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고등법원 전경.ⓒ수원지방법원 홈페이지

구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이 9급 공무원 임용시험 면접과정에서 ’장애인 차별‘로 최종 탈락했다며, 경기 여주시를 상대로 법정 싸움을 다툰 끝에, 2심에서 승소했다.

수원고등법원 제1행정부(부장판사 이광만)는 18일 청각장애인 A씨에 대한 9급 공무원 면접과정에서의 장애인 차별행위를 인정하며, 여주시 등에 불합격처분을 취소할 것과 이에 대한 위자료 500만원 등을 지급하라고 명했다.

속기 지원으로 재판부의 판시 내용을 초조히 지켜보던 A씨와 부모는 눈물을 글썽이며, 기쁨을 표했다.

지난 2월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힘없고 억울한 중증장애인 편견과 차별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호소했던 A씨의 아버지도 재판정을 나와 “감사하다”고 거듭 고개를 숙였고, 변호인단과 법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으며 기쁨을 나눴다.

어릴때부터 주변인들에게 도움과 배려를 많이 받아, 공무원이 돼서 지역사회에 봉사하면서 살고 싶었다던 A씨. 2년간 천당과 지옥을 오갔던 그에게 무슨 일이 있던 걸까?

■“왜 수화를 배우지 않았나” 9급 공무원 면접 ’탈락‘

상대방의 입술을 읽고 입으로 말하는 구어를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장애등급제 폐지 전 2급) A씨(30대, 남)는 지난 2018년 제1회 여주시 지방공무원 공개경쟁임용시험 9급 일반행정 장애인 구분모집에 지원, 필기시험에 합격했다.

A씨는 최종 2명을 선발하는 장애인 구분모집의 유일한 필기시험 합격자로, 면접시험에서 ‘보통’ 등급을 받으면 최종 합격하는 상황이었다.

면접은 노트북, 키보드, 스크린, 문자통역 보조 인력을 지원한 필담 형태로 이뤄졌고, 면접위원 3인은 A씨에게 ‘수화를 배우지 않은 이유’, ‘집, 학교에서의 소통 방법’, ‘SNS를 쓸 줄 모르는 민원인에 대한 응대 방안’, ‘장애로 오해나 갈등이 있었던 경험’ 등 여러 차례 장애 자체에 관한 질문을 했다.

면접위원들은 ‘의사 표현의 정확성과 논리성’ 항목을 모두 ‘하’로 평정했고, 추가 면접시험에서도 모두 동일하게 ‘미흡’등급을 받아 최종 불합격했다.

전체 면접대상자 61명, 추가 면접대상 대상자 3명 중 ‘미흡’ 등급을 받아 탈락한 사람은 A씨가 유일했다.

2020년 2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한국농아인협회,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등이 A씨의 2심 재판을 앞두고, 불합격처분이 시정돼야 함을 촉구했다.ⓒ에이블뉴스DB

■“불합격 취소해달라” 소송, 1심 ‘패소’

A씨는 수원지방법원에 여주시를 상대로 불합격처분의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A씨의 변호인단은 재판과정에서 ▲면접시험에서 편의제공 공고를 하지 않은 점 ▲속기사가 아닌 일반 공무원을 문자통역 전담 요원으로 배치한 점 ▲면접시험 시간 연장 미제공 ▲면접시험 전 면접위원들에게 ‘대화 및 수화 불가능’이라고 장애특성에 대해 부정적으로 안내한 점 등의 절차상의 위법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면접위원들의 장애에 관한 질문들은 직무수행능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의사소통 방식을 문제 삼는 것으로, 장애인 차별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며, 재판부에 시정을 요청했지만 2019년 9월 1심에서 패소했다.

