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 시각장애인 홈페이지.

장애인은 장애인이다.

우리나라에 장애인복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1981년이다.

1976년 제 31차 유엔총회에서는 1981년을 <세계 장애인 해>로 정하고 "모든 국가는 장애인들의 사회적 참여가 여러 분야에서 충분히 이루어지고 다른 국민들과 동일한 기회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가 보장되며 신장되도록 최대한으로 노력할 것"을 각 회원국에 권고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유엔의 권고에 따라 "장애인 복지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촉구하고 장애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며 장애인의 재활 의지를 고취"할 목적으로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을 제정하고 4월 20일에 처음으로 장애인의 날 행사를 개최한 이후 해마다 4월 20일을 장애인의 날로 정해 이 날을 기념하고 있다.

유엔에서 규정한 장애인의 개념은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간에 신체적 정신적 결함으로 인하여 일상의 개인 혹은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스스로 혹은 부분적으로 수행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장애인이라는 용어가 없었기에 병신 아니면 불구자였고 개별 장애를 지칭하는 봉사 벙어리 절름발이 꼽추 등의 부적절한 용어가 언론에서도 쓰이고 있었다.

유엔에서는 세계 장애인의 해를 ‘International Year of Disabled person’으로 표시했고, 일본은 장해자(障害者), 중국은 잔질인(殘疾人)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당시 일본의 장해자를 차용하여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心神障碍者福祉法)>을 제정하였던 것이다.

그러자 어떤 장애인이‘왜 놈자(者)를 쓰느냐 者자가 싫다. 인(人)으로 바꾸어 달라'며 항의를 했다고 한다. 기자(記者) 학자(學者) 봉사자(奉仕者) 등 일상에서 者자는 많이 쓰이고 있음에도 者에서 人으로 바꾼 것은 정말 부질없고 쓸데없는 일이었다. 그로 인해 각종 법을 비롯하여 모든 행정문서는 물론이고 공공기관의 안내문까지 다 고쳐야 하는 그야말로 낭비였고 오히려 일반 사람들에게는 혼란만 가중시켰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장애자가 익숙해져서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者에서 人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나 편견이 별반 달라지지도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오랜 논란을 거듭한 끝에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공식적으로 바뀐 것은 1989년 12월 30일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개정되면서부터였다.

서울특별시 중구청 장애인 홈페이지와 목포시 시각장애인 홈페이지.

우리 아버지는 장애우이시다?

그런데 장애자에서 장애인으로 변경 논의를 하던 무렵인 1987년 12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설립되면서 '장애우'를 들고 나왔다. 장애우(障碍友)는 장애를 가진 사람과 장애를 갖지 않은 사람 모두가 친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90년대 초만 해도 몇몇 대학생 동아리 같은 곳에서 장애우라고 쓰기 시작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장애우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장애인을 장애우라고 바꿔 쓰자는 주장까지 했다. 그들은 장애우가 더 좋은 말(?)이라고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장애인은 항변한다. '나는 너거들의 친구가 되기 싫다'고 말이다.

이름은 우리가 불러 주고 불릴 수 있는 언어 즉 말이다. 말은 누가 어떻게 만들어 내었던지 만들어진 순간부터 살아서 움직인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말이 생기고, 소리가 달라지거나 의미가 바뀌기도 한다. 이 같은 언어는 사회 구성원에 의해 약속된 것이므로 한 개인이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다. 언어의 생성과 발전, 변천과 소멸의 모든 과정은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 구성원, 집단, 언어대중의 합의와 약속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엄청난 언어의 혼란에 빠져 있다. 인터넷에서 통용되고 외계어((?)는 제껴두더라도 우리가 일상으로 쓰는 말 중에 오빠가 있다. 오빠란 여자가 같은 항렬의 손위 남자 형제를 일컫는 오라버니의 어린이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남자친구를 오빠라고 했다가 이제는 아예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고 있다.

