고 안마를 해드릴 때는 적지 않은 마음의 부담이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집에 같이 사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열심히 하리라.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살겠다. 생각하다보니 편안한 마음으로 어르신들을 대할 수 있게 되었어요.

누구에게나 이야기하기 힘든 것이 있듯이 제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이 우울감에 빠져서 본인 안에서 거의 나오지 않고 저와 대화가 전혀 없이 혼자서 8년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어요.

저는 몸과 마음이 힘들었지만 엄마와 아들이 서로 싸울 수가 없었어요. 어린 아이도 아니고 다 큰 자식인데 때리고 등을 밀어서 안마를 배우게 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 서류와 면접으로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오빠인 제 아들이 스스로 맹학교에 입학을 하고 안마사자격증을 취득했어요.

아들은 안마를 배우면서 자기 용돈을 처음으로 벌어서 쓰게 되었어요. 다른 알바나 취직은 꿈을 꿀 수도 없었어요. 저에게는 아들이 너무나도 대견했어요. 지난 5월 8일 날 아들이 편하고 쉽게 쓸 수 있는 아이폰을 사줬어요.

그런데 제가 기계에 약해 사용하지 못하고 틈틈이 배우고 있어요. 안마를 해서 번 돈으로 엄마인 저에게 선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는데 아이폰을 잘 배워서 소중하게 오래오래 쓰려고 해요.

지난 8월 17일 금요일은 저의 생일이었는데 아들이 “엄마 무엇이 먹고 싶어요? 좋아하는 거 있으면 이야기해줘. 엄마가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내가 사줄게.”라고 하더라고요.

순간 제 눈에는 눈물이 나서 말을 이을 수가 없었어요. 엄마인 저는 항상 아들을 볼 때마다 나의 시각장애를 대물림해준 것 같아서 33년 동안 많이 미안했거든요.

시각장애를 가진 아들이 안마를 해서 생전 처음으로 저에게 먹고 싶은 것을 사준다고 하니 그동안의 힘들고 어렵게 했던 묵은 감정이 한순간에 행복한 마음으로 바뀌었어요. 안마사업단에서 아들과 같이 안마를 하면서 웃을 수 있었어요. 장애인의 일자리 창출이 저희 가정에는 행복을 주는 마술사 같아요.

비장애인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보지만 우리 시각장애인은 손끝으로 어르신들의 삶의 고단함과 그분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볼 수 있어요.

때로는 양말에 구멍이 나고 헤진 바지를 입으신 분도 계셔서 마음이 아프기도 했지만 안마사라는 직업을 통하여 여러 어르신들을 행복하게 만날 수 있고 이 행복한 손으로 어르신들의 얼굴에 웃음을 찾아줄 수 있다는 것이 그 어떤 직업보다도 자랑스럽다고 생각해요.

시각장애인이 다른 직업을 선택할 수 없기에 안마사 직업은 필요 불가결한 직업입니다. 우리에게도 4대보험이 적용되는 월급을 받게 되어서 행복해요.

많은 안마사들이 내가 배운 안마를 하면서 한 사회인으로서 열심히 살아갈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들에게 안마라는 직업이 보장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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