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당선 된 장향숙씨.

장향숙 58년 개띠. 여성 그리고 1급 장애인이다. 그는 걸을 수가 없다. 그가 움직일 때는 휠체어에 의지해야 한다. 휠체어를 타는 여성 장애인 그가 제17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필자는 그의 나이가 58년 개띠라고 알고 있는데 국회의원 프로필을 보니까 61년생으로 나와 있다. 아마도 생사가 불확실하여 출생신고를 미뤘던 모양이다.

작년 이맘 때만해도 그가 정치인 아니 국회의원이 되리라고는 본인은 물론이고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작년 6월 한국여성단체연합 김희연 정책위원장이 4.15총선을 앞두고 소외계층의 대표로 여성의 정치진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소외계층의 대표로 장애여성이 나가는 것이 대체적인 여론이었다. 그러면 누구를 대표로 내보낼 것인가. 중증장애인 무학 그리고 장애대중속에 살았던 장향숙으로 집약되어 졌고 장애인특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으면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이 된 것이다.

그는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경북 영주군 평은면 지곡리라는 산골마을에서 아버지 장창휘(작고)씨와 어머니 김연수(74)씨 사이에서 1남 4녀 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말로는 애가 올되어서 돌도 되기 전에 걸었다는데 그는 걸어 본 기억은 없다고 한다.

1년 6개월만에 소아마비가 덮쳤다. 어머니가 두고두고 후회한 것이 한의원에 갔더라면 하는 것이었단다. 당시만 해도 그의 가족은 비록 산골에 살았으나 증조부께서 지곡교회를 설립하고 모두가 열성인 개신교신자로서 나름대로 신식이었기에 그가 열이 나고 앓기 시작하자 안동기독병원으로 데려갔으나 소용이 없었고 다시는 일어서지 못했다.

부모님은 어린 딸을 위해 온갖 처방을 다했다. 여기저기 용하다는 곳만 있으면 찾아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침도 놓고 뜸도 뜨고 한센병 약도 구해오고 별의별 민간약도 다 썼다. 기독교 집안이었으므로 굿만 빼고는 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료의 순례길은 그가 11살이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11살 무렵 용한 침쟁이가 왔다고 했는데 그의 기억으로는 손가락 만한 대침(大針)을 두대 나 놓았다. 너무나 아파서 악을 쓰면서 안 걸어도 좋으니까 다시는 침을 안 맞겠다고 했단다. 그제서야 어머니도 더 이상 애를 괴롭히지 말자면서 포기를 했다는 것이다.

"내가 성질이 더러븐 것도 어릴 때 치료하느라고 너무 너무 고생을 한 탓인 것 같다"고 했다.

치료는 거기서 끝이 났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도 재 넘어 학교는 아무도 꿈도 꾸지 않았다. 부모님은 '몸은 이래도 하나님 말씀은 알고 있어야 안되겠느냐' 며 그에게 글을 가르칠 생각은 했다. 세살 아래인 남동생을 학교에 보내면 그도 함께 배울거라고 동생을 일찍 학교에 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생이 학교에서 교과서를 받아 와보니 그가 글을 줄줄 읽어 나갔다. 그때까지 그에게 글을 가르쳐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의 친가는 물론이고 외가까지 독실한 기독교 가정으로서 항상 가정예배를 했다. 저녁이면 호롱불 아래 온 식구가 둘러앉아 기도를 하고 찬송가를 부르고 아버지는 성경을 펼쳐 놓고 한자씩 짚어 가며 따라하게 했던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성경을 읽어 나가는 동안 저절로 한글을 깨치게 되었던 것이다. 그 자신이 한글을 안다는 것도 잘 몰랐지만 부모님들도 그가 글을 읽을 줄 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그의 책읽기는 남동생의 초등학교 입학과 함께 시작되었다. 동생은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누나를 위해서 학급문고에서 책을 빌려 왔다. 부모님은 일하러 나가고 다른 아이들은 다 학교에 가고 혼자 남은 그는 책 읽는 것이 유일한 소일꺼리였다. 그러나 학급문고에서는 한사람에게 일주일에 2권밖에 책을 빌려주지 않았다. 초등학생들을 위한 얇은 책 2권은 하루 소일꺼리도 못 되었다. 동네 아이들이 전부 그를 위해서 책 2권씩을 빌려 왔다. 무슨 책 무슨 내용이 중요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책을 빌려 왔으나 읽지는 않았다. 책은 전부 그가 다 읽고 재미있는 내용이 있으면 아이들을 모아 놓고 얘기를 해 주었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 같은 어려운 이름도 잘 말하고 이야기도 잘해서 누나가 천재인 줄 알았다"는 게 목사가 된 남동생의 회고담이란다.

언니가 중학생이 되면서 학교 책을 빌려 오기 시작했는데 연애소설 같은 것은 그가 보지 못하도록 감춰 두었으나 어떻게든지 찾아서 다 보았다. 이광수의 사랑 심훈의 상록수 박계주의 순애보 등을 11살 때 다 읽었다.

집안에는 한문책이 많았는데 한문은 배우지도 않았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었다. 동생이 딱지치기를 잘 못해서 매일 잃고 들어 왔는데 동생을 위해서 한문책은 뜯어서 동생 딱지를 만들어 주었다. 나중에 아버지가 아시고 귀한 책을 버렸다고 야단을 맞기도 했다. 장향숙씨의 삶은 (2)편에 계속.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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