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수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 글 방귀희. 그림 이해경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 내용은 지난 8월 31일자 조선일보 에세이에 실린 방귀희 수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을 웹툰으로 만든 것이다.

"희야! 나와라 가자."

"네."

"업자."

장애인들이 홀대받던 1970년대 나는 대학에 다녔다.

대학은 찾아 다니는 강의실...

향학열에 불타던 나는 타인의 시선에 상관없이 엄마 등에 업혀 다녔다.

"오늘 점심 떡볶이 먹자!"

"길 건너 또봉이네가 맛있어."

(편집자 주: 나는 장애인에게 가장 친절하지 못하던 시절인 1970년대에 대학 생활을 하였다.)

방귀희 수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 글 방귀희. 그림 이해경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가자."

도시락은 있지만, 먹기 싫다.

수업도 아닌데

먹자고 한뼘 계단이 장벽인 그 높은 산을 내려 간다는 것은

미친짓이었다.

"먹어."

"앗! 저..."

(편집자 주: 강의실이 보통 5층, 7층.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너무나도 높은 산이라 한번 올라가면 내려오지 못했다. 점심을 먹으러 그 산을 내려온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친구들은 삼삼오오 짝지어 학교 식당에 가고, 좀 더 여유 있는 아이들은 학교 앞 음식점으로 발길을 옮겼지만 나는 빈 강의실에서 혼자 책을 읽었다.

엄마가 도시락을 싸 주긴 했지만 도시락을 먹지 않고 그대로 가져갈 때가 많았다. 엄마한테는 "입맛이 없어서"라고 말했지만 난 텅 빈 교실 한쪽에서 식은 도시락을 먹는 내 초라한 모습을 휠체어에 보태고 싶지 않은 자존심에 배고픔을 참았다.

"이거…." 우리 과 남학생이 나에게 내민 것은 초콜릿이었다. 당시는 초콜릿이 요즘처럼 흔하지 않았다. 지금도 밸런타인데이에 초콜릿 선물을 하지만 그때 TV에서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수줍게 초콜릿을 건네는 광고가 히트 치고 있어서 남학생이 주는 초콜릿을 선뜻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자…." 그 아인 좀 더 적극적으로 눈짓까지 하였다. 그렇게 받아 쥔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었을 때, 내 입안에서 녹아나는 달콤함은 끈적거림과 함께 가슴을 뛰게 했다. 그 초콜릿 때문에 나는 뒤늦게 사춘기 열병을 앓았다.)

방귀희 수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 글 방귀희. 그림 이해경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시간이 흘러도 어디서나 그는 내 마음의 사람이었다.

"넌 매번 희야 옆에만 있냐?"

"내맘이다 왜?"

"둘이 사귀냐?"

"민우 걔 결혼한대."

"뭐? 우리 여고 동창?"

"진짜?"

중증 여성장애인의 결혼은 법률로 규제해 놓지 않았어도

그 당시 사회 분위기는 불법보다 더한 금기였다.

'민우도 어쩔 수 없었을 거야. 현실적으로 나랑은 불가능하니까.'

민우와 영옥이의 집.

"하하하!"

"호호호!"

"딩동~"

"아빠다!"

"여보! 우리집에서 여고 동창들이 모였어."

"그래?"

(편집자 주: 초콜릿으로 친해진 그 아인 결국 내 여학교 동창과 결혼했다. 중증 여성 장애인의 결혼을 법률로 규제해놓지는 않았지만 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불법보다 더한 금기였다.

나는 그런 사회적 방해로 나의 초콜릿 사랑이 미완으로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아인 아무런 잘못이 없고 그 아인 여전히 나에게 초콜릿을 건네주던 때의 그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었기에 결혼 후 친구의 남편이라는 명분으로 종종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방귀희 수필 '사랑과 이별 그리고 초콜릿'. 글 방귀희. 그림 이해경 .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와! 아빠가 초콜렛 사왔다!"

"당신, 매번 초코렛 사오는 통에 얘 이빨 다 썩겠어!"

"왜, 초코렛이 얼마나 좋은데. 심혈관, 피부노화 개선...

특히 허기질 때 먹는 비상식량!"

"헉!"

점심때마다 내민 그 초코렛의 의미는...

결국 나만의 사랑으로 끝난 초코렛 사랑.

"심쿵하던 그 시절... 근데 지금은 왜 심장이 뛰나?"

"교수님, 그건 갱년기 증세가 아닐까요?"

헐!

(편집자 주: 그 친구 집에서 모임이 있던 날이었다. 친구의 남편, 아니 더 정확히 표현하여 나의 초콜릿 사랑이 퇴근하여 집으로 들어왔다. "아빠~!"라고 외치며 아기가 달려가자 그는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아기의 작은 손에 쥐여 주었다.

'저 초콜릿은 내 건데…' 싶어서 복잡한 심정에 맥박이 빨라지고 있을 무렵 천둥이 쳤다.

"여보! 또 초콜릿이야? 당신 때문에 우리 애 이 다 썩겠어."

"초콜릿이 얼마나 좋은 식품인데, 당분 때문에 피곤도 풀어주지, 기분도 좋아지지. 어디 그뿐인가? 비상시 식량 역할까지 하는데…."

'헐!'

그는 초콜릿 예찬론자였던 것이다. 그가 나한테 준 초콜릿은 비상식량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점심을 먹으러 함께 가지 못하는 장애인 친구를 위해 착한 그가 가장 간편하게 허기를 잠재울 수 있는 초콜릿을 가끔 사다 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짝사랑은 초콜릿으로 시작해 10년 후 바로 그 초콜릿 때문에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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