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제26회 장애인의 날-자립생활④

제1회 대입 수학능력시험 다음날인 1993년 11월 18일, 김준우(32)씨는 평생 잊지 못할 일생일대의 사건을 맞이한다. 오토바이를 타고가다 트럭과 부딪히는 사고를 당해 목뼈(3~4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한 것. 그 뒤로 병원에서 2년을 보낸 김씨는 퇴원하자마자 곧바로 장애인생활시설로 향했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져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실정이었다.

“시설에서는 딱 의식주만 해결이 됐다. 먹고 자는 것만 만족해야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아무 생각도 안하기 위해 노력했다. 열흘이 지나니까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라. 그렇게 한달을 버티다 결국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 들어가서도 김씨의 생활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철저히 어머니, 형제들, 교회친구들, 자원봉사자들에 의존해서 살아가야만 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교회에 가는 것이 그의 생활의 전부였다. 그나마 자원봉사자를 구하려면 수십 통씩 전화를 해야 했다. 자원봉사자가 구해져도 수없이 많은 문제점들이 그를 에워쌌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 한 가지를 들어보자면, 한국방송통신대에 들어가려고 시험을 보는 날이었어요. 자원봉사자가 한 시간 늦게 집에 도착했죠. 늦게 가서 감독관에게 사정을 얘기했는데, 먹힐 리가 없었죠. 무료로 봉사하시는 분이라서 자원봉사자에게 화도 못 냈어요.”

[리플합시다!]4월은 장애인에게 무엇인가?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는 김준우씨. <에이블뉴스>

김준우씨 “나도 이제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됐다”

그가 지적한 자원봉사의 문제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수시로 사람이 바뀐다는 점, 자원봉사자의 스케줄에 맞춰 외출 일정을 맞춰야한다는 점, 마음대로 요구하지 못한다는 점, 봉사이후에는 항상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한다는 점 등등.

김씨는 “자원봉사는 무보수라는 장점이 있지만 무책임이라는 위험성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면서 “자원봉사자에 의존하는 장애인은 자기 자신을 찾을 수 없게 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없게 된다”고 꼬집었다.

햇수로 사고 10년째를 맞이하는 2002년, 그는 어렵게 자원봉사자들을 구해 한두 달에 한번씩 상경을 하게 된다. 바로 자립생활 교육, 세미나 등에 참석하기 위한 외출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자립생활이 점점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2002년 6월, 그는 드디어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정립회관이 실시한 ‘2003 정인욱 장애인리더십 연수’에 참여한 그는 자립생활을 만나게 되고,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경험하게 되는 것. 6개월간의 연수를 마친 김씨는 2004년 3월부터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취직, 현재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다.

그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하는 차원이 아니다. 마치 공기와 같은 존재”라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게 되면서부터 삶의 중심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로 되돌려놓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고를 당한 이후, 내가 취직을 하고, 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한때 그림을 배웠다. 목만 움직일 수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그것밖에 없었다. 자립생활을 만나고,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만나고 나서 이제 그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앞으로 나와 같은 중증장애인들에게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무엇인지 알리는 일을 더 잘하고 싶다.”

김씨는 이번 학기부터 숭실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의 꿈을 구체화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이제 그는 자원봉사자 때문에 대학 시험시간에 늦고도 아무 말도 못해야만 하던 예전의 그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진짜 변화는 다른 곳에 있다.

“예전에는 정말 결혼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다. 사귀는 사람은 있었지만, 그 사람과 결혼할 자신은 없었다. 하루 종일 나를 돌보느라고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 사람을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혼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나도 결혼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있다면 그 사람도 자기 일을 하고, 나도 내 일을 하면서 살 수가 있다. 어쩌면 이게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평범한 일일 것이다.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나에게 평범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리플합시다]장애인 일자리 100,000개 과연 가능할까?

안성빈씨 “새 희망을 찾았다. 얼마나 감사한지…”

가스펠 가수와 장애인인권강사로 활동하는 안성빈씨. <에이블뉴스>

안성빈(35)씨는 8년 전 대학을 갓 졸업한 27살 젊은 나이에 경수종양으로 전신마비 장애를 입게 된다. 경수종양은 목뼈 주변에 종양이 생겨 목뼈 주변 신경을 눌러 온몸이 마비되는 장애다. 안씨는 장애를 입고 나서부터 신변처리에서부터 식사, 이동 등 모든 생활을 아버지와 어머니에 의존해 살아왔다.

