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진행된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0주년 토론회에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이 장애인 피해자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들이 제기됐다. ⓒ에이블뉴스

장애인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기 위해 개정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이 장애인 피해자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못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됐다.

한국성폭력상담소 허복옥 활동가는 28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한국성폭력상담소 개소 20주년 토론회에서 "장애를 항거불능의 원인으로 인정하는 문구가 삭제되고 '폭행, 협박으로 강간 등을 하거나 심신상실이나 항거불능의 상태에서 준강간 등을 하는 경우'로 규정되면서 오히려 장애의 특수성으로 인해 저항하지 못하는 경우를 인정하기 어렵게 됐다"고 주장했다.

최근 법무부는 정부입법으로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의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 '항거불능' 규정을 폐지한 개정안을 마련, 공포했다.

성폭력범죄처벌특례법 개정의 주요 내용은 기존 특례법 6조의 ‘항거불능’ 조문 삭제와 장애인성폭력 유사성교행위 인정, 위계위력에 의한 성폭력 처벌강화 및 시설 내 성폭력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6조 1항은 범죄피해자 집단으로 장애인만을 별도로 상정한 채 형법 상 강간죄(297조)를 그대로 도입했으며, ‘항거불능’ 조문을 삭제했다. 6조 5항에는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 중 기존 형법 심신미약자간음죄(302조)에 해당하는 범죄행위수단인 ‘위계 및 위력’을 도입했다.

허 활동가는 발제문을 통해 "여성계는 성폭력특례법의 '항거불능 '문구를 삭제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다각도로 검토 중이었고 논의 핵심은 어떻게 하면 장애여성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성폭력 피해가 적극적으로 인정되도록 할 것인가 였다"며 "그런데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가해자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해지자 국회는 개정 방향에 대한 시민사회 의견수렴도 거치지 않은 채 이 조항을 개정했다"고 비판했다.

허 활동가는 "장애인 성폭력에 대해 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유사강간 등 그 유형을 세분화하고 친고죄를 폐지했으며, 형량도 전반적으로 상향되는 등 개정의 긍정적인 측면을 전적으로 부정하긴 어렵다"며 "하지만 더욱이 강화된 형량 때문에 사법부에서는 범죄 구성요건을 더 까다롭게 판단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졌다"고 꼬집었다.

이어 허 활동가는 "왜 '도가니'에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졌고 어떻게 하면 그 상황을 개선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성폭력 피해 현실에 기반해 찾기보단 여론 추수적인 대응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국회가 의도한 바와 다르게 환영받지 못하는 조항을 탄생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허 활동가는 "아동성폭력이 벌어지면 아동생존자 대책, 장애인성폭력이 벌어지면 장애인생존자 대책에 집중하며 근시안적 대책만 쏟아내는 국가에 대해 성폭력 근절의지가 있는지 의심될 수밖에 없다"며 "친고죄와 공소시효 폐지를 일반 강간의 경우에도 확장하고,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을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인천지검 부천지청 박은정 수석검사도 "그 구성 요건상 '폭행, 협박, 위계 또는 위력이 있을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장애인 성폭력을 인정할 여지가 매우 협소해졌다는 점이 문제"라며 "여성계에서 우려하는 바와 같이 형량 강화로 오히려 장애인 강간 등의 판단에 더 소극적이 될 것이라고 하는데 형량강화가 문제가 아니라, 기존에 없던 폭행, 협박 등을 전제로 할 것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장애인 성폭력이 매우 다른 국면을 맞게 되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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