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정태규. ⓒ정태규

정태규 삶

평소와 다름없던 2011년 어느 가을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와이셔츠 단추를 잠그지 못해 당황하였다. 그 후로 점점 팔다리에 힘이 없어지고, 가벼운 물건조차 들지 못하고, 길을 걷다 푹 쓰러지는 일들을 겪었다. 그 원인을 찾아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 1년여 만에 루게릭 병임을 알았다.

국어교사로, 소설가로, 한 여자의 남편이자 가장으로 누구보다 성실한 삶을 살아온 그의 일상을 순식간에 산산조각 냈다. 그는 혼자서 먹을 수도 배설할 수도, 좋아하는 소설을 쓰기 위한 펜을 들 수도 없었다. 온몸의 근육이 소실돼 한겨울 얼음장 물에 뛰어든 것 같은 극심한 통증을 느끼는데도 정신은 말짱한 생지옥.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누릴 권리를 박탈당한 참혹한 절망감에 빠졌다.

가혹한 운명을 탓하기도 했지만 곧 새로운 삶의 질서를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병이 날로 깊어 가는 과정에서도 자신에게 구원과도 같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에게 소설 쓰기는 ‘제법 진지한 혼자 놀기이며 궁극적으로 나의 존재에 대한 증명으로 살아 있는 느낌이며 아픔과 슬픔, 기쁨 등을 교감하는 일이다. 이제 소원대로 난 전업작가가 됐다.

하루 종일 집에 박혀 있는 내게 이제 남는 것은 시간뿐이다. 그러니 글쓰기에 매진할 수밖에 없는 최적의 환경이다’고 설명하였다.

이제 그는 전신이 마비되어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며 호흡기를 달고 숨을 쉰다. 두 눈을 깜박이는 것 말고는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그럼에도 아직 깜박일 수 있는 두 눈으로 ‘안구 마우스’라는 장치에 의지해 글을 쓰고 세상과 소통하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생의 기쁨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부인 백경옥 씨의 “우리 집은 중환자실, 나는 24시간 대기 간호사”라는 말에서 부인의 노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루게릭병으로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저항하며 동시에 죽음을 긍정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말을 남기며 “루게릭병 환우들에게 우린 아직 죽은 게 아니라고 자신의 삶을 살자”고 강조하였다.

정태규 작가와의 인터뷰는 질문지를 이메일로 보내 답변을 써서 보내온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한 자, 한 자 어떻게 썼을지를 떠올리니 문자가 아니라 보석이다. 좀더 첨부하려다가 보석을 훼손시키는 행위라서 그대로 싣기로 하였다.

Q: 루게릭 진단을 받기 전에 장애인을 보았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솔직히 내가 장애인이 될 줄은 몰랐다. 평소엔 장애인을 연민과 동정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다.

Q: 만약 작가가 아니었다면 투병 생활을 어떻게 지냈을 것 같은가.

안구 마우스가 없고 글을 못 쓰게 되었다면 절망적이고, 길고 지리한 캄캄한 감옥이었을 것이다.

Q: 소설은 체력이 필요한 작업인데 다른 문학 장르로 바꿔 보는 것은 어떤가.

대학 때는 시를 썼다. 그래서 시인으로 전업을 고려 중이다.

Q: 장애인문학을 표방하는 『솟대문학』이 100호까지 발간되었었다. 장애인문학의 가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역경 속에 우러나는 진실되고 순수한 문학.

Q: 앞으로 어떤 글을 남기고 싶은가.

나환자 시인, 한하운 시인처럼 역작을 남기고 싶다.

