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는 그렇다 치고 나이가 들어서는 왜 사진 찍기가 좋을까.

“사진을 찍다보면 그냥 눈으로 보는 세상하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서 보는 세상이 다릅니다.”

그 조그만 렌즈 속에 세상을 다 담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쩌면 자신만의 시간이자 공간이었다.

“그래서 가끔 사람들은 저에게 직업이 유압이냐 찍사냐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 촬영대회 같은데 출품은 안 해 봤을까.

처음으로 사진촬영대회 참가. ⓒ이복남

“딱 한 번 했습니다. 1988년 동래금강식물원에서 개최한 부산MBC 촬영대회에 나가 봤는데 대상은 아니고 입상만 했습니다. 사진은 MBC에서 가져가고 기념 가방만 남아 있던데, 이상하게 그 후로는 대회에는 참가를 안 했습니다.”

그는 유압공장을 하면서도 틈만 나면 사진을 찍었다. 사진은 그냥 혼자만의 취미로도 족했다.

“예전에 군대 있을 때 야간 사격을 나가곤 했는데 그 무렵부터 왼쪽 귀가 잘 안 들렸지만 별로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압을 하면서 콤푸레샤의 시끄러운 소리에 오래 노출 되어서 그런지 오른쪽 귀도 점점 더 안 들리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귀가 잘 안 들린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에 자꾸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되묻곤 했다. 그런 일이 자주 반복되자 자신도 청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에 갔는데 이미 늦었다고 했습니다.”

워낭소리 촬영지에서. ⓒ이복남

청각장애인 판정을 받고 보청기를 맞추었다.

“그런데 보청기가 상실된 청력을 100% 보완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보청기를 착용하지만 어떤 단어는 알아듣고 어떤 단어는 못 알아듣는다고 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잘 못 듣는다는 것을 알고 옥타브를 높이는데 그러면 무슨 말인지 더 못 알아듣습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지만 그래도 예전부터 하던 유압 일은 계속한다고 했다.

“요즘도 유압공장은 하지만 직원은 없습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혼자 설계를 하고 기계를 제작할 때는 알바생을 쓴단다.

유압공장에서는 어떤 알바생을 이용할까.

“알바생이라고 해서 아무나 쓰는 것은 아니고 유압을 아는 사람 중에서 회사에 다니는 사람이나 시간외 돈을 벌고자하는 사람이나, 예전 우리 직원들을 알바로 쓰는 거죠.”

자녀들이 성장해서 결혼을 했고 손자도 생겼다.

“집 사람이 예전에는 배드민턴 회장도 하고 했는데, 요즘은 손자들 보러 다닙니다.”

아내는 한동안 아들 손자를 키웠고 요즘은 서울에서 딸 손주를 키우고 있어서 그는 혼자 산단다.

아내의 배드민턴 여성부 회장 취임식. ⓒ이복남

“귀는 점점 더 안 들려서 장애등급을 받고 보청기를 사용하는데 그래도 잘 안 들립니다.”

귀도 잘 안 들리는데 눈까지 나빠져서 얼마 전에는 백내장 수술까지 했다.

귀가 잘 안 들린다면 수어를 배울 의향은 없을까.

“이 나이에 무슨 수어를 새로 배우겠습니까? 그런데 남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다보니 점점 더 사람들과 잘 안 어울리고 제 속으로 빠져 들게 됩니다.”

그가 청각장애인이 되었지만 그가 상대하는 사람들이 수어를 아는 것도 아니므로 수어를 배울 필요는 못 느낀다고 했다.

그래도 유압 관련 일은 여전하시고 사진 찍는 것도 하신다니 다행이시네요.

“유압은 평생 하던 일이니 지금도 간간이 주문이 들어오면 일을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진과 동영상을 함께 찍어서 편집까지 했는데 동영상을 편집하기가 만만치 않아서 요즘은 손을 놓고 있단다.

하동 평사리 토지문학관. ⓒ이복남

“옛날에 한창 동네 유지들과 어울릴 때 삼락생태공원 안에 연꽃 단지를 만들었습니다.”

당시 낙동강생태공원에도 연꽃단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지고, 신상해 의원(당시 부산시 사상구 의원)이 제안해서 만들었단다.

“진흙 속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다니, 지금도 연꽃이 피는 계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의 출사지입니다.”

출사지(出寫地)란 경치가 뛰어나서 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으로 사진 동호회 회원들은 날짜를 정해서 출사를 다니기도 한다.

사상구 달집놀이. ⓒ이복남

청각장애인이 되어 그 전과 달라진 것이 있는가.

“크게 달라진 것은 별로 없지만 사람들하고 그전처럼 잘 안 어울립니다. 내가 답답하니까 상대방도 답답할 거 아닙니까. 그래서 점점 더 말을 안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점점 더 사람들과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장애는 내가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니고 세월이 지나면서 저절로 된 것 같습니다. 이런 장애는 나이가 들면 누구나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저 사람은 장애인이다, 저 사람은 일반이다 하고 차별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세붕 씨가 찍은 연꽃 사진. ⓒ이복남

그러나 예전 친구들하고는 여전히 교류를 하고 있고, 사진 찍기는 죽는 날까지 계속 할 거라고 하니 영원한 취미가 있어서 정말 다행인 것 같다.

연꽃은 흙탕물에 자라면서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요염하지도 않고 청초하고 아름답다. 연꽃은 보고 있으면 무아의 경지에 도달한 것 같단다.

“이제는 연꽃처럼 기쁨도 슬픔도 모든 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꽃을 스쳐가는 바람처럼 우리네 인생도 잠시 잠깐 연꽃을 만나고 가는 같은 바람에 불과한 것은 아닐는지. <끝>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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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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