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한 조각을 찾아 세계 인권의 퍼즐이 완성됐다. 지난 2003년 에이블뉴스와 한국DPI가 벌인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 캠페인의 일환으로 만든 포스터. <에이블뉴스>

■권리조약 유엔총회 통과 현장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드디어 13일 오전 유엔 회원국 192개국의 만장일치로 유엔 총회를 통과했다. 어느 나라도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통과되는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 제정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우리나라 장애인단체 대표들은 역사적인 현장을 찾아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탄생을 축하했다. 장애인단체 대표단과 함께했던 13일의 하루를 소개한다.

역사의 날이 밝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12일 밤 뉴욕에 도착한 우리나라 엔지오 대표단은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고, 13일 오전 8시 호텔 로비로 집결했다. 엔지오측이 묵고 있는 호텔은 유엔본부에서 3분 거리에 위치한 밀레니엄 유엔 플라자. 지난 12월 5일 유엔총회 일정이 확정된 관계로 겨우 마련한 숙소다.

13일의 뉴욕은 잔뜩 흐렸다. 호텔 밖으로 나가니 금세라도 비가 뿌릴 기세였다. 유엔측이 공지하기로는 8시30분부터 9시30분까지 출입허가증을 받아야 유엔총회장 방청이 가능한 상황. 유엔본부 건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청원경찰이 우리를 막았다. 방문객들은 9시부터 출입이 가능하다며 우리측의 설명을 아예 듣지 않았다.

혹시 시간이 늦어 총회장에 못 들어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발을 동동 굴렀다. 다른 나라 참가단도 마찬가지 상황. 이때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의 한 직원이 나타났고, 그의 도움을 받아 곧 유엔본부 건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총회장 출입허가증은 건물 로비에서 신청자 명단을 확인하니 곧바로 발급됐다.

하지만 9시45분에나 돼야 총회장으로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로비에는 전 세계에서 찾아온 장애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약 60~70여명이 모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적은 숫자다. 대규모 참가단을 꾸린 곳은 우리가 유일했다. 항상 몇 십 명이 참가했던 일본 측도 1명밖에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한국장애인재단의 후원이 없었다면 이곳에 찾을 수 없는 실정이었다.

유엔총회장으로 들어가기전 다른 나라 엔지오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플래카드를 들고 총회장으로

각국의 장애인들은 인사를 나누고 기념촬영을 하며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통과를 자축했다. 드디어 10시 15분 전. 이제 총회장에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은 1층으로, 그렇지 않은 장애인들은 2층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뉴스에서만 봤던 총회장이 눈에 들어오자 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이곳에서는 회의가 시작되면 촬영을 할 수 없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맨 앞으로 나오지 않기 바랍니다. 아래로 떨어질 수 있습니다.” 청원경찰의 인사였다. 단호했다. 우리나라 엔지오의 경우, 이번 조약의 통과를 축하하기 위해 한국에서 플래카드 하나를 만들어왔는데, 이 플래카드를 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까?

회의가 시작되면 더욱 플래카드를 펼치는 것이 어렵다고 판단한 우리나라 참가단은 플래카드를 펼치기 시작했고, 예상했던 대로 청원경찰이 다가와 그 플래카드를 회수해갔다. ‘인류 인권의 새로운 도약,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체결을 축하합니다’라는 문구가 채 드러나기도 전에. 곧 회의가 시작됐고, 기념촬영을 하던 방청객들은 드디어 카메라의 전원을 모두 껐다.

유엔총회가 열리기 직전, 축하 플래카드를 펼치려다 제지를 당하고 있는 우리나라 참가단. <에이블뉴스>

무난히 통과된 권리조약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여러 가지 인권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정부가 이 조약을 신속하게 내용을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메시지다.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회의장에 직접 참석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 장애인조약을 채택하기 위해 모였다. 장애인 인권을 보장할 수 있는 실질적인 도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의장님이 역량과 카리스마, 지도력을 통해서 단기간 안에 조약을 만들 수 있었다.”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이 의결되기 직전 이라크, 자메이카, 마셜아일랜드 등의 몇몇 국가에서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 대한 코멘트를 했다. 일부 부분에 대한 수정요청이 있었지만, 대부분의 축하인사였다. 그리고 곧 의장이 “통과해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었고, 각국 정부대표들은 박수로서 환호했다. 방청석에서는 환호성도 나왔다. 순식간에 역사의 순간이 지나갔다.

12월 13일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을 통과된 유엔총회장 풍경. <에이블뉴스>

우리나라 정부측 “내년까지 비준”

이후 각국 정부대표단들은 국제장애인권리조약에 대한 축하인사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후 1시 회의가 종료될 때까지 무려 2시간이 넘도록 축하 인사는 계속됐다. 우리나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우리나라는“장애여성 단독조항을 지지해준 각국 대표단과 엔지오께 감사를 드린다”면서 “이 조항으로 인해 장애인 여성들의 상황을 개선시킬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장애인 당사자들과 엔지오들이 오늘 이 조약을 채택하는 마지막과정까지 함께 하고 있다. 오늘 이 조약은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동안 보여준 열정과 에너지를 이행과정에서 똑같이 보여주시기를 당부드린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대한미국은 이 조약이 장애인을 위한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의 조약이 되도록 노력하겠다”면서 “2007년 내 비준을 완료하도록 하고, 비준 과정에서 국내법을 개정할 수 있는 부분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2007년 9월 세계장애인대회가 한국에서 열린다”면서 “조약 체결 이후, 처음 만들어지는 세계적인 장애인행사인 이번 대회는 국제장애인권리조약의 통과를 경축하는 자리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Nothing about us, Without us!

대부분의 국가들은 장애인 당사자들과 엔지오에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특히 대부분의 국가들은 특별위원회 의장을 맡았던 루이스 갈레고스(에콰도르 대사)씨와 돈 멕케이(뉴질랜드 대사)씨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들 국가들이 빼놓지 않은 말이 또 하나 있다면 바로 “이제부터 조약을 제대로 이행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이날 회의의 마지막은 엔지오가 장식했다. 공식 회의를 마치고 비공식적으로 전 세계 엔지오들의 네트워크 IDC(International Disability Caucus) 소속 장애인 당사자 2명(티나씨와 마리아씨)이 연단에 섰다. 이들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바로 ‘우리 없이는 우리에 대한 것은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 아마 이 말은 이번 조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말일게다.

우리나라 참가단은 회의를 마치고 주유엔 대한민국 대표부 신동익 공사참사관과 오찬을 함께 하고, 유엔본부 건물 앞으로 나가서 총회장에서 펼치지 못했던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했다. 이때 뉴욕의 하늘은 이미 비를 뿌리고 있었다. 이날 저녁 우리나라 대표단은 숙소 근처 중식당에서 “이제 12월 13일은 장애인의 새로운 생일”이라며 파티를 열어 역사의 날을 자축했다.

결국 유엔건물을 빠져나와 밖에서 플래카드를 펼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우리나라 참가단.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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