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결산]-④활동지원 휴게시간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끝자락에 서서 장애인계를 뒤돌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청와대 삼보일배 행진, 대규모 삭발투쟁 등 대정부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 결과 청와대가 9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을 초청한 가운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 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의 상황도 녹녹하지는 않다. 장애등급을 대신할 종합조사표에 깊은 우려가 제기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특정 장애유형의 서비스가 대폭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해서는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가족허용 등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무엇보다 주목될만한 키워드는 장애인 공익소송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신안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에버랜드 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 소송에 관해 2심 재판부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밖에도 검찰이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 문무일 검찰 총장이 피해자와 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도 올해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네 번째는 활동지원 휴게시간이다.

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모습. 에이블뉴스와 인터뷰에서 이들 모두 “휴게시간 적용은 비현실적”이라고 입 모아 말했다.ⓒ에이블뉴스DB

올 상반기 장애계를 강타했던 이슈는 바로 장애인활동지원 ‘휴게시간’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을 두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난 진통이 장애계에도 그대로 전달이 된 건데요.

지난 3월 중순 활동지원기관들은 그 달 20일부터 시행 예정인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주요 개정사항을 공문으로 받았습니다.

주 40시간을 초과한 근로자를 대상으로 8시간 이상 근무 시 2배를 지급하는 ‘휴일근로수당’, 그리고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 특례업종에서 사회복지사업이 제외되며, 7월부터 활동지원사에게 ‘휴게시간’을 의무적으로 지급하는 내용이죠.

에이블뉴스는 전북지역 활동지원기관 관계자로부터 문제점을 처음으로 파악했고, 휴일근로수당 지급 문제의 어려움을 보도했습니다.

이후 휴게시간 문제가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에서 큰 혼란으로 다가왔습니다.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의 휴게시간을 근무시간 도중 제공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참내. 내가 1시간동안 마음 놓고 쉴 수 있겠어요?”

“잠깐이라도 활동지원사가 없으면 저는 죽을 수도 있어요.”

“제 이용자는 정말 바쁜데, 버스 타는 도중에 내려서 쉬고 다시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야됩니까”

전국 곳곳에서 여러 목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위해 이동, 가사, 신변처리 등 모든 일상생활 지원하는 제도 특성상, 주먹구구식의 휴게시간 적용은 맞지 않다는 주장은 동일했습니다.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도 휴게시간 보장 자체는 환영하지만, 아무런 대책 없이는 단말기만 쉬고 활동지원사의 무급노동만 계속된다고 정부 방안을 끊임없이 주문했고요.

근로기준법에 따른 장애인활동지원사의 휴게시간 보장 대책을 촉구하는 퍼포먼스.ⓒ에이블뉴스DB

“고위험 최중증장애인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가족이 휴게시간에 활동지원할 수 있도록….”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보건복지부가 고심 끝에 대책을 내놨지만, 비판만 받았습니다.

800여명의 고위험 중증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활동지원사 두 명의 교대근무,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허용, 다른 활동지원사의 의한 대체근무제 등을 제안한 건데요.

두 명이 겹쳐 교대근무하면 9시간으로 늘려 일하게 되고, 외출했을 경우 쉴 여건도 되지 않고요. 가족 활동지원 허용의 경우 1시간 활동지원하려고 가족이 모든 사회생활을 내놔야 하냐는 비판, 대체인력 지원도 전문성 없는 인력이 어떻게 장애인들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겠냐는 지적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장애계의 결론은? “당장 대책을 백지화하라!”

복지부 응답은? “일단 6개월간은 계도기간을 갖고 보완하겠습니다.”

그렇게 계도기간을 갖고 있는 지금, 당장 다음 달부터 휴게시간이 시행되는데 정부의 보완책은 아직 나온 것이 없습니다. 장애인의 생존권과 활동지원사의 제대로 된 쉴 권리를 위해서는 제도개선이 불가피한데 말이죠.

장애계 또한 각각의 방식대로 의견을 내놓긴 했습니다만, 하나로 모아지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특히 ‘차라리 안락사를 시켜 달라’며 휴게시간을 거부한 고위험희귀난치성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근장생존권보장연대)와 쓰지 못하는 휴게시간을 모아 휴가를 떠나는 ‘휴게시간 저축제’ 도입을 촉구하는 전국장애인활동지원사노동조합(지원사노조)의 주장은 첨예하게 갈립니다.

(위)차라리 안락사를 시켜달라며 청와대까지 침대를 끌고 행진을 펼친 고위험희귀난치성근육장애인생존권보장연대(아래)휴게시간 저축제 도입을 촉구하는 국회 서명 운동을 펼친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에이블뉴스DB

근장생존권보장연대는 휴게시간이 곧 ‘죽음’이라며 근로기분법상 특례업종에서 제외된 활동지원사업이 다시 특례업종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청와대 국민청원, 국회 앞 1인 시위, 침대를 끌고 청와대 사랑채까지 진행한 ‘shouting on the bed' 캠페인 등을 통해 절박함을 알렸습니다.

지원사노조는 기자회견, 서명운동 등을 통해 활동지원법에 활동지원사의 휴게에 관한 조항을 추가하는 방식의 법안 발의를 목표로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1400억원이란 예산의 벽에, 장애인당사자들의 반대 목소리도 만만치 않습니다.

당장 다음 달 시행되는 활동지원사의 휴게시간, 6개월 계도기간 동안 정부가 마련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계도기간 동안 장애계 목소리가 수그러들자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장애인의 생존권, 그리고 활동지원사의 쉴 권리 모두 지켜질 수 있는 ‘휴게시간’이 되길, 폭풍에 이은 더 큰 후폭풍이 오지 않도록 제도 준비에 만전을 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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