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포셔 교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우리나라 참가단. 통역사가 교장의 인사말을 전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지난 12월 13일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유엔총회를 통과하던 날, 우리나라 참가단은 맨해튼의 한 중식집에서 자축 파티를 열었다. 한국농아인협회 변승일 회장의 지인인 청각장애인 로라 프랭크(Laura Frank)씨가 이날 파티에 초대됐고, 이날 파티의 화제는 수화(sign language)가 됐다.

변 회장은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 수화가 언어라는 조항이 포함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없어서 너무 아쉬웠다”며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서 수화가 언어로 인정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국DPI 이익섭 회장은 수화를 언어로 인정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변 회장을 위로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참가단은 로라 프랭크(Laura Frank)씨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수화학교를 직접 방문해보기로 결정했다.

이 학교는 뉴욕 맨해튼의 동쪽 23번가에 위치하고 있는데, 영문 이름이 ‘47’ The American Sign Language and English Secondary School. 우리나라 말로 굳이 옮기자면 ‘제47 미국 수화·영어 중·고등학교’라고 부르면 될 듯하다.

로라 프랭크씨는 미국으로 입양된 청각장애인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현재 이 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고 있다. 학생들이 이 학교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상담을 통해 지원해주는 것이 로라 프랭크씨의 주요 업무이다.

지난 15일 우리나라 참가단은 이 학교에 방문해 로라 프랭크(Laura Frank)씨의 안내를 받으며 마틴 포셔 교장과 인사를 나누고 학교를 둘러봤는데, 1908년 설립된 학교라서 그런지 건물과 시설이 매우 낡았다.

이 학교는 애초 청각장애인 전문학교로 설립됐지만, 현재는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이 함께 배우는 통합학교가 됐다. 청각장애인 학생과 비청각장애인 학생의 비율은 6대4, 7대3 정도로 7년 전부터 청각장애인 학생이 줄고 있는 추세다.

욜라 워커(Yola Walker) 교감실에서 장시간 동안 문답이 오고갔다. <에이블뉴스>

“우리 학교에서 2가지 언어로 의사소통이 이뤄지고 있다. 청각장애인 학생에게 수화가 모국어이고, 영어는 제2외국어가 된다. 반대로 비청각장애인 학생에게 영어는 모국어이고, 수화는 제2외국어가 되는 셈이다.” 로라 프랭크(Laura Frank)씨의 소개로 만난 욜라 워커(Yola Walker) 교감의 설명이다.

“미국에서도 오랫동안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분리교육이 진행된 것이 사실이다. 분리 교육이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면 보다 친밀감이 있다는 것이다. 수화가 중심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말할 수 있다.

반면 통합교육은 자신의 언어뿐만 아니라 다른 언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학교 안에서뿐만 아니라 학교 밖에서도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한다. 우리 학교에서 통합교육은 진화하고 있는 중이지, 완성됐다고 말할 수 없다.

최근에 들어서 수화는 언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언론을 통해서도 수화가 제공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수화를 언어로 인정받기 위한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중이다.”

통합교육을 위해 전진하는 이 학교의 학생들은 두 가지 측면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 구분할 것 없이 수학, 과학, 보건의료, 예술 등의 배우게 되는데, 청각장애인 학생들은 특히 직업훈련에 초점을 맞춘 커리큘럼을 배우게 된다.

이 학교의 교사들은 대부분 교육부 등에서 발급하는 미국식 수화(The American Sign Language) 자격증을 가진 교사들이나 모든 교사들이 자격증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언어가 뛰어난 교사보다 장애 감수성을 가진 교사들을 더 선호한다는 것이 욜라 워커(Yola Walker)씨의 설명이다.

욜라 워커(Yola Walker) 교감과 로라 프랭크(Laura Frank)씨. <에이블뉴스>

대부분의 수업시간에는 두 명의 교사가 수업을 한다. 한 교사는 수화에 능통한 교사이고, 한 교사는 해당 과목에 능통한 교사이다. 이래야 모든 학생이 수업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청각장애인 위주 과목에는 수화에 능통한 교사만 참여한다고 한다.

“미국 정부에서 수화 자격증을 가진 교사만을 채용하라는 정책이 있지는 않다. 최근 미국 정부는 'No child behind'(뒤처지는 아이들은 한 명도 없어야한다)라는 정책을 펴고 있는데, 언어를 강조하기 보다는 교육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청각장애인 학생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수화를 당연히 잘 해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미국 초·중·고등학교에 청각장애인 교사들이 많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미국 장애인법(ADA)에 따르면 장애를 가진 사람이 교사직에 지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차별이다.”

수화냐, 구어냐는 논란에 대해서도 욜라 워커(Yola Walker)씨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았다.

“어느 것이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며 비교적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그녀는 “제1의 언어에 기반을 두고 제2의 언어를 배우는 것이 기본이다.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들에게는 단순히 구화로 말을 하는 것보다 여러 가지 동작을 사용하는 수화로 이야기하는 것이 빠르다”며 사실상 수화의 손을 들어줬다.

