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11시 서울특별시 종로구 신교동에 위치한 서울맹학교 졸업식 모습. 이날 고등학교 22명, 이료재활과정 27명, 전공과 7명 등 총 56명의 시각장애인이 졸업했다. ⓒ에이블뉴스

졸업은 또 다른 헤어짐이며, 만남의 시작을 알린다. 옛날과 지금 졸업식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친구와 선생님과의 헤어짐이 슬퍼 눈물을 글썽이는 학생들은 보기 어려워졌다. 아마 시대가 변화됐고, 생각의 차이에 따라 졸업의 의미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도 실명으로 시각장애를 갖고, 제2의 인생의 막을 올린 김창호(60세, 시각장애2급)씨는 졸업의 의미가 남다르다. 반 평생 비장애인으로 정유업계와 아파트관리소에서 근무해 온 그에게 뚜렷히 보이지는 않지만 몸의 혈 자리를 지압해 만지는 ‘안마사’가 될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늦깎이 졸업생 김씨는 8일 오전 서울맹학교 이료재활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비록 가족들이 찾아와 축하의 꽃다발을 전해주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학교를 졸업하고, 안마사가 된 자신을 축하했다.

이날 서울맹학교의 이료재활과정 총 27명이 졸업했다. 이중 7명은 더 큰 배움을 찾아 전공과로 진학했고, 14명은 안마사로 취업했다.

8일 서울맹학교 이료재활과정을 졸업한 김창호씨. 중도 실명이 또 다른 기회가 되어 안마사가 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에이블뉴스

중도 실명, 그에게는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2004년 어느날 배드민턴을 치던 중 내려오는 셔틀콕이 보이지 않았다고 그는 설명했다. 계속 흐릿하게 또는 흔들려 보이자 동네 안과를 찾았다. ‘더 큰 병원을 가보라’는 의사의 말에, 대학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 ‘황반변성’이라는 병명을 얻게 됐다. 눈의 안쪽 망막의 중심부에 위치한 신경조직을 황반이라고 부른다. 물체의 상이 맺히는 곳이 황반의 중심인데, 이 황반부에 변성이 일어나 서서히 시력이 감소되고, 변시증(사물이 찌그러져 보이는 증상) 등이 나타난다.

김씨는 “의사는 스트레스 때문에 발병 된 거라고 하더라고요. 아파트관리소에 일 할 때 스트레스가 심했거든요. 진단을 받은 후 점점 흐려보였어요. 일을 그만 둘 수 없으니까 문서도 크게 확대해서 읽고.. 그래도 버텨볼려고 노력했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결국 그만두고.. 한 6개월을 집에만 있었어요. 인정하기 싫었죠.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2009년 결국 그는 일을 그만두었다. 매일 KBS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만 들었다. TV를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그가 세상과 소통 할 수 있는 것이 ‘라디오’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6개월만에 세상 밖을 나왔다. 라디오를 통해 시각장애인복지관이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됐고, 점자와 컴퓨터 교육을 배웠다. 이제는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퇴직한 후 일정한 수입이 없어 ‘마이너스통장’으로 버티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김씨는 안마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시각장애인도 점술, 점역사, 안마사 등 전문적인 직업이 가능합니다. 이전에 역학에 관심이 있어서 그쪽으로 배워볼까 하다가..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니까 수입이 중요해지더라고요. 그러다보니 그나마 안정적인 수입이 될 수 있는 안마사를 택했죠. ‘일단 안마 기본부터 배워보자’라는 생각에 서울맹학교에 입학했죠.”