1심 재판부는 “원고가 가진 장애유형의 정도 등을 고려해 정당한 편의를 제공했고, 면접위원들이 한 장애에 관한 질문들은 전체적인 맥락에서 원고가 장애를 극복한 경험이나, 직무에서 요구되는 여건이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관련됐다. 그 내용 자체로 차별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면서 “‘하’를 받은 것인 면접위원들이 장애를 이유로 원고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았거나, 원고의 청각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편의 제공 관련해서도 “원고의 면접시험을 위해 전담보조요원을 배치했고, 노트북과 블루투스 키보드, 대형모니터를 설치하고, 의사소통이 필요한 모든 절차에 도움을 줬다”면서 “면접시험 시간을 충분히 연장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나,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 원고 스스로 제출한 진술서에서도 면접시험을 무난히 치러 당연히 합격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기재됐고, 특별히 시간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2심에서 승소한 청각장애인 A씨와 인터뷰 모습. 노트북 속기를 통해 질문과 답변을 진행했다.ⓒ에이블뉴스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 2심 ‘승소’

A씨는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최현정 변호사 등 9명의 변호인단과 함께 즉각 항소했다. 항소심에서는 면접시험과 추가면접시험의 전담보조요원 2명에 대한 증인신문, A씨에 대한 당사자 신문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항소이유서를 통해 ‘장애에 대한 질문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애인을 장애를 이유로 분리해 불리하게 대우하는 경우로 장애인차별금지법이 금지하는 직접차별이라면서 “수화를 배우지 않은 이유는 사생활이며, 일반행정 업무에 필요한 내용이 아니다. 구두에 의한 의사소통이 필요하다면 근로지원인을 통해 지원받으면 된다”고 설명했다.

또한 면접위원의 질문에 차별적 질문이 하나라도 포함되어 있었다면 면접위원이 질문의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므로, 법원으로서는 해당 면접시험의 결과로 이루어진 불합격처분을 취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노력 끝에 2심 재판부는 A씨의 면접과정에서의 장애인차별을 인정하며, 손을 들어줬다.

2심 재판부는 “여주시인사위원장은 면접시험에서 장애인 응시자에 대한 편의제공 기준 등을 미리 공고하지 않았고, 면접위원들에게 원고의 장애특성을 ’청각장애 2급, 수화 불가능‘으로만 고지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없다는 선입견과 편견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면서 “문자통역방식으로 시험이 진행됐음에도 충분한 시간 연장 및 충분한 속기능력을 갖춘 전담보조요원 배치 등 편의제공을 하지 않았다”면서 장애인복지법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청각장애인 공무원은 근로지원인으로부터 대화, 전화통화 지원 등을 제공받을 수 있다. 면접위원들의 장애 관련 질문은 원고가 수행할 업무와 관련된 사항이라고 할 수 없다”면서 “의사소통 방법과 능력을 묻는 질문은 원고의 장애를 평가요소로 삼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장애 관련 질문을 하고 ’미흡‘ 등급을 부여한 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에서 금지하는 차별행위”라고 판단 내렸다.

■“좋지 않은 선례 남기지 않아 다행”

이 같은 판결에 A씨는 “많은 사람이 도와줘서 감사드린다”면서 “승소해서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 않게 돼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소송대리인인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최현정 변호사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속 정당한 편의 제공을 통해 장애인 응시자가 비장애인과 동일하게 면접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주장인데, 1심 재판부는 그 부분을 너무 경미하게 봤다. ’할 만큼 했다‘는 식”이라면서 “항소심에서 절차상 위법성 판결을 받았단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면접위원들의 편견 섞인 질문은 응시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며, 직무 관련 질문이 줄어들 우려가 있다. 항소심에서 질문 문제점을 인정해준 것에 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재판을 지켜봤던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 김철환 활동가는 “청각장애인이 직업 선택에 있어 확장성을 가질 수 있게 돼서 좋은 선례가 될 것 같다”면서 “판결에 대한 영향력이 곳곳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환영했다.

한편, 2심에서 패소한 여주시는 14일 내에 상고여부를 결정하게 되며, 상고를 하지 않으면 불합격 취소 처분에 따라, 다시 A씨에 대한 면접이 진행된다. 그 후에 최종 합격, 불합격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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