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경기도 시흥시청 앞에서 시흥시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장애인 부모들.ⓒ에이블뉴스

경기 시흥시에 사는 장애인 부모들이 특수학교 설립을 위해 애끓는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인구 50만명의 시흥시에는 800여명의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있지만, 특수학교는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미루지 말아요. 특수학교 설립!’, 장애학생들도 마음 편히 학교 다니고 싶다‘, 특수학교 소외지역 시흥시는 각성하라!’ 23일 오전 뜨거운 햇볕 아래, 시흥시청 정문과 후문에서 시흥시 특수학교 설립 추진위원회(이하 추진위) 소속 30여명의 장애인 부모들이 마스크를 쓴 채 색색의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이들은 다른 지역 특수학교로 1시간 이상 통학하는 자녀들의 교육권을 보장해달라며, 시청, 교육청, 그리고 시흥시민에게 호소했습니다. “장애는 차별이 아닌 차이입니다. 다르다는 이유로 왜 우리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은 이리도 험난하기만 할까요.”

지난해 12월 경기지역 특수학교 2곳 개교 소식을 알린 경기도교육청 보도자료.ⓒ경기도교육청

■시흥 특수학교 0곳, 설립 계획 ‘지지부진’

23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경기지역 특수학교는 올해 개교한 용인다움학교와 의왕정음학교를 포함해 총 38개로, 시흥시에는 특수학교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인근 지역 특수교육지원 현황 비교.ⓒ시흥시특수학교설립추진위원회

특수학교가 있는 안양시와 시흥시를 비교하면, 총인구는 52여만명으로 동일하지만, 특수교육대상자는 오히려 시흥시가 781명으로 안양시(654명) 보다 127명이 많습니다. 특수학교가 없는 시흥시의 경우 순회학급 특수교육대상자가 30명(전체 4%)으로 안양 14명(1.9%)보다 월등히 많은 현실입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 또한 시흥시의 특수학교 설립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지만, 부지가 없어 설립이 지지부진해지고 있음을 설명했습니다.

그는 “중장기계획에 시흥과 광명 합쳐서 총 40학급 규모의 특수학교 설립을 담고 있지만, 부지가 없어서 진행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면서 “지자체에 공문 등으로 요청했지만 잘 안 됐다. 지자체의 부지 추천이 잘 안 되면 폐교를 활용해서라도 설립하려고는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다 보니, 시흥시에 사는 장애학생들은 일반학교 특수학급에 진학하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타지역 특수학교를 위해 1시간 이상의 원거리 통학을 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이마저도 해당 지역 학생들이 우선 배치된 후, 남는 자리가 있어야만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시흥시지부 대표이자, 추진위 박희량 공동대표는 “특수학교를 추진했지만 계속 미뤄졌다”면서 “특수학급을 다니기 힘든 중증장애 학생의 경우 부천, 안산 등 타지역으로 진학하고 있다. 인천으로 가야 할 경우는 아예 이사까지 가야 하는 실정”이라고 토로했습니다.

23일 경기도 시흥시청 앞에서 시흥시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장애인 부모들.ⓒ에이블뉴스

■“설립 무산 억장 무너져”, “갈 곳 없어 막막”

올해 17살이 된 중증중복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학부모 조지연 씨는 경기도로 출퇴근하는 남편이 아이와 함께 보낼 시간이 줄자, 서울에서 시흥으로 이사했습니다.

중증중복장애인에게 특수학교의 유무는 매우 중요했지만, 2016년경 특수학교가 설립된다는 시흥시의 보도자료를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사한 후, 시에서는 너무 간단히 ‘무산됐다’는 대답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이가, 또 그 후배가 진학할 수 있는 특수학교 설립이 꼭 이뤄져야 한다며, 어려운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저희로서는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서울로 이사를 가야 하나. 특수학교 자체가 없다는 것은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주지 않고, 그 아이들의 교육을 버리는 것입니다.”

‘특수학교 기다리다 스무살 넘었다. 동생들은 또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 현수막을 든 부모들.ⓒ에이블뉴스

올해 11살인 자폐성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 윤선영 씨는 당장 3년 뒤 중학교에 진학할 아이 생각에 막막합니다.