제3의 직업 ‘안마사’의 길을 선택하다

2011년 시험을 치른 뒤 서울맹학교 이료재활과정에 입학한 김씨는 또 다른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꼈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지만, 25세부터 66세까지 최연소, 최고령이 같이 배운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25세가 막내고, 66세가 제일 나이가 많은데 우스갯소리로 ‘오빠’, ‘아빠’ 이렇게 부른다니깐요. 사실 아빠뻘이 훨씬 넘는데도 그렇게 장난을 쳐요. 워낙 사이가 좋은 것도 있지만 세대차를 뛰어넘어 ‘시각장애’라는 사실을 함께 공유했다고 생각해요.”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안마사가 되기로 결정했지만, 지금은 안마사가 된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안마사’가 시각장애인만 할 수 있는 특수성이 있고 몸의 안마·마사지·지압 또는 전기기구를 사용하고, 기타 자극방법으로 인체에 대한 물리적 시술을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직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는 ‘안마사’라는 특수한 직업이 불법 안마업소 성행으로 인해 피해를 보는 것이 안타깝다며, 적극적으로 나서 제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전히 불법 안마업소는 성행되고 있고 적발되면 벌금 낸 뒤 이름만 바꿔서 또 장사를 하죠. 스포츠, 태국마사지가 불법적으로 이뤄져 시각장애 안마사들이 설 자리가 점점 없어지는 건 사실이에요. 적발하려고 노력은 하겠지만, 적극적으로 정부에서 나설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김씨는 2개월 된 초보 안마사다. 학교에서 안마를 하기 위한 이론과 실습을 통해 배웠지만,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은 역시 차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개개인의 성격이 다른 것처럼 몸도 다르다는 게 그 이유다.

“책에는 목이 아프면 어디 혈자리를 만지라고 나와있지만, 실제 손님에게 안마를 해보니 배운대로 적용하지 못해요. 사람 몸에 대해 알아봐가면서 해야 되요. 처음엔 그걸 모르고 계속 그 혈자리만 만졌어요. ‘그럼 괜찮아겠지?’ 생각했는데, 계속 아프다고 하는거에요. 어쩔줄 몰라했어요. 그게 책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현장에서만 배울 수 있는 지식인 것 같아요.”

그는 초보 안마사이지만, 목과 어깨를 만져보면 사람의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천부적인 재능이 아니냐고 묻자, 김씨는 현장 경험을 통한 ‘배움’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말도 안 걸고 누우세요, 몸 돌려보세요 이렇게만 얘기하고 안마를 시작했거든요. 근데 이제는 대화를 하다보면 정면을 보고 누워서 안마를 해야 되는지, 아니면 옆으로 누워야 되는 지 등 이제는 감을 잡죠. 현장 경험을 통해 배운거죠. 단골손님도 꽤 생겼어요. 손님 당 40~50분 정도 안마를 해드리는데, 솔직히 나이도 있으니 체력이 못 따라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 단골손님은 단 몇 분이라도 더 받고 싶어하니까.. 그래도 원하시니 최선을 다해서 해드리죠.”

이제 김씨는 사람 몸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안마에 대한 위력도 느꼈다. 안마는 의료적 행위는 아니지만 내 손으로 아픈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해주는 그 맛에 헤어 나올 수 없다고 전했다.

내 나이 예순, 내 꿈은 ‘창업’

벌써부터 단골손님을 꽉 잡고 있는 김씨의 꿈은 ‘창업’이다. 내 이름의 지압원을 갖는 것. 이는 안마사를 하는 시각장애인들의 모든 희망일 것이다.

작은 공간이라도, 내 안마를 받고 싶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면 더 없이 기쁠 것이라고 김씨는 말했다.

“제가 중도에 시각장애를 갖게 됨으로써 안마사라는 또 다른 직업을 가질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해요. 제3의 직업을 시각장애인이 되고 갖게 된 거죠. 에이 물론 졸업 한 것은 아쉽죠. 하지만 또 다른 인생, 직업을 갖고 제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전혀 아쉽지 않아요. 전 이 일이 너무 좋거든요.”

중도 실명으로 인한 시각장애, 다소 위기로 다가올 수 있었지만, 또 다른 기회로 잡은 김씨. 뚜렷한 목표를 세운 만큼 앞으로 펼쳐질 그의 안마사로서의 인생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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