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영화를 관람하기 전, 장애인들 앞에 서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 청와대브리핑>

29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은 청와대 연무관으로 장애인 당사자 등을 초청해 영화 '맨발의 기봉이'를 관람했다. 이날 영화가 시작되기 전 노무현 대통령은 장애인 대책이 너무 부실하다고 사과하고, 획기적인 대책을 함께 만들자고 밝혔다.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과 장애인단체 관계자들의 발언 전문을 싣는다.

▲노무현 대통령 인사말=반갑습니다.(박수) 요즘 TV에 장애인 얘기들이 참 많이 나오죠. 그 전보다 많이 나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에도 간간이 그런 프로를 접했습니다. 대통령 후보 시절에 장애인 체험행사를 갖기도 했고, 같은 날 ‘오아시스’란 영화를 보기도 했습니다. 참 쑥스러웠습니다. 대통령 표 달라고 쇼를 한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저로서도 그때 후보 자격으로 체험행사 한다는 것이 너무 마음에 부담가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래서 후보 때만 이러지 말고 대통령 되고 나서 제대로 하자고 굳게 다짐을 했었습니다.

2003년부터 장애인정책 5개년 계획이 2차로 들어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로서는 꽤 버겁게 생각하는 모양 같습니다만 장애인 정책이 너무나 미흡하고 부족해서 흔히 우리가 말하기를 언 발에 오줌누기라는 느낌이 들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 미안하게 생각하고, 그런 와중에 장애인 이동권 문제를 가지고 간간이 강경한 투쟁들이 있어서 시기시기 마다 감당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당시 경제상황에 대한 국민들의 부담이 너무 컸습니다. 우리가 3.1%, 4.6%, 4% 이 정도 성장이면 OECD의 다른 국가에 비하면 낮은 경제성장은 아닙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와 그 뒤의 후유증이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주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가계부도 상태와 같이 부분부분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국민들이 부담을 느껴 대통령에게 압력이 고스란히 밀려오는 바람에 경제 이외에 다른 문제에 스스로 관심을 가질 겨를도 없었고, 관심을 가지면 흠이 될 수 있는 분위기 속에서 2년간 지내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마음이 미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요즘 계속 자료 보고, 정책 보고 말하는 전체 과정이 양극화 문제, 장애인 문제, 여성 문제, 노인 문제 등입니다. 대개 이대로 해나가면 되겠다 싶은데 특별히 너무 대책이 부실하다 싶은 쪽이 장애인 대책입니다.

98년 김대중 대통령 되셨을 때 장애인 5개년계획이 처음 시작됐고, 저희한테 제2차가 넘어왔는데, 너무나 미흡합니다. 남은 기간이라도 좀 획기적으로 토대를 만들어보자고 해서 지금 유시민 장관을, ‘쪼고 있다’ 그러죠? 그러고 있습니다. 유시민 장관도 그 점에 대해서는 각별히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 스스로가 여러분들 모시고 이 같은 행사를 하는 것은 저와 우리가 모두 함께 다짐하자는 것입니다.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이 자리에 정부 관계자, 청와대 참모들, 의원님들도 와계십니다. 서로 약속하고 부담을 주고 부담을 느끼면서 열심히 해보자는 다짐입니다. 혼자서 다짐하는 것이 더 좋은 일이나, 도덕적으로 더 고귀하게 보일지 모르나 정치는 현실입니다. 공개적으로 약속하고 그 약속에 압력을 받고, 공개적으로 부담을 갖는 과정이 한정된 자원을 나눠써야 하는 국가 처지에서는 꼭 필요합니다. 압력이 높을 수록 성과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늘 여러분께 앞으로 잘하겠다, 꼼꼼히 신경써서 획기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으로 받아주고, 함께 일하시는 분들도 함께 다짐하고, 여러분은 앞으로 지속적으로 감시라면 어떨지 모르나 독려해 주시면서 함께 해나가도록 합시다.

영화에 대해서 말하면, 영화를 보고 나면 가슴에 남습니다. 보고서 보지만 머리 속에만 남고 몸에 진정한 결심으로, 결심으로 남아도 느낌으로 남지는 않습니다. 영화를 보면 강한 느낌이 있습니다. 아는 것 이상의 감동이 있습니다. 영화 만드신 분들에게 참 좋은 일 했다는 생각이 들고, 영화로서도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영화 만들었느니까 돈 버셔야죠. 흥행에도 성공하시고, 돈 버시면 이런 좋은 영화 계속 만들어 주십쇼.

