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제정운동본부가 지난해 9월 조례안을 청구하면서 가진 기자회견 모습. <사진제공 우리이웃장애인자립생활센터>

‘중증장애인의 명확한 법적 개념은 존재하는 것인가,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

‘광주시자립생활조례안은 주민 의사에 반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광주시민 2만6천여명이 전국 최초로 발의한 광주광역시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안을 광주시가 자진 철회할 것을 요청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중 가장 핵심이 되는 논란은 과연 중증장애인의 법적 개념이 존재하는지 여부와 주민들의 의사가 조례에 제대로 반영돼 있는지 여부이다.

현재 광주시는 광주광역시중증장애인자립생활지원조례제정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취지로 연서를 받아놓고, 막판에 중증장애인에서 장애인으로 범위를 확대한 것은 주민의사를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본부측은 “중증장애인의 명확한 법적 개념이 존재하지 않아 수정을 하게 된 것”이라며 “조례의 제명에서 명확하게 ‘중증장애인’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조례내용에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살려냈다”고 맞서고 있다.

지침과 법도 구별 못하는 광주시

이날 광주시가 중증장애인의 명확한 법적개념이 존재한다며 제시한 근거는 ‘2005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사업안내지침 31쪽’과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제4조’이다.

먼저 복지부 지침에 따르면 중증장애인은 ‘장애등급이 1급 또는 2급인 자’와 ‘3급 정신지체 또는 발달장애인(자폐)’으로서 다른 장애가 중복된 자’를 지칭한다. 이에 대해 운동본부측은 “지침과 법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침상의 중증장애인 기준은 단지 장애수당 지급대상을 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증장애인

-장애등급이 1급 또는 2급인자,

-3급 정신지체 또는 발달장애인(자폐)으로서 다른 장애가 중복된 자.(2005년도 보건복지부 장애인복지사업안내지침 31쪽)

중증장애인의 법적 개념으로 복지부 지침을 제시한 광주시측 보도자료. <에이블뉴스>

운동본부는 “보건복지부의 ‘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 추진계획’에서도 자립생활 지원대상을 명시하면서, ‘중증장애’에 대한 개념적 정의 없이, 대상을 임의로 1~2급 장애인으로 한정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장애인복지법 제29조에 의해 등록된 중증장애인중 1급 및 2급 장애인을 원칙으로 하되,

-지체장애인, 뇌병변(뇌성마비)장애인, 근이양증(근육병) 장애인 등 활동보조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인정된 장애인(일상생활 및 신변처리 곤란 장애인 등 포함)을 우선지원 함.(중증장애인 자립생활(IL)센터 시범사업 추진계획 장애기준)

하지만 현행 장애인복지법에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는 존재한다. 중증장애인의 보호와 관련한 제6조에서 딱 1번 사용되고 있는 것. 그렇지만 이 역시 자립생활 조례안이 차용할 수 있는 중증장애인의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는다.

제6조 (중증장애인의 보호)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의 정도가 심하여 자립하기가 현저하게 곤란한 장애인에 대하여 평생 필요한 보호등을 행하도록 적절한 시책을 강구하여야 한다.(장애인복지법)

고용촉진법 기준을 차용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광주시가 제시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제4조에는 중증장애인의 기준이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법에서는 중증장애인의 기준을 명확히 정하고 있다.

제4조 (중증장애인의 기준) 법 제2조제2호의 규정에 의한 중증장애인은 다음 각호의 1에 해당하는 자로 한다.

1.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장애인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중 노동부령이 정하는 장애등급 이상의 장애등급에 해당하는 자

2. 장애인복지법시행령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장애인기준에 해당하는 장애인중 제1호의 규정에 의한 장애등급보다 1단계 낮은 장애등급에 해당하는 자로서 뇌병변장애인·시각장애인·정신지체인·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심장장애인 및 상지에 장애가 있는 지체장애인

3. 국가유공자등예우및지원에관한법률시행령 제14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자중 3급 이상의 상이등급에 해당하는 자(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

하지만 문제는 자립생활과 관련한 조례안에서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시행령에서 정하고 있는 중증장애인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운동본부측은 "장애인고용촉진과 직업재활 사업을 위해 정해놓은 중증장애인의 기준을 자립생활과 관련한 지원에서 적용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렇듯 명확한 법적 개념이 없어 장애인으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증장애인 용어 사용 조례 전무

광주시를 비롯해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조례 명칭에 사용하고 있는 지자체는 한 곳도 없다. 지방행정정보은행 사이트 검색 결과. <에이블뉴스>

그렇다면 지자체 조례 명칭에서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사례는 있을까? 지자체 조례를 총망라해놓은 지방행정정보은행 사이트(www.laib.go.kr)에서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를 검색한 결과,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가 들어간 조례 명칭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광주시의 장애인관련 조례 7개도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아닌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무엇이 진정한 주민들의 의사인가

결국 운동본부측이 조례 명칭에서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대신 ‘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조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해 운동본부는 조례안에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기본원칙과 그에 상응하는 적절한 자립생활지원서비스 등도 포괄적으로 담아냈다.

특히 운동본부측은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해 서명한 주민들의 의사에 반하지 않기 위해 ‘일상생활이 곤란한 1급 및 2급 등록장애인 중 기초생활 수급권자 및 차상위계층’을 우선지원 대상으로 명시했다.

제7조 (우선 지원 대상) 시장은 제5조 규정에 의한 자립생활 신청 장애인에 대해 일상생활이 곤란한 1급 및 2급 등록 장애인 중 기초생활 수급권자 및 차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자를 우선 지원해야 한다.(광주광역시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조례안)

운동본부 한 관계자는 “조례안의 명칭에 중증장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광주시는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았을 것”이라며 “조례안 철회를 요청하는 것은 결국 돈이 드는 장애인사업을 하지 않겠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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