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서울 대학로 노들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모의평가 체험 현장에서 이태규 씨가 조사원으로부터 판정받고 있다.ⓒ에이블뉴스

B조사원: “옷 갈아입기 가능하세요?”

이태규 씨: “네 가능해요.”

B조사원: “약 챙겨 먹을 수 있으세요?”

이 씨: “네. (도움)필요 없어요.”

B조사원: “네, 선생님의 조사표 시간은 하루 1.921시간이세요.”

언어장애가 심한 이태규(42세, 뇌병변2급) 씨가 B조사원과 10여 분간의 평가 끝 그가 받을 수 있는 장애인활동지원 판정 시간이 나왔다. 이 씨가 원했던 하루 6시간에 못 미치는 약 2시간 정도. E조사원간의 판정에서도 2.492시간에 불과했다.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물어보고 답하고…불만이 많아요.”

바로 이의제기를 하겠다는 이 씨는 현재 활동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 “지금 현재 활동지원을 신청하면 장애등급을 다시 판정받아야 하니까요. 내년 등급제가 폐지되면 한 번 신청해보려고요.” 그렇게 참여했던 모의평가지만, 결과는 실망 그 자체.

“저는 언어장애가 심해서 전화 업무 쪽에 도움이 많이 필요해요. 센터 소장으로 있다 보니까 오랜 근무 시간 동안 도움이 필요한데 지금 이 조사표로는 힘들죠. 장애유형별로 맞춤형 조사표가 필요한 것 같아요.”

이태규 씨는 하루 6시간의 활동지원을 원했다. 하지만 1.9시간만 판정받았다. 사진은 이씨가 직접 작성한 자가 평가 내용.ⓒ에이블뉴스

22일 서울 대학로에 위치한 노들에서 이색적인 토론회가 열렸다. 내년 7월 본격 시행되는 장애등급제 폐지가 어떻게 내 삶에 미치는지 피부로 느껴보고자, 중증장애인 50여 명이 직접 ‘돌봄지원 필요도 평가’를 통해 활동지원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 모의평가를 해본 것.

먼저 자신의 기본정보와 일간 계획표를 통해 원하는 서비스 시간을 기록하고, 중증장애인 동료들과 회의를 통해 필요한 서비스 시간을 정한다. 그 후 조사원 2명이 총 596점으로 이뤄진 종합조사표로 서비스 시간을 최종 판정내리는 방식이다.

22일 서울 노들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활동지원 모의평가 체험. 사진은 동료평가위원회 회의모습ⓒ에이블뉴스

앞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는 돌봄 분야 종합조사표가 활동지원이 하루 16.84시간으로 제한돼 24시간 보장을 하지 못하며, 총점 596점의 점수표에 불과하다고 지적해온 바 있다.

정명호 씨가 조사원으로부터 활동지원 모의평가 판정을 받고 있다.ⓒ에이블뉴스

독거로 생활하며 활동지원사의 도움이 전적으로 필요한 정명호 씨(30세, 뇌병변1급)는 현재 월 391시간(복지부 시간)의 활동지원을 받고 있다. 그가 원하는 시간은 하루 17시간.

“실내 이동하실 때 활보 선생님이 들어 옮겨주세요?”, 정 씨는 대답 대신 의사소통 어플을 통해 ‘네’라고 꾹꾹 눌러썼다.

정 씨의 종합조사표 결과 내용. 하루 17시간을 원했지만 조사원 판정 결과 10.6시간을 받았다.ⓒ에이블뉴스

“신변처리도 도와주시나요?” (끄덕). 그에게 내려진 활동지원 시간은 하루 10.6시간. 기분이 어떠냔 질문에 정 씨는 ‘기분이 드럽다’고 적었다.

‘왜’냐고 다시 묻자, 다시 어플을 통해 꾹꾹 눌러 적는다.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시간을 주면 되는데 이렇게 조사표로 하는 게…’

시각장애인 곽남희(27세, 시각1급)씨 또한 마찬가지.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하는 곽 씨는 현재 월 134시간(복지부 시간), 하루 평균 6시간 정도 활동지원을 이용하고 있다. 그는 자가 평가 및 동료 판정위원 회의를 통해 하루 총 10시간의 활동지원을 원했다.

시각장애인 곽남희 씨가 모의 평가 판정을 받고 있다.ⓒ에이블뉴스

B조사원: “소변 혼자 보실 수 있으세요?”

곽 씨: “소변기 위치만 알면 가능한데…”

B조사원: “그럼 ‘일부 지원’으로 드릴께요.” ‘2점’

B조사원:“식사 가능하세요?”

곽 씨: “먹을 때는 혼자 먹는데 만드는 거나 차리는 게 힘들어요.”

B조사원: “아뇨. 차리는 거 말고 먹는거요.” ‘0점’

곽 씨는 B조사원으로부터 하루 총 4.1292시간을 판정받았다. 충격을 받은 곽 씨는 “문제가 많다”고 말했다.

“지금 현재 받는 것보다 더 점수를 못 받아요. 이 점수로는 업무에도 지장이 있고 여가활동이나 장거리 갈 때 문제가 많을 것 같아요.”

이에 곽 씨는 장애유형에 맞는 조사표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은 옷 색깔을 구분하긴 어렵지만, 옷 갈아입는 자체는 가능하거든요. 전 장애유형을 통틀어서 하나의 점수표로 하다 보니 제가 시간이 많이 깎여요. 개선이 많이 필요해보여요.”

22일 서울 노들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활동지원 모의평가 체험.ⓒ에이블뉴스

뮤지컬 감독으로 활동하는 청각장애인 김지연 씨도 동료들과의 의사소통이 필요해 하루 5~7시간의 활동지원을 원했지만, 판정 결과 총 1시간 30분 정도만 판정받았다.

“저는 뮤지컬 감독이기 때문에 노래 선정이나 대본, 무대 디자인을 선택할 때 많은 사람과 소통이 필요해요. 언어소통이 절실한데, 질문은 양치가 가능하냐고 물어봐요. 제 입장에서는 맞지 않는 질문이죠.”

조사원으로 체험했던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정민 활동지원팀장도 “조사표를 통해 판정하며 민망함을 느끼기도 하고, 평가지에 문제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면서 “조사원 또한 장애감수성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점수가 많이 차이 날 것 같다. 앞으로 조사표에 대한 많은 논의가 필요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날 중증장애인이 참여한 모의평가 분석 결과는 전장연이 취합해 SNS 등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22일 서울 노들에서 열린 장애등급제 폐지 활동지원 모의평가 체험. 체험에 참여한 중증장애인 당사자들의 평가표를 걷고 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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