그리고 형제(兄弟) 자매(姉妹)는 형과 아우를 가리키는 말이다. 누나와 결혼 한 남자는 당연히 자형이라고 해야 함에도 매형이라고 부르는 것은 어느 나라 계촌법인가. 최근 모 국회의원이 자신을 '작은할아버지의 손녀'라고 해서 말썽이 되고 있음도 어이없는 일이다. 작은할아버지는 종손녀(從孫女)이지 손녀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신문이나 방송에서 장애인 관련 보도를 할 때 '장애우'라 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장애우는 장애(障碍)와 우(友)의 합성어이다. 따라서 장애우란 장애를 가진 친구를 가리키는 말이어야 하는데 장애우의 쓰임새를 보면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다. 장애인은 갓난아이에서부터 70~80대의 노인들도 있어 남녀 노소 구분이 없는 보통명사이고 지칭어이다.

우리는 장애인의 반대 개념을 비장애인이라고 한다. 즉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다. 장애우의 반대 개념을 비장애우라고 한다면 장애를 가지지 않은 친구가 되는가.

벗 우(友)는 친구라는 말인데 친구(親舊)의 사전적 의미는 [1. 친하게 사귀는 벗. 붕우. 친우. 친고(親故). 2. (비슷한 또래나 별로 달갑지 않은) 상대편을 무간하게 또는 낮추어 부르는 말.]이다. 따라서 장애우란 장애를 가진 모든 사람들을 아우를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펴낸 장애우복지개론.

'장애우'는 뿌린 자가 거두어야.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이 아니다. 비주체적이고 의존적인 장애우를 더 이상 사용하지 말라'면서 '장애우라는 말을 쓰지 말자'는 반대 운동이 몇 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새삼스레 이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은 최근의 몇 가지 사례 때문이다.

반공을 국시로 삼던 시절 북한에서는 모두를 '동무'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래서 '아바이 동무 어마이 동무'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공산사회의 평등이 이런 것이구나 싶어 사람들이 넌더리를 치기도 했었다.

필자가 운영하는 상담 게시판에도 장애우라는 말이 심심찮게 올라오고 있다. '우리 형님이 장애우인데요''우리 오빠는 1급 장애우십니다' '제가 장애우가 될 수 있을까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장애인 친구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말 같기도 하지만 이 말은 장애인등록이 가능한가를 묻는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장애우아버지 장애우할아버지라는 말도 나올 판이다.

『우리 아버지는 장애인이십니다』우리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 아버지는 장애우이십니다』우리 아버지는 장애를 가진 친구가 된다. 장애를 가진 친구의 아버지는 과연 누구의 아버지란 말인가. 스무살 자원봉사자가 50~60대 되는 장애인을 봉사하면서 장애우라고 부르고 있다. 결코 웃을 일이 아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장애인'이라고 검색을 하면 '장애우'도 같이 검색이 된다. 검색에 장애우가 많은 것을 보고 '장애우'라고 검색을 해 보았더니. 맙소사!

그동안 언론이나 봉사단체 등에서 장애우를 주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는 있었지만 국무총리실을 비롯하여 시청이나 구청 교육청 도서관 철도청 등 공공기관에서 조차 버젓이 장애우라고 쓰고 있는데야 놀라움을 금할 수가 없었다. 장애인에 대한 법률용어이자 공식용어는 장애인이지 결코 장애우가 아님에도 말이다.

또 하나 어이없는 일은 대학 사회복지과에서 교재로 사용하고 있는 연구소에서 발행한 책이 한권 있는데 제목이 '장애우복지개론'이다. 이 책은 장애인에 대한 복지학일까 장애인 친구에 대한 복지학일까.

장애인관련 행사에 축사를 하러 나오는 유명인사들이 있다. '장애우 여러분'하면서 장애인 복지 증진론으로 기염을 토하는데 용어 하나 제대로 사용할 줄 모른다면 일단은 사이비라고 봐도 좋다. 단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사람만 빼고 말이다.

오늘날 장애우가 이렇게 만연하게 된 것은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지대한 공로이다. 연구소에서 그만큼 장애우를 많이 홍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구소에서도 『'장애우(友)'란 용어는 운동의 이념으로 사용한 것이지 법적·사회적 공식용어로써 자리매김하기 위해서가 아니다』라고 하니 이쯤에서 자신들만의 고유명사 '장애우'를 장애인이라는 보통명사로 바꾸는 게 어떨까 싶다. 설사 단체이름까지야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보통명사 '장애인'까지 '장애우'로 고쳐쓰는 우(愚)는 더 이상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이 기사는 부산일보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누구나기자로 현재 하사가장애인상담넷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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