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철수씨 부부와 손녀.

어머니의 벌이는 시원찮아서 조금씩 산동네로 이사를 했는데 덕분에 초등학교를 중앙 초량 수성 등 4번이나 옮겨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중학교에 입학을 하였다. 아버지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여자가 따라 다녔고 그가 중학교 2학년때 결국 어머니와 헤어졌다. 그는 더 이상 학교를 다닐 형편도 못되었고 하는 수 없이 야간으로 옮겼다. 겨우 중학교를 졸업하고 그래도 어머니는 기술을 배워야 한다면서 부산기술고등학교 무선과에 입학시켰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다음해 어머니는 수정동에 조그만 전파상을 마련해 주었다. 라디오와 전축을 수리하고 TV 안테나를 설치하는 것이 전파상의 일이었다. 근처 이발소에 머리를 감겨주던 제주도 친구가 있었는데 둘은 죽이 맞아 자주 어울렸다.

그 친구와 공기총을 한자루씩을 사서 둘러메고 구봉산으로 새를 잡으러 가다가 파출소에 잡혀 총을 압수 당했다. 공기총은 경찰서에 허가를 받아야 사용할 수가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다음날 동부경찰서 보안과에 허가를 받으러 갔더니 장애인은 허가를 해 줄 수 없다고 했다. 장애인은 자살 등 위험소지가 있어 안 된다는 것이다.

"내 주소. 병신 된 것도 억울한데 병신은 공기총 하나도 가질 수 없단 말인기요. 내 주소."

보안과 담당자는 안 된다고 했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 허가를 받지 않고는 돌아가지 않을 작성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버티자 담당자도 어이가 없는지 "당신 목발 없이 걸을 수 있소. 목발 없이 한바퀴만 돌아보면 내 주겠소." 그는 목발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아는 경찰이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고 무리한 요구를 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시도했고 기적이 일어났다. 목발을 친구에게 맡기고 오른쪽 다리를 손으로 바치고 사무실을 돌았다. 한바퀴만 돌라고 했는데 세바퀴를 돌았고 총기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중고 카스트레오 하나를 샀는데 알고 보니 장물이었다. 경찰이 잡으러 오기 전에 전파상을 정리하고 제주도 친구를 꼬드겨서 제주도로 달아났다. 그 친구의 집은 함덕이었다. 함덕문화극장에서 금반지 쟁탈전 노래자랑이 있어 출전하였다. 라훈아의 '바보 같은 사나이'를 불렀는데 1등이었다. 사냥 다니고 술 마시고 노래 부르고. 금반지까지 팔았으나 얼마 되지 않아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부산행 연락선을 타야 했다.

부산에 돌아와 보니 그 사이에 어머니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친구들 자취방을 전전했다. 그러다가 아버지를 찾아 3천원을 빌려서 못골시장에서 포장마차를 차렸다. 혼자서는 포장마차를 옮길 수도 없어 친구와 함께 시작했는데 호떡을 굽고, 고구마를 채 썰어 튀기고, 토스트를 팔았다. 근처에 창고를 빌려서 연탄난로를 피우고 친구와 살았는데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어 죽을 고비도 넘겼다. 장사가 좀 될만하자 구청에서 포장마차 리어카를 끌고 가버렸다.

연탄가스 중독이후 대연동 산꼭대기에 달셋방 하나를 선불을 주고 얻었기에 당장 잠을 잘 곳은 있었으나 수중에는 돈 한푼이 없었다. 참으로 막막했다.

친구들과는 부산진역 소라다방에서 주로 만났는데 소라다방은 그들의 아지트였다. 차비도 없었기에 대연동에서 소라다방까지 걸었다. 다방 마담을 어머니라고 부르며 DJ를 봐주면서 소라다방에서 개겼다. 친구들에게 돈 한푼 달라는 말은 차마 나오지 않아 전화한다고 동전 5원을 빌려서 모았다. 삼양라면 한 개에 15원이었는데 거북선이 그려진 5원짜리 동전 3개가 모이면 라면 하나를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루를 라면 한 개로 때우며 방안에 드러누워 이것저것 공상을 하다보면 끝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방안에 조그만 손거울이 하나 있었는데 우연히 거울에 비친 내 꼴이 너무나 비참해서 거울을 붙잡고 몇 시간씩 운 적도 있었습니다." 죽으려고 세코날을 한알씩 사 모았고 30알이 되던 날 시도를 하였으나 몸만 버리고 죽어지지는 않았다.

몇 군데 직업소개소에도 가 보았으나 그를 받아 줄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한번은 소개소에서 내 꼴을 보더니 차라리 거리에서 껌를 팔면서 구걸을 하는 게 낫겠다고 하더군요." 숙식을 제공해주는 과자공장에 들어가서 하루에 20시간씩 일을 하기도 했다. 라디오 기술이 있다고 금성사에 편지를 보내기도 했고 구두닦이도 해보고 별짓을 다 해보았으나 그가 할만한게 못되었다. 류철수씨의 삶은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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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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