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유행하던 때가 있었다. 개천이란 졸졸졸 흐르는 도랑물, 주변 오물을 실어 나를 수도 있는 보잘것없는 개천에서 신성한 동물로 여겨지는 용이 나왔다는 것이다. 이 속담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훌륭한 사람이 나올 수 있다는 말이었다.

이 속담이 유행하던 시절에는 정말 개천에서 많은 용이 나오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철주야 노력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기도 했고, 굳은 의지의 노력으로 서울대학에 합격하기도 하는 등 개천에서 용 난 사례가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렸다.

김청아 징계위원회에 나타난 문준익. ⓒKBS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개천에서 용 난다’는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버렸다. 개천에서 용이 나는 일은 거의 없어졌기 때문이다. 판검사가 되거나 일류대학에 붙으려면 그에 걸맞은 가정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쩌다가 불가항력으로 본의 아니게 장애인이 되고 만 것이다. 부모·자식도 마찬가지다. 장애인이 선택 사항이 아니듯이 부모·자식도 선택 사항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에는 일정 사항 즉 전 국민의 10% 정도의 장애인이 발생한다. 부모 또는 자식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자식을 잃은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고 견딜 것이다. 그런데 부모를 잃은 자식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부모를 잃은 대부분의 아이는 보육원(아동양육시설, 이하 보육원이라 함)으로 간다. 물론 부모가 있어도 부모의 학대나 방임, 유기 등의 사유로 성인이 될 때까지 보육원에서 자라든가 아니면 다른 가정으로 입양이 되어 간다. 그리고 죽도록 노력해서 개천에서 난 용이 되기도 한다.

아이들은 「아동복지법」에 의거하여 18세가 될 때까지 아동양육시설에서 생활하다가 18세 즉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보호가 종료되어 500만 원의 자립정착금을 받고 보육원을 나가야 된다. 보육원 퇴소를 늦출 수 있는 사유는 학교 재학, 직업훈련, 병원 입원 등이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500만 원을 주고 사회로 내모는 비정한 현실은 그렇다 치고, 드라마에서는 모두가 대학을 나왔으니 보육원 퇴소는 늦춰진 것 같다. -장애아동은 별도임.

2018년 현재 전국의 279개의 아동시설에는 12,193명이 살고 있는데, 1년에 3,707명이 입소를 하고, 4,365명이 퇴소를 했다. -통계청 자료.

아동복지시설수 및 보호아동현황. ⓒ통계청

아무튼 보육원에서 자라면서 용이 되기는 쉽지 않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보육원 출신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모 없이 자랐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의 용이 되려고 노력한다.

보육원 출신임에도 열심히 노력해서 나름대로의 용이 되는 사람도 많다. 가끔 언론에서는 해외로 입양되었다가 유명해져서 부모를 찾으러 오는 사람도 더러 있고, 보육원 출신들끼리 세운 회사도 있다. 그런데 열심히 노력하는 보육원 출신에게 찬물을 끼얹는 드라마가 있어 안타까움을 금할 수가 없다.

KBS2TV 주말드라마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사풀인풀)에서 김청아(설인아 분)는 학교폭력을 견딜 수 없어 자살을 택했다. 자살 여행에서 만난 구준겸이 ‘너는 피해자니까 그냥 살아’라는 말을 남기고 혼자 자살하는 바람에 죽을 수가 없었다.

김청아는 기를 쓰고 공부를 해서 칠전팔기로 경찰이 되어 문준익(정원중 분) 대장으로 있는 지구대에 근무한다. 그러자 구준겸의 이모가 김청아는 자살 방조자라서 경찰이 될 수 없다고 해서 김청아는 징계위원회에 회부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청아의 언니 김설아(조윤희 분)가 김청아의 학교폭력 가해자 문해랑(조우리 분)을 찾아가서 따지고 대든다.

우연히 그 모습을 보게 된 아버지 문준익은 딸 문해랑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는 징계위원회에 나가서 “김청아 순경은 좋은 경찰”이라며 김청아를 대변하여 김청아에 대한 징계는 정직 1개월로 마무리 된다.

오래전 문준익은 아이를 갖지 못해 큰아들 문태랑(윤박 분), 둘째딸 문해랑, 셋째아들 문파랑(류의현분) 등 세 아이를 입양했다. 그런데 둘째딸 문해랑이 학교폭력 가해자였다니 이 무슨 청천벽력인가.

아버지 문준익은 딸 문해랑을 불러 앉히고 학교폭력은 범죄라고 했다.

문준익 : “넌 범죄자고 죄지은 사람이니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게 아빠가 하는 일이다. 내 딸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당연히 내 손으로 수갑을 채워야 된다고 생각한다.”

문준익은 딸에게 왜 그랬느냐고 물었지만, 문해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준익 : “기어이 내 손에 수갑을 채우겠단 말이냐?”

문해랑에게 수갑을 채운 아버지 문준익. ⓒKBS

문준익은 분노하여 자신의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내서 딸의 왼손과 자신의 오른손에 수갑을 채웠다.

