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중인 탁용준 화백. ⓒ한국장애예술인협회

병원에서 만난 멘토

탁용준은 29살까지 아주 건장한 청년이었다. 키가 큰 호남형에 말을 재미있게 하는 미래가 촉망되는 젊은이였다. 그를 화가로 만든 것은 29살 여름 수영장에 놀러 가서 풀장 안으로 다이빙을 하는 순간, 머리가 바닥을 치며 경추가 손상되는 순간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당시 결혼한 지 9개월밖에 되지 않은 신혼이었고 예비 아빠였다. 그를 덮친 전신마비는 그의 행복을 집어삼킨 듯이 보였지만 그는 마비에서 살짝 벗어난 어깨의 근육을 이용해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붓을 잡은 듯이 보이지만 보조기구에 붓을 끼운 것이다. 그는 미술을 전공하지 않았다. 그저 어린 시절 뛰어놀던 곳을 떠올리며 자연을 그리고 성악가 부인 덕분에 음악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다.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전신마비가 되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미쳤다고 한다. 바다도 아니고 무슨 다이빙이냐고… 그런데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데 전신마비 장애인 한 명이 그의 병실로 입원해 들어왔다. 그도 다이빙을 하다가 목뼈를 다쳐 전신마비 장애를 갖게 된 희한한 경우였다.

그는 이미 구필 화가라는 자기 일을 갖고 있었다. 그는 탁용준에게 많은 얘기를 해 주었는데 가장 큰 울림을 준 것은 바로 이 말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어요. 그림을 그리면 행복하죠.”

탁용준은 학창 시절 그림을 무척 좋아해서 미술 활동을 많이 하였고 청소년기에는 만화를 그리며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구필 화가 김기철 화백이 그렇게 잊고 있었던 그의 꿈을 일깨워 주었다.

그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집에 돌아가자 이미 방 한가득 그림 도구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가족들은 탁용준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을 하며 새 인생을 살아가길 바라고 있었다. 탁용준은 혼자 생각하였다. 사고 후 6개월 만에 태어난 아들이 철이 들었을 때 아빠가 아무 것도 안 하고 침대에 누워서 하루 종일 텔레비전이나 보고 있으면 아들에게 아빠는 무의미한 존재가 될 것 같았다. 아들에게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붓을 잡았다.

탁용준 화백 작품 1, 2.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그림 인생

동네에 장애인 화실이 있어서 그곳에서 장애인 동료 화가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림 공부를 하였다. 미술 공부에 목말라 홍대 미술교육원에 다녔고, 화가이며 목사인 박영 선생님을 만나 4년 동안 개인 지도를 받았다.

탁용준은 그림을 시작하며 만나는 사람에게 다짐하듯 말하였다. “나 10년 후 개인전 열거야. 10년 후다.” 그렇게 선언을 해야 포기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약속은 지켜졌다. 무엇을 바라고 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그림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어서 1999년부터 여러 미술대전에 꾸준히 응모를 하였다.

그 결과 2004년 대한민국기독교미술대전에서 우수상을 받아 정식으로 데뷔를 하였다. 2014년에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에서 미술상을 수상하였다. 탁용준이 그림을 시작한 지 25년이 지났다. 활동은 왕성했지만 그림으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미술시장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서 전시회에도 지인들이 대부분이고 작품도 연고로 구입을 한다. 탁용준은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자기 작품으로 아트 상품을 만들기도 하고, 사보나 잡지 그리고 각종 인쇄물에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탁용준 화백 작품 3, 4.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월간 『한국은행』에 1년 동안 한 표지 작업은 경제적인 도움보다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더 컸다. 방송 드라마에 그의 그림이 소품으로 사용되어 탁용준 작품은 유명세를 탔다. 기회가 온 후에 작업을 하면 너무 늦다고 생각하고 먼저 그림 작업을 해서 기회가 왔을 때 바로 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1년에 100개작 이상을 그리고 있다.

장애가 심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편견에 맞서기 위해 모자이크 방식으로 120호까지 작업을 했었다. 그는 처음에는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다가 어깨 근육 힘을 이용해 손에 붓을 묶고 팔을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작업 반경을 넓히고 싶어서였다. 그동안 그린 그림이 1,500여 점이 넘는데 그 숫자가 탁용준이 얼마나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화가인지를 잘 말해 준다.

탁용준 화백 작품 5, 6.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글쓰기 도전

SNS를 통하여 가까운 지인들에게 위로의 꽃말을 가진 양귀비 꽃 그림과 짧은 사랑의 글을 적어 보냈는데 예상보다 큰 반응을 보였다. 함께 공유하고 전파하며 마음의 어깨동무를 해 주었다. 그림 친구들과 그룹전을 열었을 때, 미술평론가가 쓴 평론을 읽고 큰 용기를 얻었다.

