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성일 시인. ⓒ손성일

산책하다가 잠시 의자에 앉아 쉬는데‘선생님, 구상솟대문학상 수상했습니다.’라는 문자를 받아 기쁨보다는 한시름 놓았습니다. 매년 계속된 낙방에 ‘내년엔 또 무슨 작품으로 응모하나?’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게 되었거든요.

창작은 고통스럽습니다.‘내가 비장애인이었으면 다른 일을 했을 텐데….’사실 나는 문학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분야는 기계입니다, 그래서 PC 정비사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학창시절 제가 생각했던 시인은 맨날 요상한 글이나 쓰며 시간 낭비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내가 지금 시인이라니…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는구나… 내가 정말 철이 없고 어리석었습니다.

제가 문학을 시작한 이유는 부끄럽지만 생계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글이라면 장애가 있는 사람도 할 수 있는 분야이지 않는가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러 문학 장르를 살펴보았습니다.

산문은 글의 분량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 짧은 시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시집을 읽었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한 10권 정도 읽으니 시가 어떤 것인지 보이기 시작하여 시를 습작하기 시작했습니다.

습작시를 문학카페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혹평만 받았습니다. 실망해서 그만둘까 하다가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어서 계속 정진했습니다. 그 결과 작은 백일장에서 두 번 상을 받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렇게 오른 자신감으로 문예지에 정식 등단을 하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나 등단의 벽은 높았습니다. 계속된 탈락에 절망의 한숨이 나왔습니다. 시를 너무 쉽게 생각했구나, 반성했습니다. 시는 정말이지 깊이와 철학과 자기 성찰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꼼꼼히, 자세히 온 마음 바쳐 공부했습니다.

20년 전 처음 시를 공부했을 때의 나의 현실은 문학 관련 정보는 거의 무지했습니다. 가르쳐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사회복지사도 『솟대문학』을 몰랐습니다. 우연히 『솟대문학』을 알게 되었지만 어떤 방법으로 작품을 보내야 할지 몰랐습니다. 겨우겨우 『솟대문학』 이메일을 찾아서 시를 한글파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파일로 보내지 마시고 메일 창에 적으세요.’라는 답장을 받았습니다.‘파일을 열어서 보면 되지! 그게 그리 어렵나? 왜 그래?’짜증이 났습니다.

하지만 1회추천이라는 나의 시가 적힌 『솟대문학』책과 원고료까지 받으니 그 번거로움에 대한 짜증이 한 번에 날아갔습니다. 작은 열매를 맺었다는 뿌듯함이 컸습니다.

(내겐 원고료가 굉장한 의미입니다. 다른 장애인도 마찬가지겠죠. 문학을 시작하기 전엔 내가 이대로 쓸모없는 사람으로 끝나는 게 아닌지, 초조하고 불안했습니다. 장애인에게 돈이란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욕망과 생계 의미보다 더한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솟대문학』 등단이 쉬운 게 아니었습니다. 2회까진 쉬웠으나, 3회추천은 어려웠습니다. 장애인문학이라 쉽게 등단하리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비장애인문학지 못지않게 어려웠습니다. 매번 보내도 등단 소식이 오지 않자 화가 났습니다. 그러자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오기가 나서 끝까지 보냈습니다. 지루한 다툼 끝에 3년 만에 3회추천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다음 목표는 구상솟대문학상이었는데 그 상은 더욱 어려웠습니다. 14번째 도전 끝에 수상했습니다. 몇 년 전에 구상 선생님께서 내 수상을 축하해 주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 꿈을 방귀희 선생님 페이스북에도 알렸습니다. 수상 소식이 없어 개꿈이려니 했는데 그 후 몇 년이 지나 수상을 했으니 선몽인가 봅니다.

손성일 시인의 전자시집 표지. ⓒ손성일

Q. 2020구상솟대문학상 수상이 자신의 문학 생활에 어떤 의미로 느껴지는가.

한시름 놓았습니다. 매년 떨어지자‘내년엔 무슨 작품으로 도전하지?’ 하는 압박감이 들었거든요.

이젠 조금 자유롭고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부담감을 덜어내고 더 좋은 작품으로 대중에게 장애인예술을 사랑하는 이에게 보답할게요.

