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꿈도 희망도 없었다고 했는데 무엇을 하고 싶었을까.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열심히 공부했다. 스튜어디스가 되려고 **대학 항공운항과를 지원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뒤늦게 그 사실을 알고는 난리가 났다.

“스튜어디스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중학생 때. ⓒ이복남

아버지 몰래 **대학교 항공운항과에 시험을 쳤지만, 그 난리 통에 성적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시험은 떨어지고 후보라고 했다. 아버지가 추천한 대학은 동주대학교 호텔관광과였다. 그는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었지만 하는 수 없이 아버지의 뜻대로 호텔관광과에 입학했다.

동주대학교에 등록금을 내고나니까, **대학교 항공운항과에서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미 등록금을 납부했는데……. 스튜어디스가 안 될 팔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가 그렇게 싫었다면서 어떻게 살았을까.

“꿈도 없고 희망도 없고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겁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대학 등록금은 내주셨을까.

“아빠가 국가유공자라서 C학점 이상만 나오면 장학금을 받았습니다.”

이왕 호텔관광과를 왔고 아버지는 아버지고 나는 나니까 호텔리어가 되려고 영어와 일어를 열심히 했다. 그리고 **호텔에 실습을 나갔다. 홀에서 손님에게 주문받고 맥주도 따라주고, 서빙을 했는데 호텔이라는 곳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손님이 팁이라며 천 원짜리를 얼굴에 뿌리기도 하고, ‘가까이 와 봐’ 해서 가까이 가면 볼을 만지거나 엉덩이를 만지기도 하고…….”

대학졸업식에서 가족. ⓒ이복남

처음엔 중식당에 있었는데 주방장의 성희롱이나 언어폭력도 무서웠다. 특히 정직(원)이 되려면 자기한테 잘 보여야 한다는 협박에는 넌더리가 났다.

“**호텔 실습을 하고 나니까 호텔리어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버지가 무섭고 싫어도 밖에 나오면 아버지에 대한 생각은 깡그리 잊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조차 그가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아이인 줄은 잘 알지도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것저것 알바를 하다가 **구청 안내데스크를 봤습니다.”

구청 안내데스크라면 공무원은 아니고 계약직일까.

“용역이었습니다. 고객이 오면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고 적절한 과로 안내했는데 몇 년이나 그 일을 하다 보니 구청직원들 보다 제가 더 안내를 잘했습니다.”

나중에는 그렇게 메모를 해 둔 내용을 정리해서 안내책자를 만들었는데 지금도 잘 사용하는 것 같다고 했다.

구청 안내 데스크가 좋았다면서 왜 그만두었을까.

“5~6년 했는데, 어느 마트에서 카운트를 보면 돈이 더 많다고 해서 구청은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마트로 갔습니다.”

마트에서 카운트를 보는데, 하루는 으스스 춥고 큰 돌이 머리를 내리치는 것 같아서 그대로 쓰러졌다.

“그동안 아빠한테 맞아도 철이 들면서는 잘 안 울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습니다.”

마트 직원들이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냈다.

아팠다면 병원으로 가야지 왜 집으로 갔을까.

“병원에 갈 돈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직장에 다녔다면 돈을 벌었을 텐데 왜 돈이 없을까.

“대학 때부터 술을 마셨는데, 월급 타면 먹고 마시고 옷 사고 다 써버렸습니다.”

아버지가 월급 가져오라고는 안 했을까. 아버지에게 갖다 주기 싫어서도 돈은 버는 족족 다 써버렸기에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습니다.”

송정 바닷가에서. ⓒ이복남

그는 식음을 전폐하고 드러누웠다. 아버지는 일하기 싫어서 꾀병 부린다고 오히려 호통을 쳤다. 아버지가 아무리 야단을 쳐도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엄마도 처음에는 꾀병 부리지 말고 밥 먹으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감기 같았는데 나중에는 팔꿈치에 반점이 생기고 쑤시고 아팠다. 엄마가 감기약을 사다주기는 했으나 그렇게 시작된 감기 같은 것이 3개월을 끌었다. 그제야 엄마도 이러다가 다 큰 딸 죽이겠다며 근처 내과로 데려갔다.