“점점 기운이 떨어지고, 약해지는 부모님을 보면서 죄책감이 들고, 가슴이 아팠다. 어떻게 하면 안 씻고, 안 먹고, 안 싸고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요즘 ‘인권’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개나 돼지도 먹으면 싸는 것이 섭리다. 먹고 싸는 것조차 해결 안 되는 삶에 무슨 인권이 있었겠느냐?”

이러한 안씨도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만나 새 삶을 찾았다. 아니 예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그는 “샤워하는 것이 부모님에게 육체적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깨끗해지고,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다시 깨닫게 됐다”고 ‘샤워’를 예로 들어 활동보조인 서비스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했다.

안씨가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게 된 것은 지난 2005년 2월부터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통해 한달에 약 200시간 서비스를 받고 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통해 안씨는 현재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조모임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애인인권교육센터 인권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특히 안씨는 가스펠 가수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3년 12월 장애인인터넷방송 희망방송이 주최한 제1회 장애인스타 콘테스트에 출전해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현재 한달에 2~3번씩은 정기적으로 공연 요청이 들어온다. 지난해에는 헬스스카이TV에서 ‘장애인과 함께하는 뮤직투게더’ 진행을 맡기도 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받지 못했다면 내가 어떻게 이런 활동을 할 수 있겠느냐? 6년 반 동안 집에만 있으면서 한평생을 집에서만 살아야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통해 나는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구근호씨 “부탁만 하는 입장에서 벗어났어요”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지원팀장으로 활동하는 구근호씨. <에이블뉴스>

뇌병변 1급 장애가 있는 구근호(40)씨에게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김준우씨와 안성빈씨와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사람사랑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자립지원팀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업무생활과 가사활동에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고 있다. 처음으로 지원을 받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이나 본격적으로 지원을 받게 된 것은 올해부터다.

“나는 타자를 치는 것이 힘들다. 그래서 사업업무 중에 타자치는 일이 생기면 하루 종일 내가 치거나 다른 동료에게 부탁을 해야 한다. 회의할 때 기억력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메모를 해야 하는데, 나는 필기하는 것도 힘들다. 한 두 번은 동료에게 부탁할 수 있지만 계속 부탁하게 되면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 하다못해 커피를 타 마시는 것도 활동보조인이 없다면 동료들에게 부탁해야한다.”

구씨는 “업무활동 보조를 받게 되면서 동료들과 허물없이 지낼 수 있게 됐다. 부탁만 하는 입장에서 부탁을 들어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커피를 타달라고 부탁하는 입장에서 나도 커피를 타줄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구씨에게 업무생활에서 장애로 인한 불안함을 해소시켜줬다. 갑자기 타자를 치는 일이 생겨도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특히 계획적인 일처리가 가능해졌다. 하루 종일 타자를 치고 있지 않아도 되니 계획에 맞춰 일을 진행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활동보조인이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안심이 된다”고 전했다.

혼자서 생활하는 구씨에겐 가사일도 엄청난 부담이 된다.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널고,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를 하는 일들을 하는데 몇 시간씩 소비를 해야 한다. 활동보조를 받으면 1시간 만에 해치울 수 있는 일들이 활동보조가 받지 못한다면 저녁시간을 모두 허비하는 일들이 되고 마는 것이다.

“사실 가사 일은 너무 많은 시간이 소비되고 힘들기 때문에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않으면 안하게 된다. 그런데 가사활동보조 서비스를 받으면서 생활이 윤택해진다는 것이 뭔지를 알게 됐다. 식사를 하면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기쁨이다.”

구씨는 사실 국내 대회에서 메달을 20~30개를 따내고, 올림픽에서도 3개의 메달을 따낸 보치아 국가대표 선수다. 지난 2003년 서울DPI가 주최한 장애인청년학교에 다니면서 ‘자립생활’을 만나고, 양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설립에 참여하면서 자립생활 운동을 시작, 자립생활 활동가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구씨는 “장애인당사자주의니 주체니 이런 얘기들을 듣고 말하면서도 내 삶에 있어서 뭔가 하나 빠진 듯한 느낌이 있었다.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본격적으로 받으면서 내 자신을 찾은 듯한 느낌이 든다. 내 자리를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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