이익섭 교수가 인사말 해주셨는데 개인적 삶 자체가 우리에게 용기, 격려를 주는 본보기들이 많습니다. 삶이라는 것 자체가 평범한 것과 달라 그 자체가 감동인 분들이 많이 오셨는데 이렇게 자리 함께 해주신 점 감사합니다. 약간의 의심이 왜 없겠습니까. 대통령이 우리 데려다 장사한다는 의심이 왜 없겠냐만서도, 대승적 차원에서 함께 해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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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익섭 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장(한국장애인연맹 회장)=무궁한 영광입니다. 대표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한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장애를 선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따라서 장애 문제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나라 발전의 중요한 지표입니다.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장애는 복지 문제이기도 하나 인간의 존엄성, 인권의 문제입니다. 이런 자리를 통해 대통령이 장애인 문제를 다시 한번 귀중히 여겨주고 큰 변화를 이끌어주시길 바랍니다.

▲ 차영식(뇌성마비1급)군=몇년 전 방송을 통해 기봉이 아저씨 얘기를 봤습니다. 그때 TV를 통해 아저씨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과 깨달음을 얻었는데 오늘 영화 본다는 얘기 듣고 너무 기뻤습니다. 더구나 청와대를 살면서 오게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더 꿈만 같습니다. 특히 대통령님과 이 영화를 보게 돼서 영화가 더 재밌었습니다. 이 기회를 빌어 다시한번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4월 5일 대입검정고시 시험을 봤습니다. 솔직히 겁도 나고 걱정도 많이 됐지만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습니다. 비장애인에게 아무 것도 아닌 일이 장애인에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 됩니다. 쉽게 포기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난과 장애라는 여건 속에서도 늘 환한 웃음 잃지 않은 기봉이를 보고 많은 힘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기봉이를 보고 감동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이만영 한국장애인부모회장(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감동스런 영화를 만들어줘 감사합니다. 장애인 인식 변화에 큰 효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자리를 만들어준 대통령께 감사드립니다. 비장애인들에게도 이 영화는 감명을 주는 바가 많습니다. 누구나 세상 사는데 굳건한 발디딤판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장애인들은 부모를 떠나서 굳건하게 디딜 자리를 스스로 못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이런 자녀 두고 먼저 눈감기가 어려운 현실입니다. 모두가 기봉이의 동네사람 같은 이웃이 돼야겠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앞장서서 이장 같은 역할을 해서 장애인들이 부모를 떠나 홀로 설 수 있는 굳건한 이웃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영화를 관람했습니다.

▲ 변승일 한국농아인협회장=눈물이 날 정도로 많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저는 농아인으로서 의사소통을 못해 답답함을 느껴왔습니다. 한달 전 부모님 팔순, 칠순을 겸해 행사를 가졌는데, 부모님과 나누지 못한 의사소통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그동안 부모님께 느꼈던 감사, 은혜의 마음을 대화, 수화로 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이 수화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팔순, 칠순을 맞아 저를 태어나게 하고 건강하게 키워주신 것에 감사하고, 효도하지 못한 점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막내동생까지도 청각장애가 있고 장녀, 차녀도 농아인입니다. 부모님도 손자가 농아여서 많이 좌절했습니다. 어렸을 때 모두 모여 TV를 보고 있었습니다. 외국영화 빌려보고 있었는데, 부인과 아들은 농아이고 막내는 말을 합니다. 그 아이가 화장실 가서 오지 않아서 보니까 울고 있었습니다. 다들 수화로 재밌게 얘기하는데, 딸이 그 때는 어릴 때여서 자막을 못 읽어 소외감을 느낀다고 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이 살아가면서 내 입장만 있는 게 아니구나, 입장을 바꿔 생각하게 됐습니다. 부모님께 원망하고 효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고 100살까지 살라고 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수화를 배우면 좋겠습니다. 스페인은 국왕, 국무총리, 국민 90%가 수화를 사용해 굉장히 유익한 시간을 보내고 왔었습니다. 아직 농아인들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조속히 관련 법이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국정운영하는 대통령과 국민이 수화를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손을 통해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고, 장애인을 앞서서 사랑하고, 지구촌에서 장애인을 이해하는 뛰어난 대통령 돼주시기 바랍니다. <자료제공 청와대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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