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가 15일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열린 2017 장애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보고회에서 디딤돌 판결을 설명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올해도 장애계를 울고 웃게 한 판결들이 있었다. 뇌병변장애인이 교육공무원 채용과정에서 정당한 편의를 받지 못한 것이 장애인차별이라는 판결은 교육공무원을 준비하는 장애인 수험생의 눈물을 닦아 줬다.

반면 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종사자가 거주 장애인을 강제로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혀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사례는 장애계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이에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는 14일 서초구 변호사교육문화관에서 2017 장애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보고회를 갖고 디딤돌 판결 7건과 걸림돌 판결 4건을 소개했다.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은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변호사, 법무법인 디라이트 김용혁 변호사, 공인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최현정 변호사,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김영희 대표 등 8명(이하 2017 장애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이 맡았다.

■특수교사 불합격처분 뇌병변장애인 눈물 닦아 준 판결=2017 장애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선정위원회(이하 선정위원회)는 올해의 디딤돌 판결로 뇌병변장애인 특수교사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을 꼽았다.

이 소송은 지난 2014년 뇌병변장애인 A씨가 공립중등학교 교사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하 임용시험)의 마지막 관문인 심층면접시험에서 장애인차별(정당한 편의 미제공)을 당해 불합격처분을 취소해 달라며 광주지방법원에 제기한 소송이다.

A씨는 조선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졸업해 특수학교 정교사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10년 간 임용시험에 응시를 했지만 수 차례 2차 시험(수업실연, 면접)에서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시험 전형 중 1차에서는 장애인 편의지원을 제공받지만, 2차 시험에서는 편의제공을 받지 못했다.

2014년 임용시험에서는 2차 시험 중 하나인 수업실연과목에 합격했다. 하지만 A씨는 마지막 관문인 심층면접시험에서 부적격판정을 받았고 광주광역시교육감으로부터 최종 불합격처분을 받았다.

심층면접시험은 10분동안 제시된 4개의 질문에 대해 본인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임용시험 응시생의 소질, 가치관 등을 평가하는 목적이 있다.

A씨는 심층면접시험에서 정당한 편의를 제공받지 못했다. 당시 시험공고에는 장애인 편의제공을 1차 시험에 제한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A씨는 시험 도중 스케치북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했고 시험면접관 측은 이를 허용했다.

하지만 1급 뇌병변장애인인 A씨는 장애특성상 정확한 손놀림을 할 수 없었고 10분의 면접기간 동안 스케치북을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이에 A씨는 광주지방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A씨의 청구를 받아들여 광주교육청의 불합격처분을 취소했다. 광주교육청은 항소를 했지만 광주고등법원 역시 1심 법원의 판단을 그대로 유지해 A씨에 대한 불합격처분은 취소됐다.

■걸림돌 판결 '하은이 사건' 디딤돌로=선정위원회가 선정한 또다른 올해의 디딤돌 판결에는 지난해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던 경계선 지적장애청소년 성폭행 피해 위자료 청구소송(일명 하은이 사건 소송)이 이름을 올렸다.

하은이(가명)은 당시 만 13세로 지능이 약 70정도 되는 경계선 장애를 가진 지적장애청소년이다. 집을 나온 하은이는 스마트폰 채팅을 통해 피고 A씨를 만나게 됐고 잠자를 제공받는 대가로 유사성교행위를 했다.

이로인해 하은이는 정신적 충격은 받아 4개월 간 병원치료를 받았고 하은이 부모는 A에게 피료비와 성적자기결정권 침해로 인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며 손해배상 청구를 했다.

하지만 원심 법원은 하은이 부모가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대해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구 아동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의해 아동 청소년의 성이 보호받는다고 할지라도 이는 행위자를 처벌함으로 인해 사회질서가 확인 유지되는 반사적 효과가 있는데 불과한 것이지, 해당 아동 청소년이 피해자로 평가된다거나 어떠한 권리를 갖게 된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항소심 법원은 원심을 뒤집고 하은이 부모의 손을 들어줬다. A씨는 하은이가 가출로 잠잘 곳이 마땅하지 않았던 궁박한 상태였고 성적 가치관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상태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이런 상황을 이용해 유사성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이에 재판부는 A씨의 위법행위를 인정해 하은이에게 치료비와 위자료 10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외에도 청각장애인 장애인차별금지 이행중지 및 위자료청구 소송 판결, 뇌전증 장애인 장애등급변경 처분 취소소송 판결, 장애등급변경처분 취소소송 판결, 정신보건법에 의한 강제입원 위헌소송 판결 등이 디딤돌 판결로 선정됐다.

