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횡단>은 광화문 네거리를 무단횡단할 수밖에 없는 장애인의 현실을 보여줬다. ⓒ국가인권위원회

목발을 짚은 뇌성마비 장애인이 광화문 네거리를 가로지른다. 가파른 지하도를 이용하느니 차들이 쌩쌩 달리는 대로를 무단횡단하기로 한 것. 여균동 감독이 만든 <대륙횡단>. 2003년 상영된 옴니버스 영화 <여섯개의 시선> 속에 들어있는 이 영화는 중증장애인 김문주씨를 주인공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기법을 넘나들며 찍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보험까지 들어가며 촬영한 보람이 있었던지, 광화문 네거리에는 신호등 번쩍이는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자세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믿거나 말거나 이 영화가 일궈낸 쾌거라고 해두자.

얼핏 생뚱맞게 보이는데 국가인권위원회는 벌써 5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2003년 <여섯개의 시선>을 시작으로 2006년 <다섯개의 시선>에 이르기까지 여균동, 박찬욱, 임순례, 류승완, 장진 감독 등 내로라하는 감독들이 참여했다. 자칫 무겁게 치달을 수 있는 인권이란 주제를 십인십색 재치 있게 풀어나간 감독들은 제작비가 초과되면 자신의 주머니를 털기도 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영선에게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묻는다. <세 가지 소원>. ⓒ국가인권위원회

올 5월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있는 <시선 1318> 역시 실사 영화. 주제는 청소년 인권으로 제한했다. 시선 시리즈와 달리 별별이야기는 애니메이션으로 장르를 갈아입어 주목을 받았다. 2005년 제작된 <별별이야기>에 이어 <별별이야기2>도 여섯 편의 옴니버스 애니메이션. 지난 달 말에 전국 10개 극장에서 교사들을 대상으로 시사회를 열면서 학생들의 단체 관람을 유도, 관심을 끌었다.

<세 번째 소원>은 눈이 보이지 않는 명선이 주인공. 어느 날 나타난 요정은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한다. 소원이라면 오직 하나, 눈을 뜨는 것뿐. 하지만 요정은 금지 조항이라 안 된다고 한다. “요정 맞아요? 소원이 이뤄지는 게 아무것도 없어!” 명선이 적당한 소원을 찾아낼 때까지 곁에 있게 된 요정. 임무 완수에만 급급했던 요정은 점점 마음의 문을 열고 명선의 입장을 헤아리게 된다. 눈 대신 귀와 촉각에 의해 살아가는 시각장애인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만화적 상상력이 독특하다.

취업 현실에서 겪는 차별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메리골라스마스>. ⓒ국가인권위원회

<메리 골라스마스>는 점토 인형에 움직임을 덧입혀 만든 클레이 애니메이션.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느라 분주한 산타들. “진짜 산타를 모십니다!” 백화점 구인 광고를 보게 된 산타들은 취업 전선에 나선다. 진짜 산타 4명은 제각기 기량을 발휘하느라 최선을 다하지만 '진짜 산타'의 엄격한 기준에는 미달이고 오히려 가짜 산타가 더 그럴싸하다. 산타클로스 선발 과정을 빌려 피부색, 성별, 장애, 외모 등 구직 과정에서 차별 요인들을 짚어낸 것. 휠체어를 탄 장애인 산타가 트랜스포머처럼 변신하는 장면이 유쾌하다.

그 밖에도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어 하는 초등학생의 이야기 <샤방샤방 샤랄라>. 포경수술이 아동에게 폭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낸 <아주까리>. <아기가 생겼어요>는 출산을 앞둔 직장 여성에게 닥친 주변 상황을 보여준다. <거짓말>은 결혼을 둘러싼 동성애자들의 아픔과 상처를 그렸다.

<별별이야기2>는 싱가포르 국제영화제, 프랑스 안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 연이어 초청됐다. 4월 17일부터 극장 체인 <씨너스> 전국 10개 지점에서 개봉한다. 12세 관람가.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8년’을 최고의 자산으로, ‘장애인들의 생활과 문화’에 초점을 맞춰 정감 있는 기사 쓰기에 주력하고 있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장애인에게 제일의 경력은 장애 그 자체”라고 말하는 예다나씨는 22세에 ‘척추혈관기형’이라는 희귀질병으로 장애인이 됐다. 병을 얻은 후 7년 동안은 병원과 대체의학을 쫓아다니는 외엔 집에 칩거하는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8년간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했다. 그 동안 목발을 짚다가 휠체어를 사용하게 되는 신체 변화를 겪으며 장애 경중에 따른 시각차를 체득했다. 장애인과 관련된 기사와 정보를 챙겨보는 것이 취미라면 취미. 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빠르게 치다가 현재는 양손 검지만을 이용한다. 작업의 속도에서는 퇴보이지만 생각의 틀을 확장시킨 면에선 이득이라고. 잃은 것이 있으면 얻은 것도 있다고 믿는 까닭. ‘백발마녀전’을 연재한 장애인계의 유명한 필객 김효진씨와는 동명이인이라서 부득이하게 필명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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