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어느 시설/글내용과 관련 없음.

나는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아들은 방에서 숙제를 하고 있었다. 숙제를 하던 아들 녀석이 엄마를 불렀다. 모르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젖은 손을 행주에 문지르며 아들의 문제지를 들여다보니 '우리 나라의 주인은 누구입니까?'인데 아래는 괄호의 빈칸이 있었다. 우리 나라의 주인이라 "그야 당연히 우리 국민이지."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을 아이들에게 가르쳐 애국심을 기르자는 것이리라. 아들은 빈칸에 '국민'이라고 썼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 갔다 온 아들은 엄마가 틀렸다고 투덜거렸다. 엄마가 틀려?

그 문제의 정답은 '대통령'이란다. 나라의 주인이 대통령이라고 가르치는 선생에게 항의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곳곳에서 자유 민주 투쟁을 부르짖던 서슬 퍼런 80년대였다.

1945년 우리 나라가 해방이 되고 1948년 7월 17일에 공포된 제헌헌법을 보자.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동안 헌법이 여러 차례 개정이 되었는데 1972년 11월 24일 제7차 개정에서 체육관 선거가 치러지면서 제2조는 제1조 ②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로 개정이 되었다. 그러나 1980年 10月 25日 제8차 개정헌법에서 제1조 2항은 원래대로 다시 복원이 되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소불위다. 온갖 권한을 한 손에 쥐고 사람의 목숨도 마음대로 했던 왕. 왕은 나라를 다스리는 주인이고 백성은 다스림을 받는 종에 불과하였다. 사람의 값을 마음대로 매겨서 너는 양반 너는 상놈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세상이 바뀌었다. 민주제도란 뒤집어 놓은 왕이다. 옛날에는 왕이 주인이고 백성이 종이었지만 이제는 백성이 주인이 되고 왕은 주인이 부리는 종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나라는 여전히 시끄럽다. 주인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종들이 싸우느라고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다. 역시 이 나라 주인은 대통령 아니 정치지도자들인 모양이다. 우리 나라가 아직도 왕정시대인지 민주사회인지도 모를 일이다.

오래 전 필자와 약간의 친분이 있던 사람이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가 처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선거 유세 때는 여러분의 발이 되겠습니다. 심부름꾼이 되겠습니다. 해 놓고 왜 당선만 되면 주인 행세하려고 하느냐. 정말 심부름꾼이 좀 되어 보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랬더니 자기도 그러고 싶은데 관행이란 것이 있어서 잘 안된다나 어쨌다나.

무료급식소에서 봉사하는 사람들/글내용과 관련 없음.

장애인은 1년 365일 아니 평생을 여러 가지 어려움과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고 있다. 정부에서는 '장애인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장애인의 재활의지를 고취' 할 목적으로 1981년부터 매년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하고 기념행사를 거행하여 장애인을 격려하고 유공자를 포상하고 있다. 하루만이라도 장애인을 주인으로 대접해 주기 위한 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행사가 마찬가지겠지만 장애인의 날 기념행사도 장애인이 주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행사에 참석한 종(?)들이 주인행세를 한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주인인 장애인들은 뒷전인 채 종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안달이다.

정치인은 국민들이 다 할 수 없으므로 대표로 뽑은 종에 불과하고 아무리 지위가 높은 기관장이라 해도 그들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며 국민의 일을 대신 해 주는 종복일 뿐인데 왜 종들이 주인 행세를 하고 또 주인은 왜 주인 값도 못하고 종 앞에 굽신거려야 하는가 말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기념행사에 이상한 모습이 보이고 있다. 언제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개회를 하고 국민의례가 끝나면 내빈소개가 있다. 아하 저런 사람이 참석했구나. 참석한 사람들은 다 알아들었는데 그 다음 서열(?)에 따라 격려사 또는 축사를 하러 나온 사람들이 이미 소개한 내빈들의 이름을 차례로 들먹이며 인사치레를 한다. 그 다음에 나온 사람도 역시 똑 같은 순서를 밟는다. 또 그 다음 사람도. 얼마전 어느 장애인 관련 생사에서도 이런 모습은 판박이처럼 되풀이되었다. 종들의 눈이 너무 높아져서 주인이 안중에서 없어진 것일까.

주객전도의 모습은 이것만이 아니다. 예수께서도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 했거늘 주인행세를 하는 후원자나 봉사자들도 비일비재하다.

정말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려는 숭고한 뜻에서 후원금을 꼬박꼬박 보내주면서도 이름도 밝히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뒷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 사회가 삭막하지만은 않다.

그러나 어떤 행사든지 좋은 자리(?) 차지하여 사진 찍고 그 사진을 두고두고 울궈먹는 사람들도 있다. 복지시설을 찾는 것까지는 좋은데 무슨 패션쇼에나 참석하는 듯이 잔뜩 치장을 하고 한껏 멋을 부린 옷차림으로 고급 차에다 라면 박스 등을 싣고 와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눈꼴사납게 보이는 것은 없는 사람들의 자격지심일까.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의 생활시설을 찾는 사람들은 그곳에서만은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돈 몇 푼 주면서 온갖 생색 다 내고 후원물품 몇가지 쌓아놓고 카메라 앞에서 미소를 강요하는 것은 그들에게 더 아픈 상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양로원에 사시는 한 할머니는 명절 무렵이면 하루에도 몇번씩 불려나가 사진 찍히고 염불하고 찬송가 부르고, 송신해서 못 살겠다고 하소연을 했다.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 여기저기서 어려워서 못 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세상에서 제일 큰 기쁨은 아무도 모르는 선행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느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없을 땐 있을 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있고 보니 그 맘 오간 데 없습니다.' 어려울수록 우리의 이웃을 돌아보고 작은 것이라도 베풀고 함께 나누고자 하는 숭고한 마음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있으리니, 제발 심신이 고달픈 그 사람들에게까지 알아주기를 바라지는 말았으면 싶다.

# 이 내용은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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