(좌)가족사진, (우)정태규 작가 현재 모습. ⓒ정태규

소설가 정태규

구모룡(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근위축성 측삭경화증. ‘근육이 사라지고 척수의 운동신경 다발이 딱딱하게 굳는다’는 뜻을 지닌, 일명 루게릭병. 이 병의 침입으로 7년째 투병하고 있는 정태규 소설가가 최근 병상에서 『당신은 모를 것이다』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병인을 알 수 없어 여러 병원을 전전하던 일로부 터 자신이 루게릭병을 안게 되었다는 충격을 힘겹게 수락하면서 조금씩 나빠지기만 하는 몸의 감옥에 갇힌 자신을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지금 그는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허리를 뚫어 위루관으로 영양을 주입하고 기관지를 절개하여 인공호흡기로 숨을 쉰다. 병상에 누운 채 오로지 안구 마우스로 소통한다.

작가는 일찍이 문재를 드러내었다. 학창 시절에 시를 쓰기도 하였으나 소설 쓰기의 열망에 휩싸이면서 단편소설로 대학문학상을 수상한 뒤에 작가의 길을 걷는다. 20대 중반에 신춘문예 당선의 기회를 놓치는 불운도 겪는다. 해당 신문사에서 당선 확인을 하였으나 하숙집을 떠나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통신이 발달한 시대가 아니었다.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의 절차를 거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1994년 첫 창작집『집이 있는 풍경』의 발간으로 오래 쌓아온 내공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1996년에 쓴 「길 위에서」로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을 수상한다.

한 독지가가 출연하여 한 해 동안 나온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작품을 공정하게 심사하여 상을 주는 멋진 제도이다. 많은 선배들을 제치고 첫 수혜자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소설을 쓰는 한편 대학원에서 소설의 공간, 예술가 소설을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는다. 2007년 두 번째 소설집 『길 위에서』를 내면서 문단 내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였다.

교사였던 그는 학교에서도 중책을 맡아 많은 일을 수행했다. 공무에서 놓여나면 늦은 밤까지 글을 썼다. 가장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압감에 쉽게 전업작가의 길로 나서지 못한다.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이라는 지역문학의 책무도 완수한 마당이고 정태규 활동 아이들도 대학에 진학하는 등 이제 다시 소설에 매진하려는 결심을 다잡을 즈음 질병이 그를 급습한다.

신이 있다면 너무나 야속하다. 불굴의 의지로 2012년에 에세이집 『꿈을 굽다』를 발간하고 2014년 평론집 『시간의 향기』와 소설집 『청학에서 세석까지』를 상재한다. 질병이 역설적으로 만든 전업작가의 공간에서 소설을 생각하는 나날을 살고 있다 .

아직 말을 할 수 있을 초기에 작가는 아내와 함께 소설을 썼다. 단편 ‘비원’은 작가가 구술하 고 그의 아내가 타이핑한 작품이다. 목의 근육마저 소실된 시점에 안구 마우스로 한 자 한 자 써 나간 작품이 ‘갈증’이다.

한 달에 걸쳐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 건강할 때라면 사나흘에 썼으리라 생각한다. 안구 마우스는 자판으로 눈을 옮긴 후에 눈을 깜짝여 자음과 모음을 이어 가게 한다. 음성 변환도 가능하다. 찾아온 친지에게 그는 담담하게 인사말을 전한다.

작가는 페이스북에 가입하여 많은 소통을 해 왔다. ‘모범 작문’을 연재하고 과거에 발표한 칼럼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의 고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와 소통하고 있는 수많은 이가 그의 처지를 깡그리 몰랐다.

정태규는 여전한 소설가이다.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극한 상황에서도 존재와 삶에 대한 사유와 명상을 멈추지 않는다. 병상에서 쓴 글을 모은 『당신은 모를 것이다』를 읽어 보라. 존재의 품격을 지닌 한 인간, 나아가 숭고한 인품을 만나게 되리라.

그는 고통을 이겨 내면서 영혼 의 언어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우리는 늘 고통과 연대하자고 외친다. 정작 고통에 직면하 면서 그러한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자신의 고통을 인식하고 극복하는 이야말로 진정으로 타인을 염려할 수 있다.

