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강경화씨가 장애여성 단독조항의 필요성에 대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이를 참관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우리가 간과했던 다중적인 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여성의 권리보장의 중요성을 재조명한 대한민국의 헌신적 노력에 감사를 표한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장애여성 단독조항과 관련한 첫 공식논의가 진행된 지난 2일 오전 미국 뉴욕 유엔빌딩 회의장. 제6차 UN특별위원회가 진행되고 있는 이곳에서 세계 각국의 정부대표단은 ‘숨겨져 있던 장애여성의 문제를 부각시킨 대한민국의 노력에 감사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 2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된 이날 논의는 우리나라 정부대표단의 수석대표인 외교통상부 국제기구정책관 강경화 국장의 제언설명으로 시작됐다. 강 국장은 “다중적 차별을 받고 있는 장애여성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장애여성 단독조항이 제정돼야 한다”고 힘차게 발언했다.

강 국장은 “단독조항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국가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조약의 이행과정에서 각 국의 여성부나 관련부서의 실질적인 이행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단독조항 제정이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각 국가의 정부대표단은 이구동성으로 장애여성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서 공감대를 표시하며, 잊고 있던 장애여성의 문제를 부각시킨 한국의 노력에 감사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쏟아낸 것.

하지만 이미 예상했던 대로 조약안에서 장애여성 문제를 다루는 방법론에 대해서는 이견을 제기하는 국가들이 적지 않았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열고 나선 것은 유럽연합(EU)이었다. 유럽연합은 “조약안에서 여성 권리가 다뤄지는 것을 반대하지 않지만, 모든 장애인들과 함께 융합돼서 다뤄지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장애여성 단독조항 논의를 경청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유럽연합은 단독조항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고, 조약의 전문, 국가의 의무, 모니터링 부분에 장애여성에 대한 언급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자고 밝혔다. 이에 대해 뉴질랜드, 호주, 일본, 노르웨이 등 지지 의사를 표시했다.

캐나다도 단독조항으로는 장애여성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며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시하면서 대안으로 조약의 전문과 관련 있는 조항에 장애여성에 대해 언급하자고 주장했다. 이는 일명 '메인스트림'(mainstream) 관점이다.

사실상 장애여성 단독조항을 반대하는 국가들의 대부분은 메인스트림 관점에서 장애여성의 문제를 언급하자고 주장해왔다. 메인스트림 관점은 크게 유럽연합측의 메인스트림과 캐나다측의 매인스트림으로 나뉜다.

유럽연합측이 조약의 전문, 국가의 의무, 모니터링 부분에 장애여성에 대해 언급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캐나다측은 조약의 전문과 관련 조항 모두에 장애여성에 대해 언급하자는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지역의 엔지오들은 사실상 캐나다측의 입장에 가깝다. 이들은 단독조항보다 더 강력한 것이 메인스트림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논의에서도 EDF(European Disability Forum) 등의 엔지오는 같은 주장을 폈다.

하지만 명백한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다수의 국가들이 장애여성 단독조항을 지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날 남아프리카공화국, 요르단, 수단, 예멘 등 아프리카지역의 국가들과 엘살바도르, 이란 등의 국가들이 단독조항 지지를 표명했다.

장애여성 단독조항을 찬성하는 국가들은 우리나라 정부가 주장한 것처럼 단독조항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조약의 이행과정에서 각국의 행정부를 효과적으로 강제할 수 없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김미연씨가 국제장애인연대회의를 대표해 단독조항을 주장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또한 국제 장애인 엔지오들의 네트워크인 국제장애인연대회의(IDC, International Disability Caucus)도 단독조항에 대해 강력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한국추진연대 소속 김미주(장애여성문화공동체 대표)씨가 이날 지지발언의 연사를 맡았다.

이날 회의에는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인사들이 참여해 우리나라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국회 장애인특별위원회 안택수(한나라당 국회의원) 위원장, 열린우리당 간사인 장향숙 의원, 한나라당 간사인 정화원 의원, 민주노동당 현애자 의원이 토론이 진행되는 전 과정을 참관했다.

별도로 일정을 잡았던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오후에 미국에 도착하는 바람에 장애여성 단독조항 토론과정을 지켜보지 못했다. 나 의원은 오후 3시부터 진행된 장애아동 조항 토론과정을 참관했다.

돈 맥케이(뉴질랜드 대사) 의장은 토론 말미에 “오늘 이 자리에 한국에서 국회의원들까지 참석하는 열의를 보여주고 있다”고 직접 국회의원들의 이름을 열거해가며 “한국의 노력으로 논의가 많이 진전됐다”고 감사의 의사를 표시했다.

결국 이날 논의에서는 단독조항으로 할 것인지, 메인스트림으로 할 것인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돈 맥케이 의장은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논란이 일거나 의견이 분분한 조항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의견을 수렴해 논지를 정리하도록 임무가 부여된다)에게 맡겨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방안을 찾아보도록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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