동네 내과의원에서 이것저것 검사를 하더니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그도 감기가 아니라 예사 병이 아닌 모양이라고 생각했지만, 내과 의사는 병명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동네 내과에서는 침례병원 류마티스과로 가라고 했습니다.”

침례병원(浸禮病院)은 1951년 미국 침례교 한국선교회에서 부산시 중구 남포동에 설립한 병원이다. 그 후 영도구 영선동에서 동구 초량3동으로 옮겼으나 병원이 너무 좁아서 1999년 금정구 남산동으로 이전하였으나 2017년 7월 경영난으로 폐원하였다. - 필자 주.

그는 당시 초량에 있는 침례병원 류마티스과에 가니 당장 입원하라고 했다. 입원해서 정밀검사를 받았다.

“루푸스입니다.”

그를 진료한 A 의사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루푸스라니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었다. 그의 증상은 팔꿈치에 반점이 생기고 뼈마디가 시리고 쑤셨다.

루푸스의 정확한 이름은 전신홍반루푸스(Systemic lupus erythematosus)다, 주로 가임기 여성을 포함한 젊은 나이에 발병하는 만성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가면역이란 외부로부터 인체를 방어하는 면역계가 이상을 일으켜 오히려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현상을 의미하며, 이로 인해 피부, 관절, 신장, 폐, 신경 등 전신에서 염증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루푸스는 만성적인 경과를 거치며 시간에 따라 증상의 악화와 완화가 반복된다.

루푸스의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루푸스는 몇 가지 유전자와 호르몬, 환경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구체적인 관계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루푸스(lupus)라는 이름은 라틴어로 늑대라고 한다. 늑대에 의하여 물리거나 긁힌 자국과 비슷한 피부발진이 얼굴에 나타나기 때문에 루푸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루푸스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증상은 피부 증상이다. 뺨의 발진과 원판성 발진, 광과민성, 구강 궤양 등이다. 다음은 근·골격계 증상인데 관절통 역시 루푸스 환자의 75% 이상에서 관찰되는 흔한 증상이라고 한다. 일부 환자는 부종이나 열감, 발진, 관절 운동의 장애와 같은 전형적인 관절염의 증상 없이 관절통만 나타나기도 한다.

통도환타지아에서. ⓒ이복남

신장 증상은 신부전이나 신증후군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특별한 자각 증상이 없다. 그러나 신기능 저하가 심각하게 일어날 수 있으므로 신장 질환의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정기적인 신기능 검사가 필요하다. 그 외에 뇌신경 증상과 기타 장기 침범 증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루푸스는 1997년 개정된 미국 류마티스 학회의 기준에 따라 다음 11가지 중 4가지 이상이 나타날 때 루푸스로 진단하게 된다고 한다.

1) 뺨의 발진, 2) 원판상 발진, 3) 광과민성, 4) 구강 궤양, 5) 관절염, 6) 장막염, 7) 신질환, 8) 신경학적 질환, 9) 혈액학적 질환, 10) 면역학적 질환, 11) 항핵항체 등의 항목을 평가하며, 이는 전문의에 의한 임상적 평가와 더불어 혈액검사,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루푸스는 아직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지만, 현재 루푸스의 10년 생존율은 90% 이상이다. 이는 조기 진단, 치료제 및 치료 방법의 발달, 투석 및 신이식 등에 기인한 것이다. 루푸스의 치료는 급성 악화를 치료하고 질병의 활성도를 적절히 억제하여 장기 손상을 예방하는 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발췌.

루푸스를 완치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고 하지만, 그가 입원해 있는 동안 A 의사는 그의 증상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했다.

“두 달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했습니다.”

그는 A 의사가 처방해 준 약을 먹고 루푸스의 증상은 완화되었다.

그동안 병원비는 어떻게 했을까.

“저는 돈이 없으니까 엄마가 마련해서 지불했는데, 루푸스가 산정특례니까 병원비는 얼마 안 나왔습니다.”

‘질병관리본부 희귀질환 헬프라인’에서는 「희귀질환관리법」에 따라 경제적 부담이 과중되는 희귀질환 대상자에 대해서는 산정특례로 등록하면 본인 부담금 10%만 내면된다. <3편에 계속>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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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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