소설가 정태규, 그는 형언할 수 없는 병상에서 소설을 쓰고 시를 쓰며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 이 글은 부산일보 2017년 11월 28일자 인문산책에 실린 내용입니다.

우주에서 온 편지

정태규

안녕, 내가 너의 별 지구를 방문했을 때 유일하게 내 친구가 되어 주었던 아이야, 그동안 잘 있었니? 나는 너와 헤어져 우리 별로 돌아와 잘 지내고 있단다. 돌아오는 길에 너희들이 북두칠성이라고 부르는 별자리의 몇 개 별과 오리온 자리, 카시오페아 자리의 별에도 잠시 들렀었단다. 하지만 네가 사는 지구만큼 아름다운 별은 없더구나. 그건 아마 너와의 추억이 있는 별이기에 더욱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우주선을 타고 지구에 다가갔을 때의 그 감동을 잊지 못하겠구나. 달 근처에서 바라본 지구는 숨이 막힐 지경으로 아름다웠단다. 파아란 바다와 초록빛 대륙과 그 위를 떠돌던 하아얀 구름은 이제껏 내가 다녀본 어느 별에서도 볼 수 없었던 풍경이었어. 그건 마치 커다란 에메랄드빛 구슬 같았어. 내가 사는 별 페르세포네도 그처럼 아름답지는 않단다. 나는 한동안 말을 잊고 지구의 황홀한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있었단다.

“지구에 사는 생물들은 참 복 받은 종족들이지.”

그때 옆에 서 있던 우리 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지. 우리 아버지는 우주여행의 경험이 아주 많아 지구에도 이미 몇 번을 다녀오셨어. 그래서 지구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신단다.

나는 정말 옳은 말이라고 생각했어. 이렇게 아름다운 환경에서 살 수 있다는 건 신이 지구의 생물에게만 내려준 은총이란 생각이 들었거든.

그런 생각은 지구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욱 깊어졌단다. 파도가 넘실대는 바다와 하얀 해안과 깊고 높게 주름져 있는 푸른 산맥과 온갖 식물이 자라고 갖가지 동물들이 뛰노는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두근거릴 지경이었지 뭐냐.

게다가 말이지.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 모든 것들, 일테면 풀과 나무와 흙과 물이 서로서로 맞물려 돌고 돌아가고 있더란 말이지. 물은 수증기가 되어 하늘로 오르고 수증기는 구름이 되고 구름은 다시 비가 되어 대지를 적시고, 흙에서 난 풀과 나무는 죽어 다시 흙이 되고 또 그 풀을 뜯어먹고 사는 동물들도 죽어 흙이 되고 그 흙에서 다시 꽃이 피고 풀이 무성히 무성히 자라나더란 말이지.

흙의 영혼은 풀과 나무와 꽃의 영혼이 되었다가 벌레와 새의 영혼이 되고 새의 영혼은 하늘을 날다가 다른 동물의 영혼은 되고 동물의 영혼은 다시 흙의 영혼이 되는 거야. 그래서 지구의 모든 것은 영혼이 깃들지 않은 것이 없었어.

말하자면 지구는 그런 영혼들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 같은 것이었어. 그런 끝없는 순환 속에서 지구의 영혼들은 스스로 맑아지고 스스로 숭엄해지고 있었어. 그래서 나는 그런 톱니바퀴의 회전을 ‘숭엄한 순환’이라고 부르기로 했단다.

그런데 말이야. 이 ‘숭엄한 순환’을 방해하는 훼방꾼이 꼭 하나 있었어. 그건 바로 인간이라 고 불리우는 동물이었어. 바로 너와 같은 족속인 지구인이었지.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면 ‘숭엄한 순환’의 톱니바퀴를 파괴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어.

