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막 처리가 가능한 모바일 기기들.ⓒ정봉근

추석 연휴 극장가에서는 최신 영화를 보러오는 수많은 인파로 붐빈다. 하지만 명절 날 또는 연휴에 극장가를 자유롭게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들이다.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본인이 원하는 영화를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시간에 관람하기란 좀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자막 상영이 되지 않는 한국 영화가 많을 뿐만아니라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상영은 영화관의 이벤트성 행사에 그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청각 장애인을 위한 자막 영화를 상영하는 곳은 전국을 통틀어13곳 정도로 전국 영화관 1975 여개 의 7%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며 이마저도 영화제작자 및 극장주들은 비용상의 문제를 들어 기피하고 있다. 비단 영화 뿐 만이 아니다.

지난 6월 국회에서는 방송법 일부 개정을 통해서 방송사로 하여금 장애인 시청자를 위한 방송편성을 강화하도록 했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비장애인들과 똑같은 프로그램을 똑같은 환경에서 볼 수 있는 것이지 장애인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편성하고 별도의 공간을 제공하라는 것이 아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영화 및 방송 매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것이 정말 비용상의 문제일까?

영화 상영시 자막을 자신이 원하는 위치로 조절할 수 있는 캡티뷰.ⓒ정봉근

미국에서는 지난 2010년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 - the 21st Century Communications and Video Accessibility Act (CVAA) 을 제정하였다. 기존의 미국 장애인 법 ADA에서 규정하고 있는 방송 및 통신에 대한 차별 금지 조항을 뛰어 넘어 방송 관련 접근성 법을 별도로 제정하여 인터넷 등 다양한 정보통신 환경에서의 장애로 인한 정보 격차를 예방하자는 취지다.

기존의 미국 장애인 법의 경우에는 온라인 등 사이버 공간에서의 장애인 접근성 차별에 대한 규정이 법문상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 늘 논란이 되어 왔었다. 하지만 이법의 제정과 함께 인터넷 환경에서의 장애인 접근성 및 차별 금지에 대한 조치를 강화하게 되었고 미국의 영화사 및 인터넷을 통한 영상물을 보급하고 있는 유투브등 온라인 업체들이 발빠른 대처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가장 큰 예로 지난 8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ederal Communication Commission) 에서는 21세기 통신 및 비디오 접근성 법 (CVAA)을 준수하기 위해 미국 영화 텔레비전 기술인 협회(Society of Motion Picture and Television Engineer, SMPTE) 에서 제정된 온라인 비디오 영상물 자막처리에 관한 표준을 모든 영화사 및 방송 관련 산업에서 준수할 것을 권고 하였다.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장애인들의 영상물 접근성에 대한 접근성 표준을 영화 및 방송 영상물 제작사의 최고 기술진들로 이루어진 협회에서 직접 제정하고 이를 국가 표준으로 채택했다는 사실이다. 국내에서 처럼 정부 기관 주도로 접근성에 대한 표준을 만들어 사업자들에게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자 및 기업체에서 장애인에 대한 접근성 보장을 사회의 의무로 인식하고 직접 개발에 나선 것이다.

미국 미디어 접근성 그룹(Media Access Group)에서 직접 개발한 무픽스.ⓒ정봉근

이번 방송 통신 영상물 접근성에 관한 규정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동영상의 자막 처리 기술을 통일화 함으로써 각종 미디어 플레이어 및 영상물의 자막 처리 변환을 보다 원할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기존의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국가에서도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표준을 미국 표준으로 체택함으로써 전세계 장애인들의 동영상 접근성을 높이도록 한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겠다.

현재 청각 장애인들을 위한 자막 처리 기술은 영화 상영시 사용되는 프로젝터에 자막을 넣어 상영하는 방법과 스크린에 별도의 자막 처리 영상 디스플레이를 설치하는 방법 그밖에 개인 관람자들을 위한 별도의 자막 처리 장치를 탈 부착하는 방법이 있다. 미국의 도레미 시네마(Doremi Cinema)라는 극장용 기기 개발 업체는 최근 캡티뷰(CaptiView) 라는 개인용 영화 자막처리 장치를 개발해서 큰 주목을 끌고있다.

이 기기의 경우에는 기존의 영화관 의자에 별도의 자막 처리 장치를 부착하고 무선 인터넷을 통해 전송되는 자막을 관람자가 본인의 영화 감상시 별도의 화면을 통해 원하는 각도로 조절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제작되었다. 이밖에도 미국 영상 접근성 그룹(Media Access Group)에서 개발한 모픽스(Mopix)의 경우에는 투명한 화면에 자막을 띄워 영화 감상을 돕는 기기로 영화 화면 전체를 빠짐없이 관람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 영화 제작사 및 영상 미디어 관련 기업 들은 자발적으로 청각 장애인들의 영화 관람을 위한 접근성 향상에 노력하고 있으며 이러한 노력들은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관람객들을 똑같은 고객으로 생각하는 기업의 윤리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용을 이유로 내세우며 장애인 접근성에 관한 사항을 외면시 하고 있는 우리 기업들이 보고 배워야 할 점이다.

*정봉근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현재 시애틀 워싱턴대학 재활의학과에서 장애인 재활 및 삶의 질 향상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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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봉근 칼럼니스트 현재 서울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에 있으며 작업치료사, 보조공학사로서 장애인을 위한 기술을 개발, 연구하고 있다. 4차산업 혁명과 함께 앞으로 다가올 장애인의 일상생활 변화와 이와 연관된 첨단기술을 장애학 관점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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