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부터 자립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척수장애인 이양신씨. <에이블뉴스>

[특집]제26회 장애인의 날-자립생활⑤

척수장애인 이양신씨의 자립생활

우리사회에서 자립생활(Independent Living)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현재 자립생활을 실천하고 있는 이양신(여·35·척수장애 1급)씨를 통해 우리나라 자립생활 환경의 현주소를 짚어봤다. 이씨는 27세 때 추락 사고를 당해 경추 3, 4, 5번을 다쳤다. 목 아래로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전신마비 장애를 입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5년, 재가장애인으로 15개월을 보낸 이씨는 33살 때인 2004년 6월부터 자립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누구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립생활

“어서오세요.” 지난 14일 오전 11시 50분경, 서울 충정로 부근에 위치한 이양신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이씨의 활동보조인 김정훈(23)씨가 문을 열자 전동휠체어에 앉아있던 이씨가 기자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커다란 눈이 인상적인 이씨의 표정이 매우 밝다.

그녀가 국립재활원에 입소해 있을 당시인 지난 2004년 초 자립생활과 관련한 책들을 접하면서 자립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정립회관의 자조모임 ‘지성인’에 속해 활동하던 중 동료들에게 ‘태어나서 30년 만에 처음 외출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햇빛조차 자신의 의지대로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잘못하던 나도 저렇게 살 수밖에 없겠구나’라고 생각한 이씨는 자립생활을 결심했다고 한다.

곧바로 이씨는 휴대폰을 마련하고 자립생활에 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여러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전화해 관련정보를 알아냈고 2004년 6월부터는 서울DPI 장애인청년학교를 통해 만난 동료와 함께 서울 화곡동에 집도 구해 독립했다.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연수를 시작하고, ‘2004 장애인정인욱리더십 연수’에도 참여하면서 자립생활에 푹 빠져들었다.

2005년 4월부터는 이곳 충정로로 이사를 와서 혼자 살기 시작했다. 현재 이씨는 관악자립생활센터에서 비상근직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장애인인권교육센터의 장애인인권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혼자 사는 것뿐만 아니라 누구든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 자립생활”이라며 “자립생활은 굉장한 모험인데 아직 활동보조인 서비스 등이 제도화 되지 않아 자립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씨는 현재 몸을 움직일 수 없는데다가 기도협착증과 방광결석까지 앓고 있다. 이씨에게는 24시간 활동보조인이 필요하지만 활동보조인이 제도화되지 않아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비스를 받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

따라서 이씨는 활동보조인이 오기 전까지는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다. 아침 9시에 활동보조인이 오면 이동리프트를 이용해 침대에서 일어난다. 전동휠체어에 앉아 이씨는 활동보조인을 통해 세수와 양치질을 한다. 이씨가 방으로 들어오면 활동보조인은 옷을 입히고, 머리를 묶어 준다. 이씨는 매일 아침을 이렇게 시작한다.

이씨는 현재 ‘폴리’를 통해 소변을 처리하고 있다. ‘폴리’란 방광에 끼우는 소변줄을 말한다. 활동보조인은 수시로 이씨의 소변팩을 점검해 비워준다. 대변처리는 관장으로 하고 있다. 2~3일에 한번씩은 관장을 통해 대변을 봐야 한다. 이씨는 “척수손상으로 인해 감각이 마비되어 신변처리가 어렵다”며 “실금이나 실변으로 인해 노이로제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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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보조인 김정훈씨가 이양신씨의 외출준비를 돕고 있다. <에이블뉴스>

현재 이씨가 받고 있는 활동보조서비스는 자립생활센터 프랜드케어가 사회적 일자리 사업을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이씨는 일정 비용을 지급하고, 이 지원을 받고 있다. 프랜드케어를 알기 전에는 자활후견기관 도우미나 자원봉사자를 이용하거나 활동보조인은 직접 고용하곤 했다.

자립생활을 시작한 후 여러 명의 활동보조인이 이씨를 거쳐 갔지만 그동안 활동보조인과 관계가 나빴던 적은 없다고 한다. 그 비결로 이씨는 ‘대화’를 강조했다.

“서로 대화하면 문제가 생길 일이 적고 서로에 대한 신뢰와 믿음을 쌓을 수 있다. 장애인은 활동보조인을 고용했으니 뭐든 시켜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활동보조인과 장애인을 중재해주는 코디네이터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이와 같은 생각 때문인지 이씨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을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고 건넨다.

점심 식사시간이 되자 활동보조인 김씨가 점심을 내왔다. 밥과 반찬 등을 이씨의 전동휠체어에 올려놓는다. 김씨는 보조기구를 이용해 수저를 쥔 이씨에게 먹고 싶은 반찬을 물어본 뒤 반찬을 숟가락에 올려준다. 물은 컵에 빨대를 꽂아 수시로 마신다.

오늘은 오후 3시에 외출이 잡혀 있다. 점심식사 후 곧바로 외출을 위해 준비를 시작한다. 김씨가 스킨과 선크림을 발라준 뒤 신발을 신겨주고 외투를 입힌다. 이씨가 외출하기 전 이씨의 아버지가 이씨의 집을 방문했다.