문준익 : “왜 그랬는지 네 이야기부터 들어 보자.”

문해랑은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아버지의 분노에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문해랑 : “어느 날부터 걔가 미워졌어요. 꼴 보기 싫고 소름 끼치고 웃는 모습도 싫고 특히 걔한테서 나는 치킨 냄새가 견딜 수 없었어요.”

김청아가 고등학생일 때 엄마 선우영애(김미숙 분)는 치킨집을 하고 있었다.

문해랑 : “우리 엄마는 병원에서 죽어 가는데 걔네 엄마는 치킨 배달하러 오토바이를 타고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어요. 난 매일매일 엄마가 죽을까 봐 걱정됐는데 걔는 세상 걱정 없는 것처럼 늘 해맑았어요.”

문해랑은 보육원에서 어느 집으로 입양을 갔으나, 두 번이나 파양을 당했고, 문준익이 세 번째 입양을 했으나 아내는 문해랑을 입양 후 아파서 병원에서 죽고 말았다.

문준익 : “그래서 김순경을 어떻게 괴롭혔는데?”

문해랑 : “별거 아니에요. 교복 좀 찢고, 신발 버리고, 몰려가서 때리고, 돈 뜯고, 물 끼얹고, 교과서에다가 죽으라고 낙서하고...”

문준익 : “도대체 그게 말이 되냐?”

문해랑 : “왜요? 제가 창피해요? 아빠 직장에서 알게 될 까봐 무서워요? 그럼 난 이 사실을 누구한테 털어놓나. 날 첫 번째 버린 부모? 두 번째 버린 부모? 세 번째 버린 부모?”

문준익 : “움직이지 마. 네가 움직이면 아빠도 아프다. 우리 같이 벌 받자 해랑아!”

아버지 문준익은 눈물을 흘렸으나 문해랑은 아버지에게 대들며 소리쳤다.

문해랑은 조금도 미안해하지 않았고, 자기가 창피하면 집을 나가겠다며 가방을 끌고 구준겸의 이모이자 김설아의 시댁인 홍화영(박해미 분)에게로 갔다.

문해랑의 이유는 학교폭력 가해자의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자기 상처를 남에게 상처 주는 걸로 위로 삼고 또 그걸 당연하다며 정당성을 요구하고 자위하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다.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에서 작가는 무슨 생각인지 잘 모르겠지만 학교폭력 가해자 문해랑을 보육원 출신에다 반사회 인격 장애 사이코패스(psychopath)로 그리고 있는데, 나중에 개과천선 시킬지 모르겠다. 그러나 현실에서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꽃길만 걸어요’에서 김지훈과 봉선화. ⓒKBS

그리고 또 하나 KBS1 일일드라마 ‘꽃길만 걸어요’에도 보육원 출신과 학교폭력이 나온다. 김지훈(심지호 분), 봉천동(설정환 분), 봉선화(이유진 분)는 같은 보육원에서 자랐다. 김지훈은 하나음료에 들어가서 본부장이 되었고, 봉천동은 변호사가 되었으나 하나음료에 합류한다. 그리고 봉선화는 봉천동의 동생인데 고등학교 때 강여주(김이경 분)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

강여주는 성인이 되어서 봉선화에게 사과했지만, 봉선화는 강여주의 사과를 받지 않았다. 드라마의 흐름상 나중에는 강여주의 사과를 받아들이지만, 강여주는 왜 봉선화를 때리고 괴롭혔을까.

김지훈은 굴지의 기업인 하나음료에 입사했고, 봉천동은 변호사가 되었으니 개천에서 용 난 셈이다. 그런데 봉천동은 하나음료 대외협력팀장으로서 강여원(최윤소 분)과 사귀면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셀룰러 메모리’로 나타날 것 같다.

‘꽃길만 걸어요’에서 봉천동과 강여원. ⓒKBS

강여원의 남편 남동우는 신문기자였는데 하나음료의 원료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이를 취재하다가, 김지훈에게 교통사고로 위장한 죽임을 당한다. 그런데 봉천동이 변호사 시절 심장이 안 좋아 사경을 헤매다가 마침 뇌사상태에 빠진 남동우의 심장을 이식받는다.

‘꽃길만 걸어요’에서는 보육원 출신 봉선화가(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강여주에게 학교폭력으로 괴롭힘을 당한다. 그리고 하나음료 김지훈은 자신의 영달과 출세를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나쁜 사람으로 나온다. 거기다 김지훈은 보육원에서부터 자기는 크면 지훈 오빠와 결혼 할 거라고 노래를 부르면서 사랑을 키워온 봉선화를 버리고 하나음료 사장 딸과 결혼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 등 여러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의 문해랑이나 ‘꽃길만 걸어요’에서 김지훈 같은 사이코패스는 행여 시청자들에게 보육원 출신이라서 그렇다는 선입견을 심어 줄까 염려스럽다. 그러나 드라마는 어디까지나 드라마니까 상처받지 않기를.....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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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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