그들은 도시를 만들기 위해 숲을 베어 내고 물길을 막고 대지를 파헤쳐 버렸어. 그리하여 그 숲에 살던 수천수만의 벌레와 나무와 풀을 영혼을 영원히 죽여 버리는 거야. 그들은 도로를 만들고 그 도로 위에서 자동차라는 기계를 굴리고 다녀서 공기의 영혼마저 병들게 하는 거야. 게다가 그들은 욕심 때문에 같은 종족끼리 서로를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더구나.

같은 종족을 그렇게 참혹하게 죽이는 종족은 인간뿐일 거야. 그들에게는 영혼이 없는 것 같아. 내 생각엔 인간이 지구상에서 가장 열등한 생물일 거야. 나는 네가 그런 인간이라는 종족에 속한다는 게 슬펐단다.

널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나. 어느 한적한 깊은 산골짜기였지. 나는 우주선에서 내려와 높은 나뭇가지에 앉아 쉬고 있었어. 잎새들이 뿜어내는 향기가 너무 좋았거든. 그런데 어떤 인간 아이 하나가 마을 쪽에서 고갯길을 넘어오더니 내가 쉬고 있는 나무 밑으로 오는 거야.

그 아이가 바로 너였지. 너는 가슴에 어떤 동물을 안고 있었어. 그 동물은 죽은 듯이 보였어. 너는 손으로 땅을 파더니 그 동물의 시신을 묻더구나.

나는 네가 어떻게 하나 하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지. 인간들이란 위험한 족속이기 때문에 절대로 그들에게 모습을 드러내선 안 된다는 아버지의 엄명이 있기도 했어. 인간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면 기겁을 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족속이라고 했어.

너는 무덤을 만들고 그 앞에 쪼그려 앉아 한참 동안 내려다보고 있더구나. 그리고 넌 손등으로 눈물을 훔쳐내는 거야. 난 그때 인간들도 운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단다. 울고 있는 조그만 아이에 대한 안도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눈물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는지 모르지만 난 나무를 살금살금 내려와 네 앞에 섰단다. 그런 날 보고도 넌 별로 놀라지도 않더구나. 숲속에서 사슴이라도 만난 양 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빛내며 이렇게 물었지.

“넌 누구니? 담비를 데려가려 왔니?” “담비가 누구야?” 나는 우리들의 뇌 속에 장착된 언어 조절기를 너희들의 말에 맞추어서 그렇게 되물었지. “응, 내가 기르던 우리 집 토끼 이름이야. 병이 들어 그만 죽고 말았단다. 그래서 난 무척 슬프단다.” “응, 그랬구나.” “난 네가 우리 담비 영혼을 하늘나라로 데려갔다가 다시 태어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 그렇게 해 줄게.”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그렇게 대답하고 말았단다. 넌 정말 내가 담비의 영혼을 데리러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으로 믿고 있는 듯했거든.

그리고 우린 많은 이야기를 했지. 넌 숲속에 사는 많은 동식물들을 내게 소개시켜 주었어.

덕분에 난 지구의 동식물들의 영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단다. 넌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하게 영혼을 가진 인간인지도 몰라. 난 너로 인해 지구의 앞날이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알 게 되었어. 너와 같은 맑은 영혼을 가진 인간들이 결국 지구를 구해 낼 것이라고 믿어. 잘 있어. 언젠가 어른이 되면 다시 우주선을 타고 네 별을 찾아갈게. 그때까지 너도 그때 그 눈물을 잘 간직하고 있길 바래. 안녕. 페르세포네 별에서 너를 사랑하는 친구가.

작가 정태규. ⓒ정태규

#주요 경력

정태규는 1958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났다. 부산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학위를 받고, 분포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며 1990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제1회 부산소설문학상과 제28회 향파문학상을 수상했으며, 부산작가회의 회장과 부산소설가협회 회장을 지냈다.

소설집으로 『청학에서 세석까지』, 『길 위에서』, 『편지』가 있으며, 산문집 『꿈을 굽다』, 『당신은 모를 것이다』, 평론집 『시간의 향기』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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