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선영 씨에게 행정도우미는 어떤 의미?

유통회사 홍보실에 근무하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오선영(40)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허리디스크로 인해 장애인등록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디스크로 시작된 척추 질환이 한때 전신마비 증세를 보일 정도로 심각해졌고, 결국 수술과 재활을 거쳐 지난 2008년 6급 장애 판정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나서도 처음에는 혼자서 걷는 것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걸을 수는 있게 됐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드는 것은 오 씨에게 여전히 힘든 일이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시가 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이 아닌 것으로 오해한다. 그런데 지금 31개월 된 아들을 혼자서 키우고 있는데, 가장 힘든 것은 아이가 울어도 아이를 안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아이를 안을 수 없어서 혼자서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지 못한다. 장애여성을 위한 홈헬퍼 서비스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혼자서 아이 키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내 주변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주민센터 한 사회복지사 분의 소개로 지금의 직업에 도전하게 됐다. 그리고 아침에 출근할 때 아이를 어린이집 보낼 수 있도록 주민센터측의 배려로 공익근무요원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런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직장 생활을 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오 씨는 현재 서울시 구로구 구로2동주민센터에서 장애인행정도우미로 일하고 있다. 장애를 입고 나서는 다시 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민센터 사회복지사의 소개로 지난해 1월부터 행정도우미라는 직업을 얻게 됐다. 지난해에는 마포구에서 일했는데, 지난해 말 구로구로 이사 오면서 구로2동주민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물론 월급은 전에 다녔던 직장들보다 2~3배 정도가 적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행정도우미로 일하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자신감을 찾게 됐고, 새로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특히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장애를 입고 나서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했는데, 일을 하고나서는 달라졌다. 물론 처음에는 급여가 너무 작다고 불평불만도 많이 했다. 이걸로 어떻게 살지 막막했는데, 살아보니 살아지더라. 그리고 주민센터에서 장애인 행정을 보조하는 일을 하다 보니 나보다 어려운 사람들의 삶도 보게 됐다. 그러면서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고, 사회복지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래서 지난 3월부터 사이버대학에 등록하고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동안 도움을 받는 사람도 도울 수 있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 말의 의미를 잘 몰랐는데, 이젠 잘 알고 있다. 이제 공부를 시작해서 갈 길이 멀지만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일할 수 있고, 새로운 꿈을 갖게 돼서 너무 행복하다.”

행정도우미 오선영 씨가 구로2동주민센터 자신의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

구로2동주민센터 입구에서 오선영 씨가 사진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일자리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07년 7월부터 장애인행정도우미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행정도우미는 전국 지방자치단체, 관할 보건소, 공공기관 등에 배치돼 지역사회 장애인 및 사회복지 행정 업무 등을 보조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루에 7시간, 주 35시간을 근무하고 월 85만5천원(4대 보험 본인 및 사업주 부담금 포함 금액, 실 급여는 75~79만원으로 개인별로 차이가 있음)의 급여를 받는다. 비록 최저임금 수준이지만 행정도우미를 통해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인생의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큰 수확이다.

행정도우미 경험 발판삼아 더 큰 세상으로

실제 행정도우미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장애인들은 일단 행정도우미가 정규직이 돼서 계속 일할 수 있게 되는 것과 행정도우미를 발판삼아서 더 좋은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행정도우미로 일했던 경험을 발판삼아 새로운 직장을 얻어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장애인들의 모습은 오선영 씨와 같은 현직 행정도우미들에게 희망을 꿈꾸게 한다.

2009년 1월부터 올해 2월까지 대전 유성구 노은2동주민센터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했던 대전시 유성구 지족동 방정식(29·뇌병변장애 4급) 씨는 올해 3월부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취업해 인사관리과에서 행정업무를 맡고 있다. 자신의 업무와 관련 현재 하고 있는 일이 행정도무미 업무와 비슷하다고 방 씨는 전했다.

