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간다.”

최근 낙마한 한 공직 후보자가 인용해서 화제가 된 말이다. 원래는 마오쩌둥 어록에 있는 말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사람이 막을 수 없고 홀어머니가 재가하는 것을 어린 자식이 막을 수 없듯“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을 뜻하는 표현이다.

오래 전 모 사이트에, 장애 극복과 관련된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자신을 사회복지시설에 근무하는 직장인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이 독자의견란에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집안에서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것은, 원래 그 일을 하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비장애인들이 그렇듯 장애인들 역시 여러번의 실수를 통해 하나씩 배워 나가는 것인데, 참 안타깝다.”

이를테면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어머니가 있다. 다른 아이들은 걱정이 되지 않는데 유독 몸이 건강하지 못한 아들에게 마음이 쓰인다. 이럴 때 어머니의 가슴에서는 눈물이 비가 되어 흐른다.

비장애인 또래들과 비교해 보면 아직도 아기 같은 자식을 두고 떠나려니 눈을 못 감을 것 같지만, 이제 주어진 시간은 몇 개월 남지 않았다. 형제들에게 몸이 불편한 아들을 부탁하자니 마음이 안 놓이고,“나 죽을때 함께 죽자”고 말할수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다른 상황, 사귀는 사람과의 결혼을 앞둔 오빠가 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불편한 여동생 문제로 예비 신부와 신경이 곤두서 있다. 지금은 부모님이 계시지만, 훗날 모두 저 세상으로 가시게 되면, 오빠의 여동생은 우리와 같이 살아야 하느냐고 묻고, 처가에서는 우리 딸에게 더 부담을 지우는 것이 아니냐고 눈치를 준다.

그야말로 집안에는 천둥 번개가 치기 직전과 같은 긴장감이 감돈다. 과연 이 오빠에게 장애를 가진 여동생은 무거운 짐이어야 할까? 아니면“ 너 때문에 내 앞길이 막힐수 있으니 우리 인연을 끊고 살자, 생활비는 보태 주겠다”고 말하면 될까?

앞서 말한 두 가지 상황에서 공통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비가 오면 배수 시설을 만들고 방수포를 깔아 비가 운동장에 최대한 덜 스며들게 하듯이, 장애 유무에 관계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늘려 나가는 것이다. 그날의 날씨에 따라 입고 나갈 옷을 스스로 맞춰보거나 빨래하기, 등등 최소한의 자립생활에 필요한 방법들을 하나하나 알려주는 것이다.

간혹 “너 나이가 몇인데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하니”라는 말을 식구들로부터 듣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간단한 것도”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렸을 때부터 “이건 이렇게 하면 된다”는 방법 대신, “이건 엄마가 해 줄게”라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산 이들이 대부분이라 믿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는데, 간단한 것이라도 쉽게 할 리가 없는 것이다. 처음으로 시댁에서 명절을 보내게 된 새댁이, 전 하나도 제대로 부치지 못한다고 해서 “그나이 먹도록 뭐했니”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을 낳고,“내가 죄가 많아서 네가 이렇게 태어났다”고 말하며, 온갖 편견과 조롱, 냉소적 시선들을 이기고 자식을 키워 낸 부모들이, 자식의 자립을 위해 기초부터 하나하나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면 그 역할은 누가 해야 할까?

부모의 역할을 대신 하거나, 그 이상의 일을 하는 이들이 간혹 미디어를 통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천사”라고 부른다. 그만큼 어려운 일을 묵묵히 한다는 것에 대한 말 없는 인정인 셈이다.

굳이 천사가 아니어도 이 세상 모든 부모들은 이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식이 성인으로써 형제를 포함한 다른 사람에게 짐이 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은, 아들, 딸을 위해 매일 병원에 다녀야 하는 것처럼 힘들지도 않고, 돈이 많이 들지도 않는다. 다만 “내 아이가 이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만 걷어내면 된다.

모 프로야구팀의 코치는“강팀과 약팀, 잘하는 선수와 경험이 부족한 선수의 차이는 상대보다 얼마나 잘 하느냐가 아니”라고 했다. 관건은“얼마나 상대를 어렵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라고 말했다.

내리는 비를 사람의 힘으로 막으려 하지 않는 것,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것. 인생에서나 야구에서나 마찬가지로 통용되는 원리다.

*이 글은 현재 경기도 광명시에서 살고 있는 독자인 정현석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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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칼럼니스트 집에서만 살다가 43년 만에 독립된 공간을 얻었다. 새콤달콤한 이야기보다 자취방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겪었던 갈등들과 그것들이 해결되는 과정이 주로 담으려 한다. 따지고 보면 자취를 결심하기 전까지 나는 두려웠고, 가족들은 걱정이었으며, 독립 후에도 그러한 걱정들은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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