-탁용준의 그림은 어린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그림이며, 조금 더 들여다보면 저절로 그림을 보는 자신의 경험과 작가의 경험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을 보면 아주 오래전 풋풋했던 첫사랑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과 행복했던 시간들이 그림을 보며 영상과 같이 흘러감을 느낀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저절로 미소를 짓게 되었는데 그이유는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누구와 입맞춤했던 시간을 떠올릴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기 그림이 사람들을 행복의 시간 여행으로 이끌고, 동심의 시간으로 잠시 돌아가서 미소 짓게 할 수 있다는 것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는 수필집 『행복』에서 이렇게 말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사하라사막에 불시착한 작가이며 조종사인 쌩 떽쥐베리가 척박한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속에서 사람이 살아서 구조될 수 있는 한계점인 72시간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버틸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옛 추억을 회상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어떤 물질적 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절대치, 생명의 힘을 주는 것이 행복한 추억이면, 저의 그림도 그런 생명력의 원천이며 그것은 큰 감사함입니다.

저의 몸 상태는 모든 가능성을 잃은 상태로 보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한계를 넘어서 평강을 찾을 수 있고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도 있다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거룩한 행동이라고 믿습니다.

한때는 끝조차 보이지 않았던 어두운 터널을 지나왔기에 제게 밝은 빛의 소중함은 더욱 애틋합니다. 마음에서 발화한 그 빛은 어두움을 스스로 물러가도록 만들고 평강과 아름다움이 자리 잡도록 만듭니다. 그런 밝음과 희망을 타인들과 더 많이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이 그림책에 담긴 아름다운 추억의 시간들을 선사하려고 합니다.

탁용준 화백 가족사진.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행복한 남자

주위 사람들은 탁용준이 아주 행복한 남자라고 말한다. 아름다운 부인, 든든한 아들, 그를 항상 지지하는 지인들 그리고 무엇보다 행복을 나눌 수 있는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부인은 남편이 다치자마자 운전부터 배웠다. 남편의 이동을 자기가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활동보조인서비스제도가 생기면서 부인은 남편 때문에 접어야 했던 성악가의 꿈을 새롭게 키우며 소프라노로 각종 자선 무대에 서고 있다. 아들은 미국에서 피지컬 세라피를 전공하고 심장 재활치료사로 병원에 근무하고 있다. 가장이 장애를 갖게 되면 가족 모두 불행해진다는 사회적 통념을 깨고 가족 모두 행복해졌다.

탁용준은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를 한다. 개인 작업실이 있어서 그곳으로 출근을 한다. 그의 작업량은 가히 놀라울 정도다. 초대전이 많아서 부지런히 새 작품을 그린다. 개인전 반응도 좋아서 개인전 준비로 하루가 짧다.

탁용준은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행복한 그림쟁이이다. 그는 앞으로 국내를 넘어 해외에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여 장애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꿈을 갖고 있다.

그는 병원에서 절망과 싸우고 있는 많은 환우들에게 그런 희망을 전해 주려고 그림을 기증하기도 하고 그림책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다. 희망은 대단한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아주 작은 동기 부여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 스스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장애 속에서 가꾼 자신의 행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싶은 소망으로 탁용준은 지금도 행복을 만들고 있다.

탁용준

#주요 경력

개인전 19회, 자선 개인전 2회 한국미술협회전 등 그룹전 260여 회, 해외 그룹전 10여 회시인 용혜원 님 등 여러 문인들과 시화집, 수필집 등 10여 권 출간 2015년 시화집『행복』출간. 기독출판협회 우수도서상 수상 외

# 회원 활동

한국미술협회 회원, 양천미협(이사), 그림사랑(회장), 희망아트(회장), 사랑의교회미술인선교회, 한국미술인선교회, 빛그림회 회원, 기독교미술대전 초대작가 외

# 공모전 17회 수상

1999년 대한민국 현대미술대전 1998~1999, 2003년 대한민국 기독미술대전 1994~2000년 곰두리 미술대전 2004년 제12회 대한민국 기독교미술대전 우수상 2005년 행주미술대전 2006년 경향미술대전 2010년 장애인문화예술국민대축제 입상 외

# 방송 그림 찬조

2013년 SBS-TV 드라마 <수상한 가정부> 그림 5점 2014년 SBS-TV 드라마 <따듯한 말 한마디> 그림 1점 2015년 SBS-TV 드라마 <미녀의 탄생> 그림 3점

# 주요 작품 소장처

한국예탁결제원, 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경기도 부천시청, 서울시 양천구의회, 수원교도소(교화용 기증), 예가족갤러리, EAC갤러리, 서울 사랑의교회, 국제제자훈련원, (사)희망방송, 극동방송, 연세의료원 재활병원, 국립재활병원, 인천세브란스병원, 복지법인 에덴하우스, 서울시립북부병원,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외

# 기타 수상

1998년 4월 양천구 장애극복상(양천구청) 2014년 10월 대한민국장애인문화예술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2015년 5월 양천구민상 문화예술 부문(양천구청) 2015년 12월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 2016년 1월 기독출판 우수도서상『행복』(사)한국기독교출판협회

http://www.takar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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