Q. 문학 공부는 어떻게 하였는지.

처음엔 방송대학교 국문과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였고, 다음 카페 활동을 하며 습작을 하다가 장애인복지관의 문학교실에서 공부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복지관 프로그램이 중단되어 현재 문학동아리에서 동영상 강의를 듣고 있어요.

Q. 문학 활동을 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발표 기회가 없다는 게 가장 큽니다. 수입이 없으니까요. 장애인 작품은 취미 활동이라는 세간의 인식도 어려움을 주지요.

Q. 자신의 작품이 표절된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내 블로그에 있는 시 중에서 <별꽃>이라는 시가 한 무명 작곡가에 의해 트로트로 작곡되었습니다. 허락도 없이요. 사용료도 받지 못하고 사과도 없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 인터넷에 제 이름을 검색해 알게 됐고 멜론에 음원으로 등록됐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다행히 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되어 있어서 저작권 보호를 받았지만 인기가 없는 곡이라 저작료도 없습니다.

Q. 구상솟대문학상 상금 300만 원은 적지 않은 금액인데 어떻게 사용할 계획인지.

먼저 부모님에게 생활비를 주고, 축하파티를 할 겁니다. 그리고 좋은 곳에 쓸 겁니다.

Q. 가족 관계는.

나와 아버지, 어머니, 동생입니다. 단란한 평범한 가족입니다. 아버지는 퇴임하셨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이고 동생은 헬스 트레이너였으나 코로나로 현재는 쉬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혼자서 생활했는데 현재는 부모님과 같이 삽니다.

Q. 가장 존경하는 문인은.

저는 쉬운 시가 좋습니다. 쉬워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감동도 받아서입니다. 윤동주 시인, 천상병 시인, 구상 시인을 존경합니다.

Q. 동화, 동시 등 다양한 작품을 쓰고 있는데 주력 장르는.

처음엔 시를 집중해서 썼는데 요즘은 아동문학에 관심이 생겨서 동화, 동시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이제는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창작할 것입니다.

Q. 앞으로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가.

예술은 사람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감동을 주는 것이 목적인데 요즘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어느 시인이 100번 정도 읽으면 의미를 안다고 해서 읽고 또 읽었지만 역시 모르겠더라구요. 그래서 쉬운 시를 써서 독자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작가가 되려고 해요.

신작 시집 <솜사탕 이불>표지. ⓒ손성일

손성일 대표작

도깨비 할아버지

손성일

친구들과 야구를 하다가

쨍!

도깨비 할아버지 집

유리를 깨뜨렸어요

나와 친구들 심장이

콩닥!

콩닥!

친구들은

재빨리 도망쳤지만

꼿발*인 나는 금방

잡혔어요

나는 덜덜 떨었어요

그런 내가 가엾던지 미소로 말해요

“옛다! 아이스크림이다.”

할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에 꼿발*이

온전하게 되었어요.

* 꼿발: 까치발의 방언. 뒤꿈치를 들고 발끝으로 서 있는 발의 모양. 뇌성마비 장애인의 특성 중 하나.

시각장애인 사진작가

손성일

어머니가 꽃의 위치를 알려 주자

온 신경을 집중해요

꽃의 아름다움을 담는 작가

찰칵찰칵

소리도 향긋해요.

손성일

# 주요 경력

『솟대문학』추천완료(시, 2006) 전국장애인창작시공모전 우수상「별꽃」(시, 2008) 대중가요 <별꽃> 작시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운문부 우수상(동시, 2009) 전국뇌병변장애인대회 문화예술제 대상(시, 2013) 민들레문학상 가작(시, 2013) 부산가톨릭문예공모전 입선(시, 2014) 전국장애인문학공모전 우수상(동화, 2014) 장애인고용안정협회 은상(시, 2015) 『아동문예』문학상 당선(동시, 2017) 대한민국장애인문학상 산문부 우수상(동화) 행복나눔글쓰기공모전 금상(시, 2017) 우리성가노랫말공모전 입선(2017) 실로암문학상 운문 대상 KBS창작동요제 노랫말 예선 통과(2018) 제23회 구상솟대문학상(2020) 외

동시집「 솜사탕 이불」 전자시집「 나는 별을 세는 소년입니다」 시집「 손끝에 점 하나」(공저) 동화집「 아름다운 바위」(공저) 외.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