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해수관음보살 @ 낙산사

스물여덟살에 서른여덟살의 한 남자를 만났다. 인연은 어쩔 수 없다지만 그의 인생에서 만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다. 편의상 그 남자를 K라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K는 처자식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러나 이미 헤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방을 하나 얻어 살림을 차렸다. K는 건설관련 일을 하고 있었기에 K를 따라 지방으로 이사를 가기도 했다.

K는 가끔 본가에 다녀오곤 했으나 그럭저럭 몇 년을 살았다. 그런데 처음 만났을 때는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으나 점점 아닌 것 같았고 친정 가족들의 반대도 심해서 살림을 정리하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동안 백화점 부식코너에 근무한 경험이 있었기에 부산에서도 모 백화점 부식코너에서 일을 했다. 부산으로 내려오자 K가 돌아오라고 했다. 전화를 하기도 했고 직접 찾아오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는 다시 돌아 갈 생각은 없었다. K는 '안 돌아오면 다리를 잘라 버리겠다'고도 했다.

K의 공갈 협박에 시달리면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아는 언니가 절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그 언니의 소개로 찾아 간 어느 절의 스님은 처음 그를 보고 '무슨 애가 저리도 많을꼬?'라고 하더란다. 절하고 인연이 많다면서 천도재를 지내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래도 마음을 잡지 못해 이곳 저곳 기웃거려 보다가 어느 날 서점에서 '업' 관련 책을 보게 되었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 신세가 이럴까' 싶은 생각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처음 갔던 절을 다시 찾아가니 그곳 스님이 '비구니가 되어야 니도 살고 가족도 산다.'고 하더란다.

그 후 삼광사에도 다녀보고 한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구인사에서 한달간 기도를 하기도 했다. 기도를 하는데 스님이 자기기도는 안하고 왜 남의 기도를 하느냐고 야단을 치셨다. K가 찾아올까 봐 무서웠었다. 정말 다리를 자를 것만 같았고 가족들을 괴롭힐 것 같아서 제발 K가 잘 되어 자신이나 가족들을 괴롭히기 않기를 빌었는데 스님이 그것을 어찌 알았을까.

스님은 K와의 관계를 끊으라고 했다. 그 길로 이 절 저 절로 떠돌았다. 비록 머리는 깎지는 않았지만 회색 절복을 입고 배낭 하나만 달랑 메고 여러 절을 전전했다. 차마 머리를 깎을 용기는 없었지만 어느 스님에게서 성지라는 법명도 받았다.

서울의 한 절에서 절의 살림을 도와주고 있을 때 스님은 '대운이 오고 있는데 죽음도 같이 오고 있다'며 열심히 기도하라고 했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서너달이 지나면 절에 사소한 문제들이 생겨 더 이상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어느 날 절을 나와 서울역으로 갔는데 서울역에서 비구니 스님을 한분 만났다. 자기는 동화사 가는 길인데 그에게는 합천 해인사로 가보라고 했다. 합천 해인사에서 1주일쯤 정진기도를 했다. 그를 눈여겨본 한 스님이 '왜 입산할 생각을 안 하느냐. 혼자 공부할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

그러자 문득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만났던 낙산사 관음보살이 떠올랐다. 갑자기 관음보살이 보고 싶어 낙산사로 향했다. 낙산사 관음보살님에게 'K가 잘 되게 해달라, 가족들이 배곯지 않게 해 달라, 사바세계 모든 중생들이 성불하게 해 달라' 등을 빌었다. 눈물이 났다. 얼마나 울었는지, 그리고는 정동진을 들러 서울로 갔다. 전에 있었던 절에 가보려고 했었다. 지하철 이대역이었고 저녁 무렵이라 사람들이 많았다.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눈을 떠보니 강북00병원이었다. 머리를 다쳐서 수술을 했단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가 잘려 나가고 없었다. 기가 막혔고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병원을 옮기고서 몇 번인가 수술을 더 했다.

속에서 불이 나 하루는 환자복을 입은 채 택시를 타고는 청와대로 갔다. '사고가 났으면 조사를 해야 할 것 아니냐,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며 울부짖었다. 당시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초소에서 어떤 사람이 나와서 여기서는 해결이 안되니 법원(?)으로 가라며 택시를 잡아서 억지로 태워 주더란다.

그러는 가운데서도 시간은 흘러 상처가 어느 정도 아물자 하루라도 더 이상 병원에 있기가 싫었다. 집으로 전화를 해서 빨리 퇴원시켜 달라고 했더니 작은언니가 집으로 오라고 해서 그 길로 택시를 타고 부산으로 왔다.

집에 오니 예전과 달리 가족들이 상대도 안 해주었다. '너거들이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대들었더니 큰언니가 병원차를 불러서 실려 갔다. 어느 병원인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아무튼 정신병원이었다. 김향숙씨의 삶은 ③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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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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