방 씨는 “행정도우미가 좋기는 하지만 급여가 너무 적어서 새로운 직업을 찾게 됐다. 행정도우미를 통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됐다. 직장에서도 일을 처음 해보는 사람보다 경험이 많은 사람을 찾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새 직장을 찾는데 행정도우미 일이 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방 씨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같은 곳에서 제공하는 장애인 채용공고를 꼭 챙기고, 기죽지 말고 자신에 맞는 직업에 계속해서 도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계획적으로 이력서를 내다보면 자신에 맞는 좋은 직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지난 2007년 7월부터 12월까지 충북 진천 진천읍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한 최인호(33·뇌병변장애2급) 씨는 지난 2008년부터는 진천구청에서 계약직 강사로 일하고 있다. 충북지체장애인협회 진천지회에 파견돼 컴퓨터 강사로 장애인들에게 인터넷, 워드프로세서, 엑셀, 파워포인트 등을 가르치고 있다.

최 씨에게 행정도우미 경험은 자신에 맞는 일을 찾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계기가 됐다고 한다. “행정도우미는 첫 직장경험이었다. 처음으로 돈을 번다는 것에 대해 기대감이 컸다. 민원인을 많이 상대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언어장애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은 것이 사실이다. 언어장애가 있는 사람이 하기에는 잘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6개월 만에 행정도우미 일을 접은 최 씨는 대학 전공을 살려 컴퓨터 강사에 도전했고, 2008년부터 3년째 컴퓨터 강사로 일하고 있다. “장애인 선생님에 대해 두 가지 시선이 있는 것 같다. 같은 장애인이라서 부담을 느끼지 않는 사람도 있고, 언어장애 때문에 수업 내용을 100%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에 불만이 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교재를 활용하고, 실습 위주의 수업을 통해서 나도 충분히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최 씨는 현재 1주일에 3일 정도 강의를 하고 있는데, 3년 동안 가르친 수강생이 300여명 정도다.

2007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화성시청 관할 장안면사무소, 남양동사무소에서 행정도우미로 일한 이점임(54·지체장애2급) 씨는 최근 자립생활 동료상담가로 변신을 성공했다. 올해 1월부터 두리하나화성장애인자립센터에서 동료상담가로 취업해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는 것.

“행정도우미 경험이 큰 도움이 됐다. 결혼하고 나서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하지 않았는데, 장안면사무소에 들어가서 전반적인 행정업무를 모두 배우게 됐고 컴퓨터 실력도 키웠다. 남양동사무소에서 근무할 때는 전반적인 복지 업무를 배웠다. 내가 2급 장애인이면서도 2급이 받을 수 있는 혜택도 제대로 몰랐는데 이제는 모든 내용을 꿸 수 있게 됐다. 행정도우미가 사회로 나갈 수 있도록 첫걸음을 떼게 해줬다고 보면 된다. 특히 65세까지 참여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큰 용기가 됐다.”

이 씨는 행정도우미로 일하면서 장애인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같이 일하자는 두리하나화성장애인자립센터 사무장의 제안을 받고 새로운 도전을 결심했다. 늦은 나이에 행정도우미로 일하겠다고 했을 때 말렸던 딸이 이제는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학비를 지원해주겠다고 변한 것은 이 씨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온다.

“행정도우미 일은 나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립생활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은 장애인들 중에서 자기 테두리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이 많이 보게 됐는데, 그들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배워야할 것들이 너무 많아서 때론 벅차기도 하지만 하나씩 배워나가는 것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 일을 하고 나서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 내 자신의 주체성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지난 2007년 2,990명으로 시작한 장애인행정도우미 사업은 2008년 3,000명으로, 2009년 3,500명으로, 2010년 3,800명으로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한시적인 사업이 아니라 지속적인 사업이 될 수 있는 기틀은 마련된 것. 행정도우미 사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실무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장애인개발원측은 “2011년에도 보건복지부를 도와 장애인일자리가 계속적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며 참여자분들에 대한 다양한 교육 및 지원을 통해 사업의 내실화를 도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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