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사고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22분마다 1명꼴로 사망자 및 장애인이 생겨나고 있다. <사진=사진작가 이시우>

[해설]지뢰피해 장애인 실태와 정부 입장

대인지뢰의 제거 및 지뢰피해자들의 피해보상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는 이에 대한 첫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공청회의 방청객은 약 50여명 정도로 매우 적었으며 그나마 약 30여명의 지뢰피해자들을 제외하고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지뢰피해자들은 사망을 하거나 절단, 화상, 실명 등의 상처로 장애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그들에 대한 관심이 매우 적은 실정이다. 공청회에서 드러났듯이 말이다. 이날 공청회에서 공개된 자료를 중심으로 음지에서 고통당하고 있는 국내 지뢰피해자의 실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점검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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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분마다 1명씩 지뢰피해…국내 민간인만 2천여명

대인지뢰 피해자는 매년 전 세계적으로 2만6천여명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1월 4일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전세계 64개국에 모두 1억 1천만개 이상의 대인 지뢰가 매설돼 있으며 매월 2,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거나 장애인이 되고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22분마다 1명꼴로 지뢰피해자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국방부도 통계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 정확한 수를 파악하기가 힘드나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자체 조사에 의하면 민간인 지뢰피해자는 2,0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군인피해자는 두 배 이상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주요 피해지역의 피해자 숫자는 지난 2000년 현재 인천시 백령도 7명, 강원도 철원읍 40~50명, 대마리 29명, 생장리 21명, 마현리 20명,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과 신서면 21명, 연천구 대광리 50명, 노곡리 16명, 파주시 금파리 8명, 장파리 5명,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55명(현리에만 24명) 등으로 조사됐다.

전 국토가 지뢰지대…늘어가는 피해자

심각한 점은 지뢰피해자들이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뢰피해자들은 사망을 하거나 절단, 화상, 실명 등으로 모두 장애인이 되고 만다.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조재국 집행위원장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1년에는 8월 12일 경기도 화성시 고포4리 어도 해변에서 가족과 함께 피서를 즐기던 차철호(40·서울 은평구 신사동)씨가 지뢰를 밟아 왼쪽 발목을 절단하는 사고를 당했고, 다음날에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이길리 한탄강변에서 문정헌씨(30)가 포크레인으로 골재채취 작업 중 대전차지뢰를 밟아 부상을 입었다.

2002년에도 10월말까지 14명이나 지뢰사고를 당해 2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을 입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4월 9일에 파주 장단면 거곡리 민통지역 야산에서 이경숙(39·안양시)씨 등 6명이 폭발물 사고로 인해 중경상을 입었다. 17일에는 파주 월롱면 영태리 고모씨가 트랙터로 논갈이를 하던 중에 K441 지뢰가 터져 화상을 입었다.

또한 22일에는 철원 김화읍 유곡리 민통선 내 야산에서 이은용(58)씨가 지뢰지대에서 숨진채 3일만에 발견됐고,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지뢰지대에 들어간 정범모(36) 소령과 강종배 병장, 이경재 병장 등 군인 3명이 지뢰를 밟아 부상을 당했다.

▲ 공청회에 참석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이미 늙어버린 지뢰피해자들의 모습. <에이블뉴스>

6월 12일에는 강원도 인제군 육군부대에서 양보중사(29)가 지뢰사고로 숨졌다. 17일 12시 40분경에는 연천 군남면 남개리 임진강둑에서 정소이(33)씨가 뽕나무 열매를 따는 중에 지뢰를 밟아 왼쪽 다리를 절단하는 중상을 입었고, 오후 4시 25분경에는 양구 해안면 만대리에서 이영준(42) 씨가 트랙터를 운전하던 중 지뢰가 터져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중상을 입었다.

또한 2003년 4월 28일 연천 천덕산에서 김정희(64)씨가 크래모아로 추정되는 지뢰사고를 당해 3일만에 시신이 수습됐고, 5월 2일에는 박정인(68)씨가 노곡리 미확인지뢰지대에서 M14 대인지뢰를 밟아서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말았다.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하는 것은 대인지뢰가 매설된 곳이 비무장지대와 민통선에 그치고 있지 않고 전 국토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2001년도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후방지역 지뢰지대 실태조사 결과에 의하면 후방 36개 지역에 약 6만5000여 발의 대인지뢰가 매설돼 있으며 그 관리실태가 매우 취약해 지뢰유실의 가능성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후방지역의 지뢰지대 중에서 특히 민간인의 피해에 노출돼 있는 위험지역으로는 부산 영도구 중리산, 부산 해운대 장산, 경기도 남한산성 검단산, 경기도 파주시 개명산 및 고령산, 경기도 파주시 노고산, 경기도 화성시 무송리, 경기도 평택시 고등산, 경기도 김포시 장릉산, 경기도 가평군 화악산, 전북 김제시 황산동, 경남 양산시 원효산, 경남 하동군 금오산 및 용산, 강원도 평창군 황병산 등이다.

지뢰피해자 한명도 없다?…못 말리는 정부

▲ 늦게나마 지뢰 제거와 피해자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공청회에서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 이시우 실태조사위원이 이 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이렇게 수많은 지뢰지대가 전 국토에 퍼져있고, 지뢰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우리나라에는 지뢰피해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지난 1997년 9월 1일 ‘대인지뢰의 사용, 비축, 제도, 이전의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 초안이 채택된 노르웨이 오슬로 국제회의에 참가했던 당시 한국측 수석대표는 “한국에는 대인지뢰로 인한 어떤 희생자도 존재하지 않으며 115마일 비무장지대를 제외한 그 어떤 지역에도 대인지뢰를 매설해 놓지 않고 있다”고 거짓사실을 발표한 바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정부는 캄보디아, 이디오피아, 과테말라, 니카라구아 등 지뢰제거와 피해자 구원을 위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총 11억원을 자발적 유엔신탁기금의 명목으로 제공해 왔다. 반면 2000년 11월 3일 국감자료에 의하면 민간인 지뢰피해자의 국가배상은 11건 36명에 불과하며 액수도 일인당 770만원으로 치료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2일 공청회에 참석한 국방부 손석현 중령은 애초 발언이 계획돼 있지 않았으나 사회자의 강권으로 잠시 국방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몇 마디를 꺼냈다. 손 중령은 “저는 관련 분야의 정책 파트를 담당하고 있어 업무적인 측면에서 나왔다”며 “공식적으로 어떻게 하겠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고 모든 사항이 부끄럽고 송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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