현재 이씨의 부모님은 경기도 안양에 살고 계신다. 아버지는 가끔 이씨의 집에 들려 점심을 드시고 가신다. 이씨는 자립을 결심했을 때 가장 힘든 것은 ‘부모님과 형제를 설득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부모님과 형제가 갖고 있는 장애인에 대한 오랜 관념을 변화시키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장애인과 자립생활에 대한 인식변화를 위해 가족상담의 활성화가 중요하다. 동료상담과 가족상담은 같은 입장에서 아픔을 공유하는 것으로 장애인의 자립에 큰 힘이 된다. 말할 기회를 만들어줌으로써 자존감을 높여주고,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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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도 알아야…장애인은 위험할 권리도 있다"

외출을 위해 이씨가 밖으로 나오자 활동보조인 김씨는 열쇠로 문을 잠근다. 오늘 외출의 목적지는 자립생활센터 프랜드케어(이하 프랜드케어) 사무실. 집에서 1~2분 거리에 위치한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으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이동해 엘리베이터를 통해 승강장으로 내려가 지하철을 탔다. 프랜드케어가 위치한 6호선 효창공원역은 승강장에서 대합실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으나 대합실에서 지상까지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휠체어리프트를 통해 이동했다.

이씨가 화곡동에 살 때 지하철 5호선 화곡역을 주로 이용했는데, 그곳은 편의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역무원과 공익요원의 도움을 받아 전동휠체어에 탄 채로 이동하곤 했다. 특히 이씨는 외출하기 10분 전 역무실에 미리 전화해 도착시간을 알려야했다.

이씨는 “자립생활을 하려면 느림과 여유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 지하철을 타거나 밖에서 이동할 때 조급해하지 말고 느림을 즐겨야 한다”며 자립생활 환경이 구축되어 있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꼬았다.

프랜드케어에 도착한 이씨는 동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프랜드케어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립생활 프로그램 '블루오션을 찾아서'의 준비회의에 참석했다. '블루오션을 찾아서'는 장애인시설 등에 찾아가 자립생활을 알리는 프로그램으로 이씨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연하는 활동을 맡기로 했다. 이날 회의에는 이씨를 비롯한 4명의 장애인과 1명의 비장애인이 참석했으며 간단한 준비사항을 논의하고 곧바로 회의를 마쳤다.

외출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 4시 30분경. 활동보조인 김씨는 이씨의 부탁에 따라 컵에 물을 따라 휠체어에 올려주고, 연탄불을 확인한 뒤 5시가 되자 돌아갔다. 약속된 활동보조 시간이 모두 끝난 것이다.

이씨는 활동보조인이 가고 나면 주로 컴퓨터를 하곤 한다. 활동보조인이 없을 때에는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요청한다. 주변사람들은 이씨를 침대에 눕히고 신변처리를 도와주고 있다.

모든 사람이 그렇겠지만 이씨는 아프거나 갑작스런 사고를 당할 때 가장 힘들다고 한다. 예전에는 집 앞 골목에서 전동휠체어가 넘어졌는데, 건물 뒤편 골목이라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아 도움을 요청할 수 없어 계속 소리만 질렀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집 앞 건물 사람들이 이씨와 전동휠체어를 일으켜줬다고 한다.

이씨는 휴대폰을 항상 목에 걸고 있다. 그 이유는 전화기를 옆에 두고 자다 전화기가 떨어지는 바람에 주변에 연락할 수 없어 여름에 32시간동안 누워만 있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아프거나 외로울 때, 위험에 처했을 때 당황하고 힘들 때가 많지만 ‘장애인은 위험할 권리도 있다’. 위험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과정도 자립생활의 일부분”이라며 미소를 보였다.

현실의 벽 너무 높아…자립생활 위한 역량 키워야

장애인인권교육센터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양신씨가 지난 1일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용곡중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씨는 장애인이 된 후 ‘포기’를 가장 먼저 배웠다고 한다. “너는 주는 밥 먹고 죽은 듯 살아라.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하마”라는 것이 주위사람들의 당부였다. 이씨는 “지금도 수많은 장애인이 이런 말을 들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며 “교육과 앎을 통해 이러한 억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이씨는 자립생활 선배로서 앞으로 자립생활에 나설 장애인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나도 자립생활의 내용이 달콤해 뛰어들긴 했으나 현실의 벽은 너무 높았다.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자립생활의 이념만을 갖고 무턱대고 나왔다가는 오히려 더 큰 상처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자립생활은 어렵고 힘들어도 행복한 일이다.”

우리 사회의 장애인 자립생활 환경은 아직 미비하다. 이씨는 직접 자립생활을 하면서 제도적 미비를 몸소 경험하고 있다. 그녀는 “성공적인 자립생활을 위해서는 주택·이동권·활동보조가 반드시 필요하다. 체험홈 등 재가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 준비과정과 장애인의 역량을 키워줄 수 있는 자립생활센터의 힘도 필요하다”고 자립생활 환경 구축을 위한 과제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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