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성장애인인 국립장애극단 공동대표인 미키 로우 씨(31세, 남)는 5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도대체 자폐성장애인이 극단에서 지금 뭘 하는 거야?”라는 의문에 그가 대답한다. “저는 연극을 믿습니다. 저의 약점은 강점이 될 것입니다.”

자폐성장애인인 국립장애극단 공동대표 미키 로우 씨(31세, 남)는 5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열린 ‘2019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연계 행사’ 일환으로 열린 초청 강연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브로드웨이 등 미국 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뮤지컬 배우인 미키 로우 씨는 토니상 수상작인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The Curious Incident of the Dog in the Night-Time)”에서 자폐증을 가진 크리스토퍼를 연기한 최초의 자폐증을 가진 배우로 알려져 있다.

“항상 헤드폰을 쓰고, 목에 거슬리는 것을 싫어해서 브이넥 셔츠, 추운 날에도 자켓을 입지 않는다”고 자신을 소개한 미키 로우 씨는 자폐성 장애인으로 자라며 학창시절 동안 언어치료, 특수교육을 받으며 친구가 하나도 없었다고 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친구를 사귀어야 할지, 저는 정말 혼자였습니다. 제가 특수교육을 받으면서 부모님은 저에게 ‘자폐아’라는 말도 해주지 않았는데, 아마 두려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죠.”

그런 그가 연극을 만난 것은 어린이극단 팬이었던 할머니 덕분이었다. “시애틀의 어린이 전문극단의 쇼를 보러 갔는데, 어두운 극장 안에 앉아있을 때 비로소 내가 존재하는구나,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구나, 정말 그 관객석에 앉아서 이해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그 길로 연극 길에 오른 미키 로우 씨. 하지만 쉽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 4년 동안 긴장을 없애는 노력을 하기 위해 담당 교수는 ‘세 바퀴만 돌고 와라’고 주문했고, 그런 노력을 반복하면서 긴장을 없애는 노력을 할 수 있었다고.

“저는 아마 배우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굉장히 많을 것이에요. 그런데 저는 연기가 이분법이라고 생각해요. 안전한 것과 위험한 것 사이 긴장의 이분법. 저는 이 이분법을 사용해 연기하면서 저를 제어하고, 관객들이 저를 믿고 쫓아올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새로운 방식, 생생한 시각. 어떤 조직이 이런 사람을 필요해 하지 않을까요?”

특히 법적으로 시각장애를 가진 그는 자신의 장애로 인해 다른 배우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더 일찍, 더 많이 노력하고 있다.

“배우라면 익숙한 오디션이나 인터뷰 등에 익숙지 않아, 오디션을 보러 가기 전에 전부 외워가고, 대본을 두 배로 확대합니다. 또 다른 배우들의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 리허설에 항상 먼저 와서 대본을 암기합니다. 리딩 때는 몰래 전체를 녹음해 들으며 대사를 외우기도 합니다. 성공을 위해서는 어려움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5일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열린 ‘미국 장애인 연극 전문가 초청 강연’을 듣고 있는 관객들.ⓒ에이블뉴스

강연 서두에 “저의 약점은 강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한 미키 로우 씨는 자폐성장애가 연극 전반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을 표현할 수 있어요. 토니상을 받았던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 작품의 경우, 자폐증을 가진 캐릭터인데, 저는 손을 펄럭거리는 행동들을 반영했어요. 비장애인은 모르는 전형적인 자폐성장애인의 행동이거든요. 이를 통해 관객들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그와 더불어 작품 속 자폐성장애인 역할에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는 것에 대해 쓴소리를 내기도 했다.

“자폐가 있는 극인물은 굉장히 많은데, 당사자 배우가 이를 연기한 경우는 없어요. 자폐와 관련된 연극을 한다면 당사자 배우를 캐스팅하거나, 당사자 극작가를 채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성을 말하되, 여전히 장애를 생각하고 있지 않거든요. 우리는 관객이 될 뿐 아니라, 일자리를 원하거든요. 연극 체험이 아닌, 전문가로서요.”

현재 그는 국립장애극단 (National Disability Theatre)의 설립자이자 공동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샌디에고의 라 졸라 플레이하우스와 시카고의 굳맨 시어터 등과 협력해 장애 극작가, 장애인 배우 및 장애인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장애예술가들과의 공동창작을 통해 극단의 신작들을 개발하고 있다.

“어느 날 장애를 가진 배우들이 오직 극 중 같은 장애를 가진 역할에만 캐스팅되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동료 탈레리 맥래와 함께 국립장애극단을 설립하게 된 겁니다. 극단의 배우부터 감독, 디자이너 모두 장애를 갖고 있는데요. 대형 전문 극단들도 장애인들에 의해 운영될 수 있음을, 타 비장애 극단들에게 비포용성에 대한 핑계를 없애는 계기가 되길 희망해요.”

또한 그는 유니버설 디자인을 적용해 음성 해설과 문자통역 등 장애인 관객들을 위한 서비스들을 작품 창작 과정의 천 단계부터 접근성의 기회를 높이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자리에 참석한 자폐를 가진 분들에게 “용감해지길 바란다”고 힘줘서 조언했다.

“확신이 없을 때도 먼저 뛰어들고, 무언가 필요할 때 스스로를 옹호할 만큼 용감해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만일 내가 두려움으로 인해 도약하지 못했다면, 결코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이나, ‘아마데우스’에서 연기하지도 국립장애극단을 설립하지 못했을 겁니다.”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초청 공연인 ‘나의 생존 가이드’는 애니타 홀랜드의 1인 뮤지컬이다. 지난 4일 프레스콜 공연을 펼치는 모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한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이날을 시작으로 오는 14일까지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를 이어간다.

초청 공연 ‘나의 생존 가이드’(미국)는 애니타 홀랜더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1인 뮤지컬로, 장애로 인해 그녀가 겪는 세상을 풍자와 해학으로 유쾌하게 그려낸다.

그녀가 장애를 갖게 되기까지, 또 그 이후의 삶을 재치있게 풀어내며 인생의 고비에서 그녀를 다시 서게 한 그녀만의 해답들을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이 작품은 미국의 백악관에 초청받기도 했으며, 뉴욕의 유나이티드 솔로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호주의 노 스트링스 어태치드 장애극단은 발달장애 배우들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창작한 ‘그게 뭐였지’를 선보인다. 올해로 25주년을 맞는 극단은 예술 안에서 장애가 가진 인식과 한계를 재정의하기 위해 노력하며, 소속 장애인 배우들의 창의적 욕구를 창작의 기반으로 해 장애예술가들과의 협업을 추구함으로써 이야기의 주인인 배우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쇼케이스의 공연은 영어로 진행되며, 수어통역 및 자막이 지원된다. 인터파크(1544-1555)를 통해 예매가 가능하며, 입장료는 전석 2만원이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홈페이지(www.i-eum.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음 해외 공연 쇼케이스’ 포스터.ⓒ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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