문화예술 교육에 대해서는 “문화예술 교육은 주로 컴퓨터를 통해 이뤄지고 있다. 만들기 수업도 진행된다. 이 과목에서는 청각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받게 된다. 문화예술에서 장애 구분없이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과목 선생님들은 솔직히 모두 수화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비청각장애인들이 들어오면서 음악 수업도 개설했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참가단은 장거리 의사소통(텔레커뮤니케이션)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증을 쏟아냈다. 우리 참가단측에서 “우리나라가 IT분야에서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텔레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배워도 좋을 것 같다”는 농담도 나왔지만, 역시 미국이 한 수위였다.

이 학교 1층에는 모든 학생들과 교사들이 이용할 수 있는 영상전화기가 마련돼 있었다. 영상 화면이 우리나라에서 보급되는 영상전화기처럼 작지 않고 TV화면처럼 매우 크다는 점이 특징이었다. 청각장애인이 통화하기 원하는 사람에게 전화를 하면 중개자가 수화를 통해 상대방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이 학교에서 이 전화기를 비롯한 학생들의 커리큘럼을 짜는 사람은 바로 청각장애인 통역사(농통역사)였다.

로라 프랭크씨가 화상 공중전화기를 이용하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에이블뉴스>

마틴 포셔 교장과 우리나라 참가단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수화와 관련한 조항 총정리

Article 9 Accessibility

제9조 접근성

2. States Parties shall also take appropriate measures to:

2. 당사국 정부는 다음을 위해 적합한 조치를 또한 취해야 한다:

(e) Provide forms of live assistance and intermediaries, including guides, readers and professional sign language interpreters, to facilitate accessibility to buildings and other facilities open to the public;

(e) 건물 및 기타 공공 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안내, 낭독자 및 전문 수화 통역사를 비롯한 동물 및 인간 지원(live assistance: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가 제공하는 지원)을 제공

Article 21 Freedom of expression and opinion, and access to information

제21조 의사 표현의 자유 및 정보 접근성

States Parties shall take all appropriate measures to ensure that persons with disabilities can exercise the right to freedom of expression and opinion, including the freedom to seek, receive and impart information and ideas on an equal basis with others and through all forms of communication of their choice, as defined in article 2 of the present Convention, including by:

당사국 정부는 장애인이 수화, 점자 및 대안적이고 대체적인 의사 소통 수단 및 자신이 선택한 모든 기타 접근 가능한 의사 소통의 수단과 형식, 형태를 통해, 타인과 동등하게 정보 및 아이디어를 추구하고, 수집하며, 배포할 자유를 비롯한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보장하기 위해 모든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점들이 포함된다.

(b) Accepting and facilitating the use of sign languages, Braille,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and all other accessible means, modes and formats of communication of their choice by persons with disabilities in official interactions;

(b) 공적 의사 소통시(official interactions), 수화, 점자, 대안적이고 대체적인 의사 소통, 그 밖에 장애인이 선택한 기타 접근 가능한 의사 소통의 모든 수단, 형태 및 형식의 사용을 수용하고 촉진;

(e) Recognizing and promoting the use of sign languages.

(e) 수화 사용을 인지하고 이를 증진

Article 24 Education

제24조 교육

3. States Parties shall enable persons with disabilities to learn life and social development skills to facilitate their full and equal participation in education and as members of the community. To this end, States Parties shall take appropriate measures, including:

3. 장애인의 교육에 대한 완전하고 동등한 참여를 촉진하기 위해, 당사국 정부는 지역 사회 구성원인 장애인이 생활 기술과 사회 개발 기술을 학습할 수 있도록 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당사국 정부는 다음을 포함한 적합한 조치를 취한다:

(b) Facilitating the learning of sign language and the promotion of the linguistic identity of the deaf community;

(b) 수화 학습 촉진 및 청각 장애인 공동체의 언어 정체성 증진

4. In order to help ensure the realization of this right, States Parties shall take appropriate measures to employ teachers, including teachers with disabilities, who are qualified in sign language and/or Braille, and to train professionals and staff who work at all levels of education.

4. 이러한 권리 실현 보장을 돕기 위해서, 당사국 정부는 장애인 교사(장애가 있는 교사)를 비롯해서 교사를 고용할 때, 수화 및 점자에 능숙한 교사를 고용하고, 교육 관련 모든 분야의 전문직 및 종사자를 훈련하기 위한 적합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Article 30 Participation in cultural life, recreation, leisure and sport

제30조 문화적 삶과 레크리에이션, 레저와 스포츠에의 참여

4. Persons with disabilities shall be entitled, on an equal basis with others, to recognition and support of their specific cultural and linguistic identity, including sign languages and deaf culture.

4.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수화 및 청각 장애인 문화를 비롯한 자신의 특정한 문화적, 언어적 정체성을 인지 받고 지원 받을 자격이 있다.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