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자료화면1 ⓒsbs

어떤 특정 캐릭터가 등장한다면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노출 분량이 상당하다. 또한 자신이 스스로 찾아서 보는 영화와 달리 많은 사람들의 스스로 의지와 관계없이 접하게 되기에 그만큼 영향력도 클 수밖에 없다. 때문에 좀 더 장애인 인식 개선에 바람직한 결과를 낳을 수 있어서 연출에 고심이 필요하고 집중적인 모니터와 분석대상이어야 한다.

최근 만큼 TV방영 드라마에서 장애인 캐릭터를 이렇게 많이 접할 수 있었던 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아울러 내용적으로도 단순히 특집극이나 단막극에 등장하여 인식 개선 차원에서 호평을 받던 과거의 양태와는 좀 달라졌다. 다만 부쩍 증가한 장애 관련 드라마는 과거보다 진일보한 면이 있지만 여전히 좀 더 생각할 점이 있어 보인다.

단순 엑스트라 수준이 아니라면 장애인의 등장에는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는데 하나는 주요 인물로 등장하여 처음부터 일관되게 스토리텔링에 관련되는 유형이다. 다른 하나는 특정 에피소드에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경우다. 이는 사건 사고를 다루는 메디컬 드라마나 수사물에 자주 등장한다.

드라마 <라이프>자료화면1 ⓒjtbc

드라마 <친애하는 판사님께>에서는 시각장애인 자녀와 어머니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이 드라마는 형 대신 판사 역할을 하게 된 동생의 좌충우돌 속에서 법과 시민의 행복을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에피소드가 다뤄지고 그 가운데 장애인 모녀가 당하게 된 것이다.

어린 초롱이는 판사실에 친애하는 판사님께로 시작하는 편지를 보낸다. 장애인의 현실을 개선해 달라는 내용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어머니를 혼내 달라고 한다. 왜일까. 일단 놀이동산에 갔다가 어머니가 아르바이트생을 밀어서 다치게 했다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그간에도 초롱이 어머니가 수시로 다툼을 일으켜 곧잘 처벌을 받아 오고 있었다. 이 때문에 초롱이는 괴로웠던 것이다. 물론 정말 어머니가 혼나기를 바란 것은 아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소외의 현실을 분노로 푸는 어머니의 행동을 통해 현실을 부각하고, 분노와 저항의 공격성이 해법은 아니라고 지적하는 셈이다. 장애아를 키우는 어머니의 고통을 간접으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제도적 실천에 관한 대안 모색을 좀 소외시키고 말았다. 감성적인 접근과 가족주의가 결합할 때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전형이었다. 하나의 에피소드이기 때문에 초롱이와 어머니는 더 이상 다시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시각장애인의 현실 부각보다는 가족의 고민과 갈등을 초점에 두었던 것이다.

드라마 <라이프>자료화면2 ⓒjtbc

한편 드라마 <라이프>는 메디컬 드라마이기 때문에 다양한 인물과 사건, 이야기가 등장할 수 있다. 그럼에도 장애인이 단순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주요인물로 등장한다.

무엇보다 예선우는 확실하게 자기 일 즉, 직업을 갖고 있다. 단순히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니라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활동들을 통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바람직한 인물로 등장한다. 건강보험 심사평가위원회 심사위원이고 정형외과 전문의다.

대형병원의 부조리와 비리를 파헤치고 바로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의 지적인 역량과 열정이 때로는 통쾌하게 서사 흐름에 작렬한다. 그는 교통사고를 통해 중도 장애를 갖게 된 사례다.

장애인은 누구라도 될 수 있으며 공부를 잘하고 전도유망한 직종의 종사자도 언제나 해당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휠체어 장애인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그를 통해 이동 장애에 관한 관점을 부각해 주목을 받았다. 장애인 가운데 세속적인 관점에서 가장 출세한 유형이다.

그런데 사회적 지위가 높아도 여전히 그들의 고통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그 출세가 가능했던 것은 어머니의 헌신이었다. 그들의 사회적 활동과 활약이 가능했던 것은 그를 케어한 어머니가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실존적 고민에만 함몰되는 모습이었다. 장애인 가정의 현실은 형제애 정도로 확장되었다.

또한 이 드라마는 이동 장애인의 현실을 부각하려는 가운데 모순에 빠지기도 한다. 일상에서는 장애인을 자꾸 쳐다보지 말라고 하면서 드라마의 시선은 예선우의 이동과 업무 과정에서 얼마나 불편하고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뚫어지게 바라본다.

하지만 자신의 권리를 위한 열정적 투쟁이 아니라 의료 모순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장애인의 또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드라마 <비밀과 거짓말> 자료화면 ⓒmbc

서번트 증후군은 발달장애인에 나타나는데 자폐와 지적 장애를 동반하는 것으로 흔히 묘사된다. 영화에 천재로 주로 등장해 왔는데, 드라마 <비밀과 거짓말>에는 서번트 신드롬을 갖고 있는 캐릭터, 우철이 등장한다. 여러 영화에 흔히 나왔던 음악 천재로 등장한다.

그런데 좀 코믹한 캐릭터이면서 갈등을 일으키는 존재다.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것이 전형적이며 많이 본 듯한 느낌을 준다. 여기에 성인 연기자임에도 호빵 머리에 멜빵 반바지를 입고 있다. 유아 상태에 머물러 생각하지 못한 행동들 때문에 주로 이 장애인 캐릭터로 돌보는 가족의 어려움이 부각된다.

가족만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항상 돌봐 줘야 하는 존재이다. 음악 연주를 통해 자기 역할을 한다. 다만, 애써 꼭 발달장애인이 천재로 나오는지 특히 음악 천재로 나오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발달장애인이면서 천재 음악가가 실제로 얼마나 활동하고 있는지 헤아려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매우 드문 경우가 마치 일반적인 것처럼 오해를 주는 대표적인 캐릭터 설정이다. 음악을 통해 정체성과 주체성을 좀더 면밀하게 반영했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무엇보다 전체적으로 주변부 인물에 불과하고 과거의 드라마에서 좀 벗어나지 못했으며 다만 장애인 캐릭터가 좀더 빈번하게 등장할 뿐이었다. 거의 매회에 수초만이라도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간 장애인과 관련 단체의 노력으로 영화와 같이 드라마에도 과거보다 장애인이 많이 등장하고 있다. 단순히 많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넘어서서 질적 성장을 조금이나마 이루고 있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다를 바 없으며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갖고 능동적이고 성취 지향적이면서 사회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핵심적인 인물로 등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하나의 에피소드의 등장인물이나 단순 희극적 역할에 갈등을 조장하는 캐릭터로 설정되는 일은 여전하다. 극적 감동을 위해 특정 장애인 캐릭터만 빈번한 것도 여전히 과제이다.

무엇보다 장애 자체를 극적으로 강조하지 않는 단계에 이르러 장애/비장애의 인위적 분별보다는 하나의 구성원, 나아가 주체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김헌식

문화평론가, 문화정보콘텐츠학 박사,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제40회 방송대상 심사위원, 저서 『비욘드 블랙』,

『세종, 소통의 리더십』『, 영화와 예술로 보는 장애인 복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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