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보일 때의 서창석씨.

2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갈 무렵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눈앞이 좀 침침해졌다. 그러나 지난여름 안과에 갔다 왔다는 것도 잊은 채 도서관 형광등이 낡아서 빛이 희미해진 거라 고 생각하고는 도서관을 나와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그의 집은 대청동이라 학교 앞에서 27번 버스를 타고 창가에 앉았다.

무심히 창밖을 내다보다가 우연히 오른쪽 눈을 비볐는데 그 순간 거리의 차들이 보였다가 흐려졌다가 하는 게 아닌가. 이상하다 싶어서 이번에는 왼쪽 눈을 가려보니 오른쪽 눈은 잘 보였다. 왼쪽 오른쪽 번갈아 가며 몇번이나 시도해 보았다. 왼쪽 눈을 가렸을 때는 차들이 정상으로 보였으나 오른쪽 눈을 가리면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이 흔들리면서 파도타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체육시간에 배드민턴 시험이 있었고 분명히 눈앞에 오는 공을 쳤는데 공이 맞지를 않았던 것이 생각났다. 그제서야 뭔가 눈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다음날 A대학병원 안과로 갔다. 레지던트가 진료를 하고는 잘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하면서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아 보라고 했다. 전문 교수님의 진료를 예약해 놓고 며칠 후에 다시 갔다. 그 교수님도 이리보고 저리보고 온갖 검사를 다 하고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속으로 '대학병원 교수도 참 실력 없네' 하고는 그냥 돌아 왔다.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은 눈앞이 침침하다는 것 외에는 전혀 통증이 없었고 별로 불편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몇 주일이 흘러갔다. 그리고는 11월 어느 날 오른쪽 눈마저 침침해졌다. 이제 당장 보는 것에 지장이 왔던 것이다. 이번에는 실력 없는 의사가 있는 A병원이 아니라 B대학병원으로 갔다. 진료를 마친 의사는 상태가 심각하다면서 당장 입원을 하라고 했다. '여기는 좀 실력 있네'라고 생각하며 집에다 연락을 하고 바로 입원을 하였다.

'시신경염으로 인한 시신경위축'이라고 했다. 병명은 알았지만 원인은 몰랐다. 술 담배 스트레스 외부충격 바이러스 감염 등 여러 가지 원인을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의사는 아래눈꺼풀을 뒤집어 주사를 놓았다. 약먹고 주사 맞고 일주일을 병원 침대에서 뒹굴었다. 의사는 시신경염의 경우 일주일이 마지노선이라고 했다. 일주일을 치료해도 돌아오지 않는다면 가망이 없다는 것이다. 일주일이 지났건만 그의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퇴원을 했다.

1994년 겨울이었고 거리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의사는 실명할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아무 생각이 없었다.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느낌은 어떠했으며 그 후에는 무엇을 했을까. 필자는 이 부분에 대해서 몇 번이나 되물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 것도 안 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 느낌도 없었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럴리가. 그러나 그는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다고 했다. 보통의 사람들도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그냥 잃어버린다. 그의 인생에서 그 해 겨울은 정말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아니었을까.

'어머니께서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금쪽 같은 내새끼가 눈감은 봉사가 되다니.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일이었으리라.

'나 보다는 가족들이 더 절망했던 것 같은데 저는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참 힘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루 종일 방안에서 아무 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컴퓨터 게임 같은 것도 안했나요?'

'병원에서 퇴원하고 다시는 컴퓨터는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컴퓨터는 선배한테 팔았습니다.' 그는 당시로서는 최고급의 노트북을 가지고 있었는데 선배한테 반값에 팔았단다. 컴퓨터를 팔았을 때의 심정도 모르겠단다.

그무렵 스테로이드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도 위장이 안 좋단다. 그러는 사이에 어머니는 백방으로 알아보고 좋다는 약을 달이기도 했으나 그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눈은 점점 더 나빠졌다.

교회에 나갔다. 그 뿐이었다. 그해 겨울 그리고 그 다음해까지 어떻게 지나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아무 것도 생각나지가 않는다는 것이다.

96년 봄 작정기도 40일에 들어갔다. 자신이 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눈을 볼 수가 있을 것인지 하나님의 응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작정기도 20일이 되던 날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잘못되었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다는 응답이 오더라는 것이다.

그는 본래 내성적인 성격이라 대학생이 되면 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활발해지고 싶었단다. 그래서 학과 친구나 선배들과도 어울리고 JC에 가입하여 동아리활동도 열심히 하면서 술과 담배를 배우고 교회를 멀리 했었는데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에게 소홀했던 자신의 교만함에 대해서 참회하고 용서를 빌었다. 남은 기간동안 교회에서 중보기도(仲保祈禱)가 시작되었다. 교인들이 그를 위해 기도했던 것이다. 작정기도가 끝나고 내면이 정화되어 자신이 안보이게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창석씨의 삶 (3편)에 계속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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