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의 장애인 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일상생활에서 타인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은 약 35만명에 이른다. 사진은 노들장애인야학 이영애씨 삭발 모습. 이씨는 첫돌때 의료사고를 당해 40년이 넘도록 누워서

[특집]제26회 장애인의 날-자립생활②

지난 12월 19일 월요일 오전 9시 경남 함안군에서 근무력증 장애인 조모(남·41·지체장애 5급)씨가 홀로 거주하던 집에서 동사한 채 발견된다. 그가 자던 한 평 남짓한 방안은 수도배관이 강추위에 동파되면서 터져 나온 물이 흘러들어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가 덮고 있던 이불도 마찬가지였다.

조씨는 구조전화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중증의 장애인이었다. 9년 전 어머니가 사망한 후 혼자서 살아왔으며,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집을 방문하는 자활후견기관의 도우미가 전해주는 도시락으로 생계를 이어왔다. 도우미가 방문하지 않는 토요일과 일요일은 빵으로 끼니를 해결해왔다.

서울시청 앞에서 한달이 넘도록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준비위원회측은 ‘조씨에게 활동보조인이 있었더라면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생존권의 문제’라고 외쳐왔다.

하지만 이러한 외침에는 아직 메아리가 없고,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의 투쟁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특히 지난 17일에는 서울시청 앞에서 중증장애인 39명이 삭발시위를 벌였다. 바로 왜 활동보조인 서비스가 생존권의 문제인지 다시 한번 귀를 기울여달라는 요구이다. 이날 삭발시위에 동참한 중증장애인들의 현실 속으로 들어가 봤다.

[리플합시다]장애인 일자리 100,000개 과연 가능할까?

이광섭씨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부분은 얼굴과 목. 이씨는 턱으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해 다닌다.<에이블뉴스>

“28년 동안 방 안에 누워 TV만 봤다”

서울 송파구에 살고 있는 이광섭(35·남)씨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뇌병변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현재 이씨가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신체부위는 얼굴과 목. 이전에는 팔, 다리를 조금씩 움직여 몸을 뒤집거나 기어 다니는 정도의 활동이 가능했지만, 지난 2002년 지하철역에서 휠체어 리프트를 이용하다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현재는 오로지 누워있는 것밖에 못하는 상태가 됐다.

태어나서 28살이 될 때까지 병원에 가는 것을 제외하고 부모에 의해 단 세 번의 외출을 했다. 28년 동안 방 안에 누워 생활했으며 TV 보고, 밥 먹고, 잠자는 생활을 반복하다, 복지관에서 파견된 자원봉사자에 의해 집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씨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나는 인간이 아니라 애완동물이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 다니는 이승연(34·여)씨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 혼자서 누웠다 일어나거나 기어 다니는 정도의 활동이 가능하다. 또한 왼쪽 팔이 자유롭지는 않지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어 혼자서 밥을 먹는 등의 활동이 가능하다. 하지만 몸이 전체적으로 약해 혼자서는 방 문턱 하나도 넘지 못하는 상태로, 태어나서 25살 때까지 집에서 지냈다. 가족의 반대로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일년에 한두 번 명절이 되면 친척집에 가는 것이 25년 동안 외출의 전부였다. 지금은 전동휠체어를 타고 집 밖으로 나오고 있지만, 혼자 전동휠체어에 타고 내리는 활동은 남의 도움 없이 불가능하다.

[리플합시다!]4월은 장애인에게 무엇인가?

문명동씨가 삭발하고 있는 모습.<에이블뉴스>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한다고 보면 된다”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명동(27·남)씨는 뇌병변장애 1급으로 몸의 뒤틀림이 심한 편이다. 휠체어에 올라타는 것부터,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까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 것도 못하는 상태다. 문씨는 “혼자 있을 때는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은 수발을 부모님이 해주고 계시지만 부모님이 연세가 많으셔서 점점 힘에 부치시는 것 같다. 부모님께 미안해서 짜증을 낼 때가 많다.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지만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부모님 마음을 잘 알면서도 충돌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광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체험홈에서 생활하고 있는 뇌병변장애 1급의 배덕민(41·남)씨는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고 대변처리도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일어나고 기어 다니는 정도의 활동이 가능하다. 태어난 후 방 안에서 밥 먹고, 잠자고, TV 보는 생활을 반복하다 28살 때 어머니의 권유로 소공동체 생활시설에 들어갔다. 이후 10년간 시설을 옮겨 다니며 생활했는데, 그가 생활했던 시설 중에는 언론에 의해 인권유린 실태가 드러난 후 폐쇄된 곳도 있다. 배씨는 “그 기도원에서 나는 삶을 완전히 포기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장애인 35만명 ‘타인의 도움 절대적 필요’

이는 현재 시청 앞에서 활동보조인 서비스 제도화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는 몇몇 중증장애인들에게 해당하는 현실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지난 2005년 실시한 장애인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재가장애인 약 210만 명 중 35.4%에 해당하는 74만여 명은 일상생활에서 남의 도움이 필요한 실정이다.

특히 이들 중에서도 일상생활 대부분에서 남의 도움을 필요로 하거나 거의 모든 일에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경우는 약 35만 명이다. 하지만 이들 중 현재 남의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은 86.7%, 나머지 13.3%에 해당하는 14만5천여 명은 아무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집안에 방치되어 있는 상황이다.

도움을 받고 있는 경우에도 도움 제공자의 약 93%가 가족인 것으로 나타나 장애에 대한 가족의 부담이 매우 높은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단적으로 소득활동에 있어, 장애인을 돌봄으로 인해 소득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응답한 경우가 27.6%로 나타났다. 이중 간 장애인을 돌보는 67.4%가,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56.2%가 ‘돌봄 활동으로 인해 소득활동에 지장이 있다’고 응답했다.

중증장애인들이 삭발까지 감행하며 활동보조 제도화를 요구하는 이유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는 바로 자신의 생존과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에이블뉴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