그의 자녀는 일반학교 특수학급을 다녔지만, 아이가 적응을 못 해 문제아로 낙인이 찍혔습니다. 전일제로 지원하는 복합형 특수학급으로 전학하며 아이도 학교생활을 즐거워하지만, 중학교 이후에는 복합형 특수학급이 없어 갈 곳이 없습니다.

학교 선생님은 ‘특수학교 가지, 왜 여기 왔냐’고도 했습니다. ‘특수학교가 없다’고 했더니, ‘부천에도 있고, 인천에도 있다’는 황당한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이 말도 덧붙였다고 합니다. ‘엄마니까 해야죠’. 선영 씨는 “내가 아이를 잘 못 키우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면서도 특수학교 설립은 아이들의 교육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의무교육 아닌가요? 비장애인 아이들과 섞여서 수업이 안되는 중증 아이들은 갈 곳이 없어요. 매일매일 타지역으로 어떻게 등하교하라는 것인가요?”

23일 경기도 시흥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에이블뉴스

■추진위 투쟁 시작, “강서 무릎 사건 재현 없도록”

“시흥의 장애학생 단 한 명도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즉각 특수학교를 설립하라!”

결국 장애인을 키우는 부모들이 색색의 현수막을 들고, 외치는 방법뿐입니다. 4년 전 서울 강서구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던 주민들 앞에서 무릎을 꿇던 일이 반복되지 않길,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통합사회를 위해 아이들의 ‘학교 가는 길’을 만들어달라는 호소입니다.

지난 3월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시흥시지부 중심으로 구성된 추진위는 23일 시흥시청 브리핑룸에서 출범을 알리고,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투쟁을 지속할 예정입니다.

“학령기가 시작되면서 우리지역 장애 학생들과 부모들에게 특수학교에 갈 선택권은 한 번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다른 선택으로 인근 도시에 있는 특수학교를 지망하는 학생도 있지만, 배치 후에도 1시간 이상의 원거리 통학을 감수하고 남보다 일찍 통학 길에 오릅니다. 어느 집 아이는 잠도 덜 깨고, 어느 집은 휠체어나 보조기까지 챙겨서 새벽에 학교 가는 길을 나섭니다.”(시흥시 특수학교 설립 촉구를 위한 호소문 中)

23일 경기도 시흥시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는 모습. 추진위 박희량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추진위는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서명운동을 시작한 상태며, 오는 28일부터는 1인시위, 시흥시장과의 면담, 교육청 면담 등을 진행하며 집단행동을 이어간다는 계획입니다. 시흥시청에 집단민원도 접수했습니다.

추진위는 “시흥시에 거주하는 특수교육대상 장애학생들이 원활히 통학하며 교육받을 수 있도록 철저한 조사 연구를 통해 적합한 교육 부지를 선정해 특수학교 설립이 추진될 수 있길 희망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기자회견장을 들린 임병택 시흥시장은 “다음주에 뵙고, 말씀드리도록 하겠다”고 전했습니다. 장애인 부모들은 더 이상 ‘마음 이해합니다. 설립해야죠.’ 라는 희망고문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가장 어려운 것이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장애인 부모는 “믿음, 희망, 기대만 주고, 그 다음이 없는 것이다. 아이들이 갈 곳 없이 그대로 졸업해야 한다는 현실”이라고 답했습니다.

“욕을 하시면 욕을 다 들을 것이고, 때리시면 다 맞겠습니다. 그런데 특수학교만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4년 전 강서구 특수학교 무릎 호소 사건이 재현되지 않도록 시흥 장애학생들의 ‘학교 가는 길’을 만드는 부모들의 외로운 싸움에 도움이 필요합니다.

23일 경기도 시흥시청 앞에서 시흥시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장애인 부모들.ⓒ에이블뉴스

23일 경기도 시흥시청 앞에서 시흥시 특수학교 설립을 촉구하는 장애인 부모들.ⓒ에이블뉴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