2017 장애인권 디딤돌 걸림돌 판결 보고회에서 걸림돌 판결에 대한 설명을 맡은 희망을만드는법 김재왕 변호사. ⓒ에이블뉴스

■장애인 죽음에 이르게 한 시설종사자 집유 장애계 분노=중증장애인 거주시설의 종사자가 거주 장애인을 강제로 제압하는 과정에서 상해를 입혀 사망에 이르게 했음에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판결이 선정위원회의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피고 B씨는 인천해바라기장애인거주시설 소속의 생활재활교사로 시설 거주 장애인인 K씨가 자해하는 것을 발견했다. B씨는 K씨를 안전방으로 옮기는 등의 방법이 있었음에도 K를 바닥에 엎어 눕힌 후 반항하자 등 뒤에 올라탔다.

이 과정에서 체중을 실어 K씨의 늑골 부위를 완력으로 제압했고 B씨의 행위로 인해 K씨는 우측 다발성 골절에 이르러 결국 흉복부 손상으로 사망했다.

피고 A씨 역시 인천해바라기장애인거주시설 소속의 생활재활 교사로 시설 거주 장애인인 H씨의 얼굴을 때리고 목을 잡은 채 강하게 흔들었다. 심지어 발로 밀어 뒤로 넘어뜨리는 방법으로 폭행하기도 했다.

특히 또다른 거주인 J씨의 머리채를 잡아 흔들거나 손으로 얼굴을 때렸고, 손으로 잡아당겨 넘어지게 하고 잠자는 피해자 몸 위에 올라앉아 강제로 약을 먹이는 등 폭행을 일삼았다.

하지만 법원은 이들에 대해 집행유예를 내렸다. 자해로 인한 상해를 막기 위해 일정범위 내의 물리력의 사용이 불가능 한 측면이 인정되고 이 사건 대부분의 행동이 의도된 폭력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A씨에게 징역 8개월, B씨에게 징역 1년에 처하면서 이들에게 2년간의 형 집행을 유예(집행유예)했다.

■"2층버스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 의무 없다"="2층버스는 저상버스가 아니므로 교통사업자에게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 의무가 없다"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의 이 같은 판결이 선정위원회가 선정한 걸림돌 판결로 선정됐다.

지체장애인 C씨는 2층버스가 휠체어 전용공간을 확보를 할 의무가 있다면서 2층버스를 운영하는 교통사업자 B를 대상으로 손해배상 및 버스 내 휠체어 전용공간 확보 요구하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상 2층버스 역시 휠체어 전용공간(넓이 1.3m이상, 폭 0.75m 이상)을 확보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확보하지 않아 전용공간에서 방향전환이 어려웠고 이로 인해 다른 승객들과 달리 버스 정면을 응시 못해 차별적 취급을 당했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법원은 2층버스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 확보 의무가 없다고 판단했다.

C씨가 이용한 버스는 자동경사판이 아닌 수동식 경사로가 설치 돼 있으나 뒷부분 통로면의 차실천장 높이가 1900mm에 미달하고 국토교통부로부터 지급되는 저상버스 국고보조금을 받지 않고 있는 점을 종합할 때 버상버스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설령 이 버스가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 확보 의무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접이식 좌석을 접어 휠체어 전용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수동식 경사로를 통해 버스기사가 휠체어 이용 승객의 탑승을 도울 수 있도록 한 점 등을 종합해 B가 고의 또는 과실로 정당한 편의를 제공을 거부해 차별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특히 차별행위가 있다 하더라도 이는 2층 광역버스 도입 과정에서 발생한 불가피한 현상으로 피고에게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시해 C씨의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현재 이 사건은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이 외에도 선정위원회는 뇌병변장애인이 된 유치원 교사에 대한 직권면직처분 소송에 관한 판결, 경계선 지적장애인 임금채권 민사소송에 관한 판결 등이 걸림돌 판결에 선정됐다.

선정위원회 관계자는 "걸림돌 판결과 관련해 법관들이 현실의 내용과 어려움을 법리적으로 못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판결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고 그걸 통해서 앞으로는 걸림돌 판결이 안나오도록 변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점에서 디딤돌 걸림돌 판결선정은 굉장히 의미가 있다. 판결 선정을 통해 장애인권의 걸림돌이 하나씩 제거되고 디딤돌 판결을 통해 장애인권이 한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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