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동권연대 국회 노숙농성단이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교통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현장/이동권 보장 국회노숙투쟁 2일째

“정부는 기만적이 허울뿐인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안)을 즉각 폐기하라!”

“정부와 여당은 저상버스 도입의 의무화를 핵심으로 하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교통수단 이용 및 이동보장에 관한 법률’을 원안대로 통과시킬 것을 약속하라!”

“건설교통부장관은 위의 요구사항에 대해 장애인이동권연대와의 면담을 즉각 실시하라!”

지난 3일 밤부터 농성에 들어갔던 ‘장애인이동권연대 국회 노숙농성단’은 4일 오전 11시 국회후생관 옆 주차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건설교통부 장관과의 면담을 촉구했다. 면담의 목적은 단 한 가지. 건교부가 준비하고 있는 이동편의증진법안을 즉각 폐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밤 이슬을 맞으며 주차장에서 노숙농성을 벌인 장애인과 학생 30여명은 기자회견에 참석해 국회 하늘 위로 두 팔을 치켜들었다. 장애인이동권연대 공동대표이자 노숙농성단을 지휘하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박영희 대표는 정부와 여당의 즉각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국회에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서 기분이 남다르다. 몇 번의 추락참사가 있었고 3년여의 투쟁의 결과로 노인·장애인·임산부 등 이동 약자를 위한 이동보장법률이 17대 국회에 입법 청원됐다.

그러나 지난 4월 건교부는 이동보장편의증진법이라는 법안을 내놓았다. 이 법안은 장애인을 시혜와 동정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실히 담겨져 있는 법안이다.

이것이 국회에서 통과될 경우 항상 예산의 문제에서 뒷전이었던 저상버스 도입 문제가 권고사항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장애인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영향도 주지 못할 무의미한 법일 뿐이다.

이동약자를 위한 저상버스 도입은 권고사항이 아니라 의무조항이어야 하고 강제성을 띄어야 한다. 어제 우리는 버스타기 행사를 하고, 이 곳에서 지난 3년간의 투쟁이 담긴 영상보고서를 상영했다.영화제가 끝나고 어쩌면 지난 3년간의 투쟁의 결과로 건교부안이 제정될 수 있다는 위압감을 느꼈고, 노숙농성에 돌입할 것을 결의했다.

우리는 오늘 건교부 안이 폐기되기를 주장하며 이 자리에 모였고 건교부 장관과의 면담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저상버스 도입 의무를 약속하라.”

박 대표의 발언 이후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문애린씨가 기자회견을 낭독했고, 이어서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정혁씨가 투쟁 발언을 한 후 기자회견은 끝이 났다. 기자회견과 동시에 장애인이동권연대는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빠른 시일 내에 면담일자를 잡아 달라”는 내용의 면담 요청 공문을 띄웠다.

피노키오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정혁씨가 투쟁발언을 하고 있다. 그의 휠체어에는 이동보장법 제정해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내용이 적힌 피켓이 걸려 있었다. <에이블뉴스>

애초 이날 기자회견은 오전 10시로 예정돼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투쟁에 관심을 보이는 기자들이 적자 농성단 관계자들은 보도자료를 들고 직접 국회 기자실로 찾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자회견에 참석한 기자들은 소수였다.

기자회견장 뒤로 국회경비대, 국회사무처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기자회견 상황을 지켜보았다. 기자회견이후 국회경비대 관계자는 강제 해산을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본지 측에 밝혀왔다.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저 사람들이 들어올 때 불법적으로 들어온 것이라면 얘기가 다르지만 의원실 초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의원실과 국회사무처의 입장에 따라 움직일 것이다. 우리는 아직 아무런 지시를 받은 것도 없다.”

애초 이들을 초청한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실측은 사태를 예의주시할 뿐 특별한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의원실 한 관계자는 “이동보장법 국회의원모임이 결성되고, 전국순회투어 등이 계획되는 등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중에 이번 일이 터져서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좀 난감하지만 의원님께서는 당사자들의 의지를 최대한 존중하자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우리가 나서서 어떻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모든 결정은 공대위가 할 것이다. 우리는 공대위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약 30분간의 기자회견을 마친 농성단은 그늘을 찾아 자리를 옮겨 식사를 기다렸다. 주차장 앞에는 지난 3년간의 투쟁이 담긴 사진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고, 그 주변에는 지난밤 노숙 도구로 쓰였던 종이박스가 무더기가 있었다.

농성이 진행되고 있는 국회 후생관옆 주차장은 국회 내에서도 외진 곳이라 농성단 관계자 이외에 일반인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는 사상 초유의 국회 안 노숙농성이라는 사태